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금 초대전

이라금의 현대민화, 빛이 머무는 정원의 숨결

2026-01-01     아츠앤컬쳐
이라금, Umbra, 2025, 장지에 옻칠, 혼합채색, 금분, 금묵, 46×65cm

[아츠앤컬쳐] 이라금 작가가 삼청동 아이프라운지의 새해 첫 전시로 개인전을 열게 된다. 1월 20일부터 3월 2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전통 민화의 형식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온 작가의 최근 신작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장지 위에 옻칠과 전통 채색기법을 여러 차례 중첩해 완성한 신작들은 화려한 장식성보다는 화면에 머무는 시간의 결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의 회화는 관람객에게 무엇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늦추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이라금, 광휘 光輝, 2025, 장지에 옻칠, 혼합채색, 금분, 금묵, 49×94cm

전통 민화는 오랫동안 삶의 안녕과 바람을 담아온 그림이었다. 이라금은 그 형식과 정서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오되, 상징의 의미를 앞세우기보다는 화면에 등장하는 존재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의 그림 속 동물과 식물은 어떤 메시지를 설명하기보다는, 그 자리에 함께 놓여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작품 <Umbra>에서 나란히 자리한 표범과 흑표범은 서로 대비되는 형상이지만, 긴장이나 대립보다는 묘한 균형을 이룬다. 금빛이 흐르는 배경 속에서 빛과 그림자는 분리되지 않고, 화면 전체를 하나의 조용한 장면으로 묶어낸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그 사이를 오가며 머무르게 된다.

이라금, Orbit I, 2025, 장지에 옻칠, 혼합채색, 금분, 금묵, 50×50cm

다음으로 작품 <광휘>에 이르면 빛은 더욱 절제된 방식으로 다가온다. 숲 한가운데 서 있는 황금빛 말은 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지만, 그 표정이나 자세에서는 과장된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갈기 뒤로 뻗어 나가는 금빛 선들은 생명체가 지닌 기운을 암시하되, 화면을 지배하지 않는다. 주변의 초목과 색채는 그 빛에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같은 공간 안에서 조용히 공존한다. 이 장면은 빛이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화면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하나의 요소처럼 느껴진다.

이라금, Orbit II, 2025, 장지에 옻칠, 혼합채색, 금분, 금묵, 50×50cm

‘Orbit’ 시리즈는 이러한 시선을 시간의 문제로 확장한다. 사각의 프레임을 벗어나 원형의 화면을 택한 작가는, 직선적으로 흐르는 시간 대신 반복되고 순환하는 자연의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여우와 표범, 꽃과 들풀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 없이 배치되고, 금분으로 흩뿌려진 빛의 입자들은 화면에 일정한 호흡을 더한다. 관람객은 이 둥근 화면을 바라보며,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과 자신의 시선이 겹쳐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라금, 여름의 왕관, 2025, 장지에 옻칠, 혼합채색, 금분, 금묵, 68×58cm

이라금의 현대민화는 어떤 의미를 강하게 주장하거나 결론짓지 않는다. 대신 전통 한지 위에 수십 번 쌓아 올린 채색의 시간만큼이나, 천천히 바라보기를 권한다. 작품 앞에 서면 동물과 식물, 빛과 색채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관계 속에서 시선이 자연스레 머무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빛이 머무는 정원의 숨결’이라는 문구가 절로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그림은 화면 속에서만 완결되기보다 관람자의 감각에 조용히 와닿는다. 새해의 문턱에서 만나는 이번 아이프라운지 이라금 전시는, 특별한 해석보다는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되돌아보는 치유적 감성을 선사한다. 

이라금(1964~) 작가는 한국채색, 옻칠, 금박·파라핀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전통적 화법을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인하공업전문대학 공예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회화에 전념하며, 김삿갓문화제 전국민화공모전 최우수상(2018)과 대갈문화축제 특선(2019) 등을 수상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 <독일아트페스티벌2024 기획초대전>(Gallery Duru Duru, Bayern, Germany, 2024)과 <새로운 행복세상으로 안내하는 메신저>(갤러리미르, 대구, 2022)를 개최했으며, 단체전으로는 <Beyond the Surface>(나무모던앤컨템포러리갤러리, 서울, 2025), <BEYOND BORDER>(Cosmos Gallery, New York, 2024), <용, 시대정신을 잇다>(갤러리세인, 서울, 2024), <Existence>(Gallery Western, Los Angeles, 2023) 등 국내외 유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작품은 호랑이와 기린 같은 전통적 상징에서 표범, 여우, 뱀 등 다양한 생명으로 확장되며, 자연과 인간, 생명의 공존에 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글 ㅣ 김윤섭

미술사 박사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