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문화의 신비로운 축, 청두
‘天府文化的神秘轴心’ 成都
[아츠앤컬쳐] 청두 평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천부문화(天府文化)는 중화 문명을 구성하는 핵심 줄기이자, 고촉문명(古蜀文明)의 정수가 흐르는 역사적 토대다. 고촉문명은 단순히 지역적인 문화를 넘어 중화 문명이 ‘다원일체(多元一體)’의 구도로 형성되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실증이다. 쓰촨의 깊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피어난 이 문명은 황하 유역의 화하문명(华夏文明), 장강 하류의 량주문명(良渚文明)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중국 상고대(上古代) 3대 문명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다.
그 발전 맥락 또한 독보적이다. 약 5,000년 전 영반산(营盘山)과 보돈(宝墩) 등 선사시대 유적에서 태동하여, 상주(商周) 시대에 이르러서는 삼성퇴(三星堆)와 금사(金沙) 유적은 찬란한 청동기 문화의 정점을 찍으며, 20세기 인류 고고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중화 문명의 중요한 기원지로서 고촉문명은 지금도 청두의 땅 아래에서 신비로운 생명력을 내뿜으며 우리에게 고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천부(天府)의 도시' 청두(成都)는 3,500여 년의 장구한 세월 속에 빚어진 역사의 결정체다. 특히 놀라운 점은 2,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지명 변경이나 천도 없이 제자리를 지켜온 정체성이다. 청두는 마치 거대한 고전 수묵화 위에 동시대의 가장 날 선 그래피티를 덧칠한 듯, 과거와 현대가 중첩된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 태동은 약 4,500년 전 청두 평원에 나타난 '보돈(宝墩)문화'라는 고촉 선민의 정착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기원전 316년, 진나라가 파촉(巴蜀)을 정복하며 중원 문화와 빠르게 융합되었고, 기원전 311년 대성(大城)과 소성(小城)이 축조되며 문헌상 청두 건설의 공식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어 촉 군수 이빙(李冰)이 주도한 도강언(都江堰) 수리 공사는 청두 평원을 비옥한 '천부지국(天府之国)'으로 탈바꿈시키며, 찬란한 문화 발전을 지탱할 물질적 기초를 마련했다.
역사 속 청두의 성취는 눈부시다. 청동 제련과 염정 기술 등 고대 과학기술의 정점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세계 최초의 지폐인 교자(交子)를 발명하며 경제적 혁신을 이끌었다. 문학적으로도 한부(漢賦) 사대가 중 촉인 세 명을 배출할 만큼 문풍(文風)이 드높았다. 이러한 천부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청두를 중국 서부 지역의 정치·경제·문화를 견인하는 국가 중심 도시이자 글로벌 예술문화 도시로 우뚝 서게 했다.
‘천부지국(天府之国)‘, ‘하늘이 내린 풍요로운 땅’이라 불리는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비옥한 토양보다도,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내는 ‘공존의 기술’에 있다. 붉은 담장이 품은 충의의 기하학 청두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삼국지의 서사가 숨 쉬는 무후사(武侯祠)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삼국시대 촉한의 명재상 제갈량(诸葛亮)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후세 사람들은 그의 작위였던 무향후를 줄여 그를 제갈무후라고 불렀던 데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황제 유비와 재상 제갈량이 한곳에 잠든 군신합사(君臣合祀) 사당이다.
무후사의 백미는 본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홍월량벽(紅月亮壁)이다. 짙은 대나무 숲의 녹음과 강렬하게 대비되는 붉은 담장은, 난세의 풍파 속에서도 변치 않았던 영웅들의 단심(丹心)을 시각화한 장치와도 같다.
굽이진 담장 사이로 빛과 그림자가 교차할 때 관람객은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우와 수어지교(水魚之交)의 신뢰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닌, 오늘날에도 유효한 ‘관계의 미학’임을 깨닫게 된다. 제갈량의 비장한 문장이 새겨진 ‘출사표’ 비석 앞에서 느껴지는 인문학적 무게는 청두가 가진 예술적 깊이의 근간을 이룬다.
자연의 순리로 설계하고 천년의 풍요를 기원하며 건설한 도강언(都江堰), 청두를 풍요롭게 만든 실질적인 동력은 도시 외곽의 도강언에 있다. 기원전 256년 진나라의 이빙 부자가 설계한 이 수리 시설은 거대한 댐으로 물을 막는 대신 자연스러운 지형의 원리를 이용해 물줄기를 나누는 ‘무위(無爲)의 공법’을 선보인다. 특히 촉한의 재상 제갈량은 이 시설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전담 부대를 두어 철저히 관리했다. 도강언이 선물한 비옥한 평야는 촉한의 국력이 되었고, 그가 장려한 비단인 촉금(蜀錦) 산업은 촉한의 젖줄이 되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생의 파트너로 삼은 도강언의 철학은 2,2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현대의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커다란 영감을 준다.
두보초당(杜甫草堂)은 시성(詩聖)의 고독이 빚어낸 문학적 은신처로서, 무후사가 영웅들의 장엄한 서사를 노래한다면, 두보초당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문학의 공간이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가 전란을 피해 머물렀던 이 소박한 초가는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고결한 고립의 장소로 손꼽힌다. 울창한 대나무 숲과 이끼 낀 돌담, 시냇물이 흐르는 정원은 인위적인 화려함을 걷어낸 중국 고전 정원의 정수를 보여준다.
시인은 이곳에서 굶주린 백성을 걱정하고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며 240여 편의 시를 남겼다. 낮게 내려앉은 초가의 처마 아래에서 느끼는 정적은 속도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문학적 휴식’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게 한다.
'천부문화의 신비로운 축'을 따라 걷는 이 여정은 결국, 억겁의 시간을 견뎌온 고대의 지혜와 오늘날의 우리가 조우하는 과정이다. 2,50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름을 바꾸지 않은 청두의 굳건함은 변화무쌍한 시대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붉은 담장의 충의와 대나무 숲의 서정, 그리고 강물을 다스리는 치수의 철학이 겹겹이 쌓인 이 땅에서 우리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닌, 시공간을 유영하는 예술가가 된다. 청두라는 거대한 수묵화 속에는 아직 우리가 다 읽지 못한 신비로운 메시지들이 여전히 땅 아래 숨 쉬며 새로운 인연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글 ㅣ이미화
한중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
한중예술교육센터 대표
꼬레월드 베이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