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와 AI

2025-12-01     아츠앤컬쳐
Poster for Gismonda_AlphonseMucha(1894)

[아츠앤컬쳐]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1860~1939)는 아르누보(Art Nouveau)를 대표하는 체코 출신의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현대 대중에게는 “아르누보의 아버지” 혹은 “장식적 포스터의 완성자”로 불린다. 아르누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한 예술 양식으로, 자연의 곡선과 유기적 형태를 활용해 건축·회화·공예·그래픽 디자인 전반에 새로운 장식을 추구한 흐름이다. 직선적·기계적 양식에 대한 반발로 탄생해 우아한 선과 장식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무하는 곡선의 활용, 여성의 우아한 자세, 꽃·식물 모티프, 복잡한 장식 패턴이 특징적이며, 오늘날 포스터·패션·제품 디자인 등에서 널리 차용되는 시각 언어를 사실상 정립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모라비아(현 체코)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미술 양면에 재능을 보였다. 성악에도 소질이 있어 성가대원으로 활동했지만 성장하면서 목소리가 변하자 미술로 진로를 틀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과 지역적 한계로 인해 정규 미술 교육을 받는 데 어려움이 많아, 처음에는 지방 법원 서기 보조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 시기에도 장식벽화나 극장 무대 디자인 일을 맡으며 꾸준히 실력을 쌓았고, 결국 비엔나 무대장식 회사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예술가로서의 감각을 발전시켰다.

1880년대 중반 무하는 생계를 위해 다양한 도시를 전전하며 광고 일러스트·초상화·장식 패널 등 상업미술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파리로의 유학을 떠나 본격적으로 예술적 기반을 다졌다. 당시 파리는 새로운 예술 사조가 폭발하는 중심지였고, 무하 역시 회화·디자인·그래픽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 언어를 모색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 그의 삶은 불안정했고, 후원자 없이 고전적 회화만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웠기 때문에 종종 잡지 삽화나 포스터 제작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다.

무하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사건은 1894년 12월, 오페라·연극계의 절대적 스타 사라 베르나르를 위한 연극 <지스몬다>(Gismonda) 포스터 제작을 우연히 맡은 일이다. 인쇄소에 들렀던 무하는 당시 담당자가 부재하자 임시로 작업 요청을 받았고, 특유의 길고 유려한 곡선, 상징적 후광, 장식적 식물 모티프, 신비로운 여성상으로 구성된 포스터를 완성했다. 이 포스터는 파리 전역을 강타했고, 기존 연극 포스터의 규범을 완전히 깨뜨린 혁신적 시각언어로 압도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베르나르는 감탄하며 무하와 6년 전속 계약을 체결했고, 이 시기 제작된 <메데아>, <로렌자치오>, <라 프린세스 룰란> 등 수많은 포스터가 한 시대의 비주얼 코드를 형성했다. 이때 구축된 무하 특유의 스타일은 아르누보의 대명사로 자리 잡으며, 그의 이름을 세계적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Poster for Medea_Alfons Mucha(1898)

오늘날 알폰스 무하의 작품은 “예술 포스터”라는 장르를 확립한 기념비적 업적으로 인정받으며, 현대적 감각에도 잘 어울려 한국에서도 전시가 열릴 때마다 큰 대중적 인기를 얻는다. 그의 이름은 단순히 한 화가를 넘어, 시대의 미감을 형성한 하나의 시각적 브랜드가 되었으며, 아르누보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무하에게 아르누보의 명성은 한편으로는 굴레였다고 한다. 그의 시각적 언어는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시장에서는 끊임없이 동일한 스타일의 작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최근 OpenAI의 ‘챗GPT-4o 이미지 생성’ 기능이 ‘스튜디오 지브리’ 특유의 화풍을 구현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도 하였다. 특히 맥도날드 멕시코(McDonald’s Mexico)가 ‘지브리 스타일’로 자사 제품을 표현한 이미지로 상업적 모방 논란에 휘말리면서 AI가 특정 작가나 콘텐츠의 스타일을 재현하거나 모방하는 경우,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무하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간다고 가정할 때, 무하의 스타일, 즉 무하의 화풍으로 생성형 AI가 제작하는 이미지는 어떠한 법적 쟁점이 있을까?

저작권법은 아이디어 자체가 아닌, ‘구체적으로 표현된 창작적인 형식’만을 보호한다. 대법원 역시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한정된다”고 명확히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무하 스타일’과 같은 특정 화풍이나 분위기를 생성형 AI가 구현했다는 사정만으로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기는 어렵다. 다만, 특정 캐릭터, 구체적인 배경 묘사, 동일한 장면 연출 등 구체적인 표현 요소가 기존 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경우에는 저작권법상 복제권 침해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

생성된 이미지를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침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예컨대 맥도날드 멕시코 사례처럼, 특정 브랜드가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한 이미지를 공식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원저작물의 표현적 요소를 모방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해당 이용행위가 저작권법상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으나, 생성형 AI 이미지를 광고, 마케팅, 상품화 등 상업적 맥락에서 활용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공정이용으로 보기 어렵다. 특히, 생성형 AI가 특정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 기존 저작물을 참고하거나 그 표현적 특징을 전형적으로 재현한 경우, 해당 상업적 이용이 기존 저작물의 경제적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하의 스타일로 만든 이미지로 인해 무하의 기존 작품의 경제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모델 훈련에는 보통 크롤링(crawling) 등 자동화된 방식으로 데이터를 복제, 전송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크롤링은 웹사이트의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기술로, 프로그램이 웹페이지를 방문해 텍스트·이미지·링크 등을 체계적으로 저장하는 과정이다. AI 개발자가 무하 작품을 무단으로 수집하여 AI 학습에 활용한 경우, 해당 행위만으로도 저작권 침해 책임이 성립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퍼블리시티권 침해이다.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은 유명인의 이름, 초상, 성명, 음성, 서명 등 인격 표지를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로, 동의 없이 광고, 마케팅에 활용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아직 특정 화풍에 대한 국내 손해배상 판례는 없지만, 무하의 그림과 같이 강한 식별력을 가진 화풍은 그 자체로 창작자와의 연관성을 일반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해당 화풍을 재현한 이미지가 상업적으로 활용될 경우, 퍼블리시티권 침해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변호사 / 변리사 

<그림 따지는 변호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