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발루 — 가라앉는 땅, 떠오르는 질문
[아츠앤컬쳐] 구글 검색창에 투발루(Tuvalu)를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연관 검색어는 '가라앉는 섬'이다. 선교사들이 성경을 번역하며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대목을 설명할 때, 현지 주민들에게 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난감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실제로 투발루의 평균 해발고도는 2m에 채 미치지 못한다. 9개 섬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인 니울라키타(Niulakita) 섬조차 해발 4.6m에 그친다. 해수면이 조금만 올라도 이들이 체감하는 위기의 무게가 다른 이유이다.
바닷물 속의 연설
2021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사이먼 코페(Simon Kofe) 외무장관은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바닷물 속에 정장 차림으로 서서 연설을 진행했다. 눈물도, 과장된 몸짓도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아팠다. 평생 웃으며 살아온 이의 얼굴에 깊이 새겨진 웃음골이,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기후 현실의 무게를 말없이 전했다.
그의 행동은 퍼포먼스가 아니라 9개 섬, 총면적 26㎢에 사는 1만 1천여 명이 날마다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NASA는 향후 30년 안에 최소 15cm 이상의 해수면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지금 당장 줄인다 해도 이 상승은 되돌릴 수 없다. 평균 해발 2m의 땅에서 15cm는 재앙에 가까운 수치다. 달과 태양의 인력이 겹쳐 해수면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킹 타이드(King Tide) 현상이 덮치면 수도 푸나푸티(Funafuti) 토지의 절반이 이미 바닷물 아래 잠긴다.
서서히 죽어가는 일상
해수면 상승 속도가 당장 사람을 집어삼킬 만큼 빠르지 않더라도, 이 땅의 주민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바닷물이 스며든 땅에서 끌어올린 식수는 이미 오염되었고, 소금기에 절어버린 농지에서는 척박한 산호초 토양에서도 대대로 잘 자라준 기초 식량인 타로(taro)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나고 자란 땅에 발을 붙이고 있으되, 이미 기후 난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진정한 리스크는 사회와 정서의 영역에서 더욱 치명적으로 나타난다. 투발루 정부는 국가 소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피지, 호주 등 주변국과 이주 협정을 체결하는 실정이다. 이는 수천 년간 섬에 뿌리내려 온 언어와 문화, 공동체가 영원히 해체되는 거대한 사회적 리스크를 의미한다.
데이터 서버 속의 국가
이 상황에서 투발루가 선택한 응답은 놀랍다. 국가 전체를 3차원 가상세계로 옮기려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실소 반 한숨 반이었다.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기획쯤으로 흘려들었다. 그러나 이 황당한 제안은 기후헌금을 걷으려는 ‘쇼’가 아니었다. 투발루가 디지털 국가를 세우려는 이유는 나름 진지하다. 1933년 몬테비데오 협약(Montevideo Convention)에 따르면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받으려면 영토, 인구, 정부, 외교 능력이라는 네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물리적 영토가 바다 아래로 사라지면 국가 지위 자체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메타버스 공간에 디지털 쌍둥이를 구축해 가상의 영토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그러므로 생존 전략이다. 투발루는 2023년 헌법을 개정해 기후변화로 물리적 영토를 잃더라도 국가 지위는 영구히 유지된다는 조항을 세계 최초로 명문화했다.
고향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데서 오는 고통을 뜻하는 신조어, 솔라스탈지아(solastalgia). 데이터 서버 속에서만 고향을 만나야 하는 미래는, 물리적 생존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문화적 뿌리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투발루는 기후변화가 한 민족의 내면에 얼마나 잔혹한 상처를 새기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슬프고도 진지한 사례이다.
글 ㅣ 박재아는 '섬 좋아서 섬 일하는' 섬 전문가(Islandophile)로, 지난 20여 년간 남태평양에 위치한 피지, 사모아 관광청 및 21개의 태평양 도서국 및 자치령을 관할하는 태평양관광기구(SPTO), 그리고 인도네시아 관광창조경제부(MoTCE-RI) 한국지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모리셔스, 팔라우, 크로아티아 관광청의 파트너이자, 조선대학교 대외협력교수, 태평양학회 이사직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