김인중 신부 초대전

빛이 수놓은 침묵의 시학 ― 김인중 신부의 영성 회화

2025-12-01     아츠앤컬쳐
김인중, Untitled, 2015, 캔버스에 혼합매체, 195×260cm

[아츠앤컬쳐]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가 절두산순교성지에서 특별기획전 〈빛으로 그리는 시〉를 선보인다. 그의 화면은 단순한 색채의 결이 아니라, 기도와 묵상이 집약된 내면의 울림으로 읽힌다. 유리와 캔버스를 오가며 펼쳐지는 색의 흐름은 마치 한 편의 시가 공기 중에 스며드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이번 전시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마련한 자리로, 절두산의 영성을 바탕으로 탄생한 신작 회화 22점과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등을 통해 작가의 빛의 세계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다.

김인중, Untitled, 2025, 캔버스에 혼합매체, 지름 100cm

“나는 빛을 그린다. 빛은 색이 되고, 색은 다시 기도가 된다.” 김인중 신부의 이 고백은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이다. 어린 시절부터 익힌 동양적 필묵의 감각, 그리고 유럽 유학을 통해 체화한 서양 신학과 예술정신이 하나로 어우러진 독창적인 ‘빛의 영성’을 구축했다. 선명하고 투명한 색채는 단순한 조형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관문이며, 그가 평생 이어온 침묵의 기도와 깊은 호흡이 그 안에 응축되어 있다.

김인중, Untitled, 2025, 캔버스에 혼합매체, 지름 80cm

김 신부의 화면에서 빛은 언제나 ‘시(詩)’의 형태로 다가온다. 자유롭게 흐르는 선과 면은 엄격한 구성을 따르지 않지만, 내면의 리듬을 따라 생동하는 율동감을 띤다. 이는 마치 언어 이전의 언어, 기도 이전의 기도가 존재의 바닥에서 솟구쳐오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색채는 단순한 시각 요소를 넘어 정서와 영혼의 진동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 앞에 선 이들은 자연스레 자신만의 ‘빛의 한 구절’을 마음에 건져 올리게 된다. 빛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김인중, Untitled, 2024, 스테인드글라스, 24.7×27.5×1cm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역시 동일한 영성을 품고 있다. 빛이 유리를 통과하며 드러내는 색의 분절과 확산은, 마치 인드라망의 구슬들이 서로를 비추며 우주적 질서를 형성하는 듯한 이미지로 확장된다. 동서양이 만나는 경계에서 만들어진 이러한 조형은, 존재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순환적 시간관을 떠올리게 한다. 빛은 산란하지만 흩어지지 않고, 각각의 색은 분리되지만 결국 하나의 온기로 모인다. 그것이 김 신부가 말하는 ‘빛의 신학’이다.

김인중, Untitled, 2025, 캔버스에 혼합매체, 22×22cm

특히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2025년 신작 회화 22점은 절두산순교성지의 영적 감성을 깊이 응시한 결과물이다. 순교의 땅이 지닌 고요한 울림과 인간 존재의 아픔, 그리고 그 위로를 감싸는 하늘의 빛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작품에는 제목이 없다. 그는 관람객이 스스로 빛의 흐름과 색의 숨결에 귀 기울이며, 각자의 언어로 작품을 완성해주기를 바란다. 이는 곧 ‘해석의 여백’을 열어두는 행위이며, 그 여백 속에서 신앙과 예술, 존재와 시간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결국 김인중 신부의 회화는 색채로 그린 성서이자 침묵으로 쓴 기도문이다. 생의 가장 깊은 어둠마저 빛의 언어로 포용하며, 소멸을 넘어서는 영원의 감각을 화면 위에 새겨 넣는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근원으로 향하는 사유’처럼, 그의 작품은 우리를 삶의 본질을 향해 조용히 이끌어간다. 이번 절두산 특별전은 9월 27일 개막 미사로 시작해 12월 21일까지 계속된다. 관람객 모두가 김 신부의 빛에서 한 줄 시를 마음에 품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김인중(1940~)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교와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개최한 전시를 비롯하여 국내외에서 200여회 이상의 개인전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1년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Officier)’ 수훈, 2016년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가톨릭 프랑스’ 회원으로 선정되었고, 2022년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석학교수로 초빙되었다. 유럽에서 주로 활동해 온 작가는 프랑스 앙굴렘 세례자 요한 성당, 파리 에브리 주교좌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등 유럽 전역에 100여 점 이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제작, 설치하였다. 국내에는 수원 신봉동성당, 카이스트 학술문화관 등에 작품이 설치되어 있으며 프랑스 도미니코회 사제이자 작가로서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글 ㅣ 김윤섭

미술사 박사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