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ds of Love 사랑의 씨앗
정원에 맴도는 켈틱의 선율
[아츠앤컬쳐]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초입이다. 아직은 겨울 끝자락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흙 속에서는 이미 생명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이 시기,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은 눈부신 ‘만개(滿開)의 찬가’가 아니라,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켜는 ‘고요한 생명의 노래’일지 모른다. 캐나다 출신의 켈틱 뮤직의 거장, 로리나 매케닛(Loreena McKennitt)의 ‘Seeds of Love’는 바로 그 시점을 포착한 노래이다.
‘Seeds of Love’의 뿌리는 매우 깊고 단단하다. 17세기부터 영국 들판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전통 민요 ‘The Seeds of Love’가 그 출발점이다. 1889년 민요 수집가 세실 샤프(Cecil Sharp)에 의해 채보되며 널리 알려진 이 노래는 사랑과 시간, 그리고 상처를 장미와 타임(thyme), 백합과 같은 식물에 비유해 은유의 정수를 보여준다. 로리나 매케닛은 1995년, 이 고전적인 텍스트에 현대적인 숨결을 불어넣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켰다. 수백 년 전부터 농부들이 읊조리던 소박한 삶의 철학이 그녀를 거쳐 현대의 보편적인 예술로 승화된 것이다.
매케닛의 음악은 흔히 켈틱(celtic) 장르로 분류되지만, 그 이면에는 명상적이고 동시대적인 뉴에이지(new age) 감성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본래 켈틱 음악은 일리언 파이프(uilleann pipes)나 틴 휘슬(tin whistle), 그리고 켈트인의 심장이라 불리는 보란(bodhran) 등 전통 악기를 통해 자연 본연의 생명력을 뿜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매케닛은 이를 고고학적 탐구와 현대적인 사운드 디자인으로 재해석했다. ‘Seeds of Love’에서 그녀의 음악적 접근은 ‘절제’와 ‘확장’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켈틱 사운드의 전형적인 구성인 피들이나 아코디언의 화려한 선율을 과감히 걷어내고, 이 곡의 본질인 서정성에 집중하는 식이다. 대신 그녀는 직접 연주하는 청아한 하프와 정갈한 피아노 선율을 전면에 내세워 곡의 뼈대를 세웠다. 그 배경을 감싸는 몽환적인 신디사이저의 잔향은 마치 새벽녘 영국의 고성을 거니는 듯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뉴에이지가 추구하는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며, 켈틱의 민속적 신비로움을 한층 품격 있게 격상시킨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도는 전통의 무게 위에 뉴에이지의 세련미를 덧입혀 독보적인 분위기를 구현해 낸다.
흥미롭게도 ‘Seeds of Love’를 듣다 보면 낯설다기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가곡이나 동요의 서정성이 느껴진다. 특히 도입부의 하프가 짚어내는 선율은 우리네 가곡인 ‘고향의 봄’ 첫 구절 “나의 살던 고향은”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켈트의 특징인 5음 음계적 특성과 더불어, 매케닛이 구사하는 ‘여운의 미’ 때문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맑게 뻗어 나가는 그녀의 음색은 ‘봄 처녀’나 ‘고향의 봄’에서 느껴지는 본질적 서정성과 닮아있다. 또한 낮은 현의 묵직한 울림은 아쟁이나 가야금의 음역이 주는 위로와 맥락을 같이 하며, 국경을 넘어선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온함 아래, 가사는 삶에서 마주한 상실과 이에 따른 성찰을 역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나의 정원에 꽃들이 만발할 때, 한 남자가 찾아와 타임을 나누어달라 했네.
나는 그에게 정원을 내주었고, 그가 꺾어간 모든 장미와 백합 대신 가슴속엔 슬픈 장미 한 송이만 남았네...
정원사여, 나의 정원을 가꾸어주오, 누구도 나의 '타임'을 훔치지 못하도록”
이처럼 노래는 상실의 아픔을 지나온 이들에게 정원을 가꾸는 정성, 즉 삶을 지켜내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봄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완벽한 시기다. 매케닛의 ‘Seeds of Love’를 들을 때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 정원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어떤 꽃을 피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곡은 고요한 응원이 될 것이다. 이제 차가운 대지 위에 나만의 소중한 씨앗을 심어볼 차례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