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백남준이 크로아티아를 만난 이유
2026.3.19~6.14, 백남준아트센터(경기도 용인)
백남준 서거 20주기, 아드리아해(Adriatic Sea) 너머 미디어아트의 원류를 찾아서 《불연속의 접점들》
[아츠앤컬쳐] '백남준과 크로아티아?'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조합이다. 비디오 아트의 전설과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이 둘 사이에 무슨 인연이 있다는 말인가.
놀랍게도 그 인연은 꽤 깊고 오래되었다. 1960년대, 백남준이 독일 부퍼탈(Wuppertal)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텔레비전을 해체하며 세상을 도발하던 바로 그 무렵, 아드리아해 건너편의 도시 자그레브(Zagreb)에서도 일군의 예술가들이 컴퓨터와 알고리즘을 들고 예술의 미래를 외치고 있었다. 두 세계는 서로를 몰랐지만, 놀랍도록 비슷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 60년의 시차를 단번에 뛰어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가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Zagreb)과 공동 기획한 《불연속의 접점들(Circuits of Chance)》이다.
1961년 자그레브, 세상이 알아채지 못한 혁명
백남준이 1963년 독일에서 텔레비전을 해체하며 세상을 뒤흔들 때, 아드리아해 건너편에서도 조용한 혁명이 진행 중이었다. 무대는 자그레브. 이름은 뉴 텐던시(New Tendencies, 크로아티아어로 노베 텐덴치예 Nove tendencije). 1961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1973년까지 이어진 이 운동은 예술을 하나의 연구 행위로 정의하고 컴퓨터와 알고리즘을 창작 방법론으로 끌어들인 선구적 흐름이었다. 1968년에는 '컴퓨터와 시각 연구(Computers and Visual Research)'라는 주제 아래 알고리즘을 예술 창작에 본격 도입했다. 뉴 텐던시 참여 작가들은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개최한 옵 아트(Op Art) 선언적 전시 '반응하는 눈(The Responsive Eye)'에 초청될 만큼 당시 국제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세상은 이 도시를 잊었다. 이유는 당시 크로아티아가 속해 있던 구 유고슬라비아가 냉전의 장막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백남준아트센터가 그 빚을 갚는 셈이다.
만난 적 없는 두 세계가 던진 같은 질문
전시장에서 가장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은 달리보르 마르티니스(Dalibor Martinis)의 영상이다. 1978년의 그가 카메라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32년 뒤, 2010년의 그가 유머를 잔뜩 실어 그 질문에 답한다. 같은 사람, 다른 시간, 그런데 이어지는 대화—이것이 이번 전시가 말하는 '불연속의 접점'이다.
백남준과 크로아티아 작가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르티니스와 산야 이베코비치(Sanja Iveković)는 1982년 뉴욕에서, 1993년 자그레브에서 백남준을 직접 인터뷰했다. 몰랐던 두 세계가 결국 만나고 있었던 셈이다. 이번 전시는 그 접점을 60년 만에 공식적으로 재현한다. 크로아티아 작가 16인의 조각·설치·비디오·사진 26점이 경기도 용인의 미술관 안에서 그 긴 대화를 이어간다.
크로아티아 예술, 현지에서 직접 만나려면
이번 전시는 크로아티아를 아드리아해의 휴양지가 아닌, 유럽 전위 예술의 또 다른 진원지로 바라보는 시각을 연다는 데 의미가 깊다. 크로아티아 관광청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2,130만 명이 크로아티아를 다녀갔으며, 전년 대비 4% 늘어난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제 크로아티아는 자연유산뿐 아니라 현대 예술의 목적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크로아티아 예술의 심장은 수도 자그레브이다. 이번 전시의 파트너인 자그레브 현대미술관은 뉴 텐던시의 방대한 아카이브와 달리보르 마르티니스의 초기 비디오 아트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자그레브 구시가지에는 1952년에 문을 연 크로아티아 나이브 예술 박물관(Croatian Museum of Naive Art)도 있다. 세계 최초의 나이브 아트 전문 미술관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이 순수한 자기 방식으로 일구어 낸 회화·조각·판화 1,900여 점의 컬렉션은 엘리트 예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13세기에 처음 세워져 수백 년에 걸쳐 오늘의 모습을 완성한 성 마르코 교회(St. Mark's Church)의 알록달록한 타일 지붕이 시선을 붙잡는다. 크로아티아·달마티아·슬라보니아 삼합왕국과 자그레브 시의 문장(紋章)을 새긴 채색 타일 지붕은 19세기 말 복원 당시 완성된 것으로, 구시가지 어디서나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자그레브의 상징이다. 바로 옆에는 두 예술가가 2006년 자신들의 이별을 계기로 시작한 순회 전시를 발전시켜 2010년 자그레브 구시가지 쿨메르 궁전에 영구 개관한 실연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이 있다. 전 세계에서 기증받은 이별의 유물 약 3,500점을 전시하는 이 공간은 예술과 유머와 감동이 한 블록 안에서 공존하는 자그레브 자체가 하나의 전시 공간임을 실감하게 한다.
자그레브에서 차로 두 시간이면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에 닿는다. 16개의 호수와 90여 개의 폭포가 층층이 이어지는 이곳은, 장엄한 자연이 그 자체로 예술임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달마티아 해안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가 기다린다. 성벽 안에 갇힌 중세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별명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실감하게 한다.
지금, 용인에서 자그레브를 만나다
《불연속의 접점들》은 오는 6월 14일까지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계속된다. 개막 주말에는 196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크로아티아 실험 영화·비디오 작품 상영회가 3회 열리며, 백남준과 직접 교류했던 작곡가 밀코 켈레멘(Milko Kelemen)의 초기 대표작 〈콘체르탄테 즉흥곡(Concertante Improvvisazioni, 1955)〉과 〈서프라이즈(Surprise, 1967)〉 연주회도 예정되어 있다.
만난 적 없이 같은 질문을 했던 두 예술 세계. 60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침내 한 공간에서 마주 선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용인에서 경험하고, 언젠가 자그레브 현지에서 그 원류를 직접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 전시가 건네는 가장 매력적인 제안이 바로 그것이다.
《불연속의 접점들》 스크리닝 프로그램
반(反)영화에서 영화 파생까지
이 프로그램은 전시 《불연속의 접점들》 협력 큐레이터이자 참여작가인 단 오키와 산드라 스테를레 등 참여작가가 함께한다. 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엑세스 홀에서 크로아티아 영화감독 및 작가들의 전시를 계기로 구성된, 세 개의 크로아티아 실험 영화 및 비디오 아트를 만날 수 있다.
▪️1회차 상영프로그램: 크로아티아 실험 영화 1962-1999
▪️2회차 상영프로그램: 크로아티아 싱글채널비디오 1974-2000
▪️3회차 상영프로그램: 크로이티아 실험 영화와 싱글채널비디오 1993-2026
(프로그램 별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고)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1F 랜덤 액세스 홀
️ 일시
- 3월 20일(금) 15:00-17:00
- 3월 21일(토) 11:00-13:00 / 15:00-17:00
《불연속의 접점들》 | 2026.3.19. – 6.14. | 백남준아트센터 제1전시실
Special Screening of Croatian Experimental Films –
From Anti-Film to Film Derivations
This program accompanies the exhibition and features participating artists, including the exhibition’s collaborating curator and artist Dan Oki and artist Sandra Sterle. Held at the Random Access Hall of the Nam June Paik Art Center, the program presents three screenings of Croatian experimental film and video art, organized in connection with the exhibition of Croatian filmmakers and artists.
Within a broader theoretical discourse spanning from the 1960s to the present, the program invites viewers to consider Paik’s artistic practice alongside the works of Croatian artists through historical parallels, complementary heterogeneities, and related critical discussions.
▪️CROATIAN EXPERIMENTAL FILM 1962 – 1999
▪️CROATIAN SINGLE CHANNEL VIDEO 1974 – 2000
▪️CROATIAN EXPERIMENTAL FILM AND VIDEO 1993 – 2026
Venue: Random Access Hall, 1F, Nam June Paik Art Center
️ Dates:
- March 20 (Fri), 3:00 – 5:00 PM
- March 21 (Sat), 11:00 AM - 1:00 PM / 3:00 – 5:00 PM
How to Participate: Advance reservation(via profile Linktree)
Mar 19 - Jun 14, 2026 | Gallery 1, Nam June Paik Art Center
시사매거진 박재아 기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