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스톤 굴의 이중생활

황제의 진상품에서 인부들의 보양식까지

2026-03-01     아츠앤컬쳐

[아츠앤컬쳐] 봄의 기운이 아드리아해의 파도를 따라 살랑살랑 밀려오는 3월, 크로아티아 남부의 작은 마을 말리스톤(Mali Ston)은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비린내로 가득하다. 이곳의 바다는 겉보기엔 잔잔한 호수 같지만, 그 속에는 2,000년 전 로마 황제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바다의 보석'이 숨쉬고 있다. 바로 말리스톤 평굴(Ostrea Edulis)이다. 이 작은 굴 한 점에는 정복자들의 탐욕과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땀방울,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말리스톤 굴의 역사는 단순한 식재료의 기록을 넘어 일종의 ‘권력의 상징’이었다. 로마 제국 시절, 이곳의 굴은 황제에게 진상되는 최상급 식재료였다. 당시 로마인들은 이 맛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굴을 젖은 이끼와 얼음으로 겹겹이 쌓아 전용 전령에게 맡겼고, 전령들은 말이 거품을 물 때까지 달려 로마의 황궁까지 이 신선함을 배달했다. 훗날 유럽을 호령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전쟁 중에도 “말리스톤의 굴이 아니면 식탁을 치우라”고 엄명을 내렸을 정도로 이 굴의 광적인 팬이었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나폴레옹의 그 넘치는 에너지는 아드리아해에서 건너온 이 작은 굴 한 점으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굴이 오직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말리스톤 굴에는 또 다른 ‘반전의 역사’가 숨어 있다. 바로 유럽에서 가장 긴 성벽 중 하나인 스톤(Ston) 성벽 건설의 숨은 주역이라는 점이다. 수 톤에 달하는 돌덩이를 옮기며 만리장성 부럽지 않은 요새를 세워야 했던 중세의 인부들에게 굴은 가장 흔하면서도 강력한 ‘천연 자양강장제’였다. 당시 기록을 보면, 고기 한 점 먹기 힘들었던 가난한 석공들은 쉬는 시간마다 바닷가로 내려가 굴을 한 바구니씩 까먹으며 근력을 보충했다고 한다. 황제에게는 사치스러운 미식이었지만, 성벽을 쌓던 민초들에게는 오늘날의 삼계탕이나 전복 같은 절실한 보양식이었던 셈이다.

한국의 식문화와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더 많아진다. 우리에게 굴은 넉넉한 인심의 상징이다. 김장철이면 보쌈 옆에 수북이 쌓인 생굴, 그리고 매콤달콤한 초고추장에 푹 찍어 마늘 한 쪽과 함께 깻잎에 싸 먹는 방식이 우리에겐 익숙하다. 하지만 말리스톤의 방식은 지극히 절제되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초고추장 대신 오직 ‘레몬 한 조각’만을 허용한다.

축제가 열리는 3월 19일, 성 요셉의 날에 말리스톤 부둣가에 서 있으면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갓 잡아 올린 굴 껍데기를 칼로 툭 까는 순간, 투명한 바닷물과 함께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여기에 레몬즙을 살짝 뿌리면 굴의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리며 수축하는데, 이때가 가장 완벽한 한 입의 타이밍이다. 입안에 넣는 순간, 첫 맛은 톡 쏘는 바다의 미네랄 향이 혀를 때리고, 중간 맛은 크리미한 질감이 입천장을 감싸며, 마지막에는 묘하게 서늘하고 달콤한 견과류의 뒷맛이 남는다. 한국의 굴이 시원하고 깔끔한 ‘바다의 우유’라면, 말리스톤의 굴은 진하고 묵직한 ‘바다의 치즈’에 가깝다.

이 우아한 맛의 향연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은 역시 술이다. 한국인이 굴 한 점에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크으~” 하는 시원함을 즐긴다면, 이곳 사람들은 펠레샤츠 반도의 햇살을 듬뿍 머금은 화이트와인 ‘포십(Pošip)’을 곁들인다. 와인의 산미가 굴의 단맛을 극대화해 주는 이 조합을 맛보고 나면, 왜 이곳 사람들이 그토록 자부심을 느끼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말리스톤의 굴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아드리아해의 거친 역사와 부드러운 자연이 빚어낸 한 권의 소설과도 같다. 로마 황제가 느꼈을 탐욕스러운 희열과 성벽 인부들이 느꼈을 삶의 위로가 이 작은 껍데기 속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껍질 하나하나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느끼며 이 푸른 보석을 맛보는 순간, 당신은 왜 수많은 정복자가 그토록 이 작은 마을의 바다를 갈망했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글 ㅣ 김수정

(주)파인푸드랩 대표 | 한국식음료세계협회 회장 | 경희대학교 캠퍼스타운, 서울먹거리창업센터 멘토 12년 경력의 식품 개발 전문가, 한식진흥원 및 다수 기업/지자체 레시피 개발 및 강의 이력 chefcrystal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