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주인 행세를 멈춘 섬, 솜마뢰이
The Timeless Island of Sommarøy
[아츠앤컬쳐] 노르웨이 북극권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어촌 솜마뢰이(Sommarøy)는 2019년 세계 최초로 스스로를 ‘시간이 없는 곳’으로 선언했다. 주민 300여 명이 모여 시계를 박살 내고 다리 난간에 걸어두는 퍼포먼스는 CNN, NPR 등 주요 외신을 장식했다. 추후 노르웨이 관광청이 기획한 마케팅 전략임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솜마뢰이 주민들이 시간을 초월한 삶을 사는 것만은 사실이다.
새벽 2시 해변 카페, 자정의 축구 경기
매년 5월 18일부터 7월 26일까지 69일간 이어지는 백야(midnight sun) 기간 동안 해는 단 한 번도 수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다.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밝은 세상이 이어지는 곳에서 오후 2시와 새벽 2시가 대체 무슨 차이란 말인가? 주민들은 새벽 3시에 집을 페인트칠하고, 자정에 카약을 타며, 오후 11시에 아이들과 축구를 한다. “나중에 보자”는 말은 있어도 “오후 6시에 만나자”는 약속은 없다.
반대로 11월부터 1월까지는 극야(polar night)가 찾아와 해가 수평선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 종일 어두운 건 아니다. 고작 몇 시간이지만 황혼빛이 하늘을 물들이는 동안에는 커피 한 잔의 낭만도 허락된다. 빛 공해가 거의 없어 집 발코니에서도 오로라가 춤추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
북극의 카리브해, 실체는?
솜마뢰이는 ‘북극의 카리브해(Arctic Caribbean)’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터키석빛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이 마치 열대 해변처럼 보이지만, 막상 물에 들어가면 한여름에도 10도를 넘지 않아 북극권임을 실감하게 된다. 트롬쇠 공항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이 섬은 전통 어부 오두막 로르부(rorbu) 숙소, 솜마뢰이 아크틱 호텔 같은 소규모 숙박 시설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관광을 표방한다.
그나저나 ‘시간 해방 캠페인’의 실체는 대체 뭘까? 주민 대표 켈 오베 흐베딩이 2019년 6월 13일 지역 국회의원에게 청원서를 제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시간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민들 역시 어선 출항 시간이나 학교 등교 시간 같은 실용적 필요에 따라 여전히 시계를 확인한다. 노르웨이 관광청이 2019년 6월 26일 자체적으로 이 캠페인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시인하면서 ‘홍보 스턴트’라는 웃픈 평가가 나왔다.
누가 시간의 주인인가?
그렇다고 솜마뢰이의 시간 해방이 완전히 거짓인 것은 아니다. 24시간 이어지는 백야 속에서 주민들은 실제로 일반 도시인들보다 훨씬 유연한 시간 감각으로 살아간다. 졸음이 오면 잠들고, 일할 기분이 들 때 어선을 끌고 나가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해변에서 만난다. 시간표는 있지만 시간의 압박으로부터는 상당히 자유로운 셈이다.
이 작은 섬의 실험은 현대인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시계가 정한 시간표에 따라 살아야만 하는가?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삶은 가능한가? 솜마뢰이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밤, 시계를 보지 않고도 충분히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깨달음이다.
북극권 끝자락의 작은 섬에서 시작된 시간 해방 운동은 관광 마케팅이라는 실용적 목적과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라는 철학적 지향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다. 그곳에서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주인 행세를 멈추었다.
The Timeless Island of Sommarøy
In 2019, Sommarøy, a small fishing village of 300 residents in Norway's Arctic Circle, declared itself the world's first "time-free zone" through a dramatic performance of smashing clocks and hanging watches on bridge railings, capturing international media attention. While later revealed as a marketing campaign by Norway's tourism board, the islanders genuinely live beyond conventional time constraints during the 69-day midnight sun period (May 18-July 26) when residents paint houses at 3 AM, kayak at midnight, and play soccer at 11 PM, with "see you later" replacing "meet at 6 PM." Nicknamed the "Arctic Caribbean" for its turquoise waters and white beaches despite frigid 10°C summer temperatures, the island demonstrates that while no official legislation bans clocks and practical schedules still exist for fishing and school, residents experience remarkable freedom from time's tyranny during endless daylight—and even during the polar night (November-January) when aurora borealis dances across balconies. This small Arctic experiment reveals a meaningful truth: our obsession with clock-dictated schedules isn't absolute, and living fully without constant time-checking during sunlit summer nights proves that time, though not disappeared, has at least stopped being the master.
출처: https://orbitaltoday.com/2024/12/03/sommaroy-the-only-place-on-earth-where-time-doesnt-exist/
박재아는 '섬 좋아서 섬 일하는' 섬 전문가(Islandophile)로, 지난 20여 년간 남태평양에 위치한 피지, 사모아 관광청 및 21개의 태평양 도서국 및 자치령을 관할하는 태평양관광기구(SPTO), 그리고 인도네시아 관광창조경제부(MoTCE-RI) 한국지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모리셔스, 팔라우, 크로아티아 관광청의 파트너이자, 조선대학교 대외협력교수, 태평양학회 이사직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