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체리와 건축물
[아츠앤컬쳐] 동양에 비해 서양에 있어 풍경화의 탄생은 늦다. 동양에서 풍경화가 나타난 지 무려 1,000년 이상이 지난 이후에야 서양에서는 풍경화가 예술적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17세기 후반 로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on)(1600~1692), 니콜라스 푸생(Nicolas Poussin)(1594~1665) 등이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탈리아에서는 18세기 초반에 건축 풍경화라는 독립적인 회화 장르가 형성된다. 유적지의 건축물을 담은 건축 풍경화는 주로 판화로 제작되어 로마나 베니스를 여행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Giovanni Battista Piranesi)(1720~1778)는 18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판화가이자 건축이론가로, 고대 로마 건축의 장엄함과 폐허의 미학을 독자적인 시각 언어로 재구성한 예술가이다. 그는 단순한 고고학적 기록자를 넘어, 고대 건축을 상상력의 영역으로 확장함으로써 근대적 공간 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피라네시의 작품에서 로마의 유적은 사실적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이성의 한계와 권력의 위압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특히 그의 판화는 정확한 원근법과 과장된 스케일을 결합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공간 속에 압도당하는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피라네시는 건축·미술·철학 전반에 지속적인 사유의 자극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된다.
피라네시의 명성은 <카르체리 디인벤치오네(Carceri d’Invenzione)> 판화 연작에서 비롯된다. <카르체리 디인벤치오네(Carceri d’Invenzione)>는 <상상의 감옥들(Imaginary Prisons)>로 불리기도 하는데, 환상적인 건축을 묘사한 이미지들로 두 차례의 판본에 걸쳐 제작된 총 16점의 판화로 구성되어 있다. 14점은 약 1745년부터 1750년 사이에 제작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스케치에 가까운 거친 표현을 보였다. 첫 판본은 비교적 밝은 명암으로 표현되었으나, 이후 출판업자의 제안에 따라 피라네시는 다시 판화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판화는 더욱 어둡고 대비가 강한 표현으로 변모하였고, 그 결과 한층 더 극적인 연극적 효과를 획득하게 되었다. 1761년에 출판된 2판에서는 모든 판화가 다시 손질되었고, I에서 XVI까지의 번호가 부여되었으며, 이 가운데 II번과 V번은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 연작들은 거대한 아치형 지하 공간과 계단, 그리고 강력한 기계 장치들이 배치된 장면을 보여주며, 18세기 연극 무대의 무대미술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카르체리 디인벤치오네> 연작은 실제로 1770년 뉴게이트(Newgate) 감옥의 건축에 영향을 주었으며, 여러 영화의 무대미술과 다양한 음악 작품에도 영감을 제공하였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던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1903~1987)는 피라네시의 작품 세계를 두고 “시간의 부정, 공간의 어긋남, 도달되거나 초월된 불가능성의 도취”라고 표현하였다. 피라네시는 원근법의 규칙을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구축이 불가능한 구조를 제시하는데, 이는 특히 계단의 묘사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표현은 관람자에게 강한 현기증의 감각을 유발한다. 이는 미로 같은 형태, 원근법의 기만에서 비롯된다. 표면적으로는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이 무질서는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사유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 결과이다. 피라네시는 정확한 계산에 기초한 기하학적 세계를 구축하지만, 그 계산은 결국 명백히 잘못된 비례로 귀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피라네시의 <카르체리 디인벤치오네>가 도안이나 도면의 형태라고 가정한다면, 이를 무단으로 변형하여 실제 건축 디자인에 활용하였다면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우선 대법원은 도안으로 존재하는 피해자의 작품을 입체 조형물로 만든 경우 저작권법상 복제에 해당하므로 피해자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한 저작권법위반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저작권법 제2조 제22호에서는 “건축물의 경우에는 그 건축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도서에 따라 이를 시공하는 것”을 복제라고 하고 있으나, 이는 저작물인 '건축물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도서'에 따라 건축물을 시공하더라도 복제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려는 확인적 성격의 규정에 불과하고, 도안이나 도면의 형태를 보고 건축물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도 복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 A는 B 건설회사와의 설계계약에 따라 다가구주택 설계도서를 제작하여 이를 교부하였다. B 건설회사는 해당 설계도서를 이용하여 다가구주택을 신축하였다. 한편 B 건설회사는 C 건축사와 사이에 가구별 층수 및 구조가 위 다가구주택과 유사한 타운하우스를 신축하기 위하여 설계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B 건설회사는 C 건축사에게 A가 작성한 설계도서의 원본 CAD 파일을 제공하였다. C 건축사는 이를 일부 수정한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였고, B 건설회사는 해당 설계도서를 이용하여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에 A는 B와 C의 행위가 자신의 저작재산권인 복제권 및 2차적저작물작성권과 저작인격권인 성명표시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구하였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법리는 다음과 같다. 건축저작물은 기능적 저작물로서, 해당 분야에서의 일반적인 표현방법, 그 용도나 기능 자체, 저작물 이용자의 이용 편의성 등에 의하여 그 표현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능적 저작물이 그러한 일반적인 표현방법 등에 따라 기능 또는 실용적인 사상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라면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창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 창작자의 창조적 개성이 나타나 있는 경우에는 창작성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저작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본 사건에서 1심 법원은 A의 설계도서를 작성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는 저작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2심 법원과 대법원은 A의 설계도서 중 적어도 지붕 형태, 1층 출입문 및 회랑 형태의 구조는 A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다고 보아, 해당 설계도서는 A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반대로 해석해보면, 설계도서 중 일부 구성요소는 기능적 요소와 관련되어 있고, 대지의 조건 및 현황, 관련 법령상의 제약 등에 비추어 볼 때 개성이 표현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인정하였다. 다만 지붕 형태 등에 관하여는 관련 지침의 범위 내에서는 A의 개성이 반영되었고, 인근 지역의 다른 유사 건물과도 차별된다는 점에서 저작물성을 인정하였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변호사 / 변리사
<그림 따지는 변호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