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터에서 이우환, 최욱, 정영선의 만남

2026-01-01     아츠앤컬쳐
실렌티움 [자료 : 호암미술관 실렌티움 홈페이지]

[아츠앤컬쳐] 삼성그룹에서 이병철 설립자의 명예를 걸고 운영 중인 호암미술관에서 화가 이우환, 건축가 최욱, 조경가 정영선이 귀한 만남을 갖는다. 호암미술관이 조경가 정영선이 조성한 옛돌정원에, 최욱 건축가의 설계로 이우환 미술관을 2026년 착공, 2029년 개관한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이다.

45만 평에 달하는 에버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가 바로 3만6천 평 규모의 널따란 인공 호수인 호암호수다. 호암호수는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 옛돌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1982년 개관 이래 호암미술관과 희원은 개방되었으나 옛돌정원만큼은 일반인 출입금지였다. 비밀의 정원 옛돌정원이 2025년 11월 4일 드디어 43년 만에 일반에게 개방되었고, 다녀온 사람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일반인들의 SNS를 보면 옛돌을 감상한 사진보다는 옛돌정원에서 넓은 호수를 바라보는 사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우환이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다. 호암미술관 측은 이미 전통정원 희원 구내에 찻집이 있던 공간을 개조하여 이우환 공간으로 ‘실렌티움(Silentium : 묵시암)’이란 이름으로 상설 전시 공간을 운영 중이다. 이우환은 여기서 특유의 예술성으로 방문객이자 관람객들에게 침묵을 요구하며 혼잡한 세상 속에서 전통정원을 거닐며 사유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다.

이우환은 서울사대부고 졸업 후 서울미대 동양화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 니혼대학 철학과를 마친 후, 평론으로 시작해 다시 작가가 되었다. 이우환을 본격적으로 인정한 것은 그의 조국 한국보다 일본이 먼저였다. 일본 세토내해의 나오시마섬을 세계적 예술섬으로 만든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이우환을 주목했다. 후쿠다케 회장은 1980년대부터 이우환의 예술활동을 후원해 왔다고 한다. 나오시마 섬은 2004년 지중미술관이 개관하며 세계적 주목을 끌었고 이어서 2010년 그 옆에 독립건물로 이우환 미술관이 준공되었다.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오로지 배를 타고 접근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지금은 연간 65만 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그중 외국인 비율이 30%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의 예술적 자존심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립 미술관인 호암미술관도 이우환 독립 공간을 결정했다. 수십만 평의 숲을 배경으로 널따란 호수를 바라보는 멋진 터에 오랜 기간 국내 최상급 정영선 조경가가 가꿔온 옛돌정원에 한국판 이우환 미술관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호암미술관은 숙고 끝에 이우환에게 가장 잘 어울릴 공간을 만들 사람으로 최욱 건축가를 찾았다.

사유의방_전시실이미지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최욱 건축가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한국의 자랑스러운 국보 중 하나인 반가사유상을 위한 전용 전시 공간을 위촉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반가사유상의 높은 예술성을 강조하기 위해 2013년부터 독립공간을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고, 2021년 건축가로 최욱을 선정했다. 반가사유상은 국보 78호, 83호 두 작품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동안 불교 전시실에 유리상자를 만들어 교대로 전시하고 한 점은 수장고에 보관 중이었다. 최욱 건축가는 선정된 이후 전용공간에 두 개를 동시에 전시하는 안을 제시하고, 공간도 두 배 넓게 요구했다. 최욱 건축가는 그냥 단순 직사각형 공간에 반가사유상 두 개의 오브제를 세운 것이 아니다. 가로 세로의 길이를 비틀고 바닥 경사면까지 1cm의 미세한 높이차를 만들었다. 미켈란젤로가 교황으로부터 위촉 받은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과 코르도나토 계단을 만든 문법과 유사하다.

관람석은 객석이고 반가사유상은 무대에 선 두 명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두 주인공은 그냥 객석 관람객을 쳐다보지 않고 약간의 시선을 비틀어 사유의 폭과 깊이를 확장한다. 그 자체로 분명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문화유산 반가사유상이 최욱 건축가에 의해 멋지게 새롭게 해석되어 자리 잡은 것이다.

이제 화가 이우환, 조경가 정영선, 건축가 최욱이 뭉쳐 나오시마 예술섬 이상으로 세계 관광객을 모을 수 있는 호암미술관 이우환 미술관이 2029년 문을 열기를 고대해 본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Eco Energy 대표 / Caroline University Chaired Professor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총무이사/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저자, ‘메타버스를 타다’ 대표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