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카노바 Antonio Canova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의 조각가
[아츠앤컬쳐] “나는 한때 고대인들이 음(音)을 만들어 낸 후 조화의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음조를 높고 낮게 조절한다는 내용을 읽었다. 나체를 다루는 예술가도 이와 같아야 한다.” 위대한 베네치아의 조각가 카노바가 남긴 이 구절에는 ‘아름다움’과 ‘조화’의 대명사였던 그의 모든 철학이 담겨있다.
베네토와 베네치아 지역은 조르조네(Giorgione), 벨리니(Bellini), 티치아노(Tiziano), 티에폴로(Tiepolo), 팔라디오(Palladio), 베로네제(Veronese)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 및 건축가들을 탄생시켰다. 그 중 베네토는 가장 위대한 조각가이자 서구 문명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인 안토니오 카노바를 배출했는데, 그는 베네치아 근처의 작은 마을 포싸뇨(Possagno)출신이다.
그의 가문은 예술 작품의 생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돌을 다듬는 부유한 석공 공동체로, 포싸뇨의 채석장 주인이자 건축가였다. 그러나 그는 4세에 고아가 되었으며 그의 조부의 손에 키워졌다. 어린 카노바의 예술적 자질을 감지한 조부는 자신이 일하던 별장에서 그에게 작업을 시켰으며, 별장의 주인은 어린 카노바의 교육을 담당했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다른 도시와 달리 장식적인 기능 이외에는 대리석의 조각일은 그다지 전망이 좋지 않았고 이러한 이유로 카노바는 베네치아를 떠나 로마에서 평생을 거주하며 돈과 명예를 얻었다.
카노바는 예술사의 매우 중요한 인물로 유럽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인 1757년에 태어났다. 그가 30세가 되었을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 놀라운 사건을 언급하기 전 계몽주의 철학과 신고전주의 예술 및 당시의 문화적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고전주의는 베르사유와 카세르타궁과 같은 귀족과 부유층의 바로크와 로코코적인 건축 양식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신고전주의는 유럽 황실의 지나친 부패와 권력 게임과 대조되는, 고전적인 그리스 문화의 담백한 아름다움과 예술적 완전성을 재건한다. 고대 그리스로의 귀환은 도덕적 가치의 모방을 넘어 바로크 양식이나 그 퇴폐성과 구별되며, 이상적인 미의 개념과 현실 세계와 분리된 미의 조화를 불러온다.
카노바는 인간의 정화와 미를 대표하는 조각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절대적이며 우아한 조각품을 탄생시킴으로 고대 세계의 미의 원형을 회복하였다. 먼저 카노바를 이해하려면 그의 영감으로부터 완성된 원형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완성한 원형은 신들의 올림푸스같이 실제보다는 오히려 존재하여야 할 것들에 대한 천상의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이상적이며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오직 신들에게 말미암기에 그의 기준은 그리스 신화와 역사, 그리고 신화의 인물들이며, 가톨릭 문화권 내의 성인들, 제자들, 성모 또는 예수가 아니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에 대해 생각할 때 감정과 표현적 열망의 결합을 떠올리지만, 카노바는 반대로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하얀 대리석으로 작업하기를 선택했으며, 이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된 빛나고 완벽한 인물들은 그의 심오한 사상을 통해 생생한 작품으로 탄생했다. 카노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일하는 방식인데,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린 후 곧바로 스케치나 그림을 대리석 조각에 실행하여 반복 불가능한 하나의 작품을 창조한 반면, 카노바는 네 단계의 작업을 거쳐 작품을 만들었다. 먼저 아이디어를 그린 후 점토로 윤곽을 만들고 그 후 석고로 작업하여 마지막으로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석고 작품들은 베네치아와 트레비조(Treviso) 근처의 전시실에 진열되었으며, 로마의 카노바 공방에 있던 작품들을 그가 죽은 후 포싸뇨로 가져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석고들에는 ‘발견점(Repere)’이라는 이름의 높고 낮은 검은 못들이 가득 붙어있는데, 가장 도드라진 점들을 ‘대표점’이라 불렸다. 이는 다양한 점들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고 그것과 동일한 대리석 작품들을 제작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 방법으로 카노바는 많은 대리석 작품들을 얻게 되었다. 또한 그의 공방에서는 일련의 생산과정이 진행되었는데, 먼저 동료들이 대리석의 작업을 시작하면 카노바가 도착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사실에 미루어 각각의 석고 작품과 동일한 복사본을 제작하였던 카노바를 실제 3D 조각의 발명가라 할 수 있다. 카노바의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와 침묵, 완벽한 세계의 질서의 힘을 느끼게 한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는 <큐피드와 프시케(Amore e Psiche)>이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비너스는 놀랄 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아가씨 프시케를 질투하여 자신의 아들 큐피드에게 그녀가 가장 혐오스러운 사람의 품에 안기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프시케를 본 큐피드는 곧 사랑에 빠져 그녀를 화려한 궁전으로 데려가 어둠 속에서만 방문하며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프시케에게 자신에 대해 알려 하지 말기를 당부하지만, 호기심 많은 프시케는 이 규칙을 어겨 결국 죽음에 처하게 된다.
큐피드는 아버지 제우스에게 그녀와 결혼할 수 있도록 요청하여 결국 그녀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 카노바는 신과 인간인 큐피드와 프시케의 영원한 사랑의 신화를 형상화하여 이 신성한 사랑에 비할 아름답고도 신비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이 작품에서 인간의 유한성은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순수로 승화되며 아름다운 육체로 변모되어 고전적인 신화로 재해석된다.
<큐피드와 프시케>는 신고전주의 미학 원리에 완전히 부합한 작품으로, 큐피드와 프시케의 몸짓은 섬세하고도 풍부한 표현력을 지니며 그 움직임은 균형적이고 연속적이다. 카노바는 부드러운 열정과 애정의 응시가 담긴 그들의 사랑을 신중하고 균형적인 방법으로 전달했으며, 큐피드의 날개 안에 프시케의 몸이 완벽한 곡선을 따르는 입맞춤의 순간을 육감적으로 재현했다. 이는 유희와 춤, 또한 영원의 순간이며 플라톤이 언급한 ’다른 하나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카노바는 이 작품 안에 멈춰진 절대적 미의 순간을 재현했으며, 삶의 기원인 여성을 아름답고 우아한 사랑과 영원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남성 혼자서는 사랑과 영원의 절대적 순간을 절대 경험할 수 없기에.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시 Basera Roberto Pasi
Journalist, Doctorate Degree University of Siena(Literature, Philosophy, History of Art with honors), Study at Freiheit Unverisität Berlin, Manager at Osho Resort, Poona In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