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나는 시각을 거부하고 아이디어를 선택했다.” Marcel Duchamp

2025-12-01     아츠앤컬쳐
병 걸이(porte-Bouteills), 1914년, 59.1×36.8cm, 아연도금된 철제

[아츠앤컬쳐] 앙리 로베르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 1887.7.28~1968.10.2)은 프랑스 출신의 예술가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형성한 인물이다. 20세기 초, 그는 예술의 근간을 뒤흔드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손끝에서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일상의 물건을 미술관 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예술이라 명명한 것이다. 작가의 기술이나 전통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넘어 선택의 행위 자체가 창작이 될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 용기. 그 혁명적 출발이 바로 레디메이드(Ready-Made)였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믿어온 것들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 질문은 뒤샹의 레디메이드 앞에서 더욱 명료해진다.

1914, 뒤샹이 철물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와인 병 걸이훗날 고슴도치라 불리게 된 이 기성품는 아무런 조형적 개입 없이 작가의 선택만으로 예술의 자리에 놓였다. 기술, 수공, 미적 완성도를 예술의 본질로 여기던 전통적 관념을 그는 단번에 벗겨냈다. 뒤샹의 말처럼, 예술의 기원은 물질이 아니라 사유의 방향성과 선택의 행위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레디메이드의 출현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예술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전환점이었다. 인간의 손에서 빚어진 조형물만이 예술이라는 믿음은 뒤샹의 선택 앞에서 무너진다. 병 걸이, 혹은 고슴도치는 본래의 사용 가치를 떠나면서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예술은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목하고 어떤 맥락을 부여하느냐에서 발생한다는 가능성. 이 순간 예술은 만드는 기술에서 보는 사유로 이동했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와 물건이 뒤섞인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뒤샹의 고슴도치는 이 혼재된 현실을 이미 예술의 언어로 예견한 장치였다. 예술의 권위는 대상의 물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선택, 그리고 태도 속에서 형성된다.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는 무엇을 예술이라 부르기로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뒤샹의 고슴도치는 지금도 조용히 그 질문을 반복한다.

예술의 기원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그 자체임을.

 

글 | 김남식
춤추는 남자이자, 안무가이며 무용학 박사(Ph,D)이다. <댄스투룹-다>의 대표, 예술행동 프로젝트 <꽃피는 몸>의 예술감독으로 사회 참여 예술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정신질환 환자들과 함께하는 <멘탈 아트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예술과 재난 프로젝트>의 움직임 교육과 무용치유를 담당하며 후진양성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