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NDERLAND

Kirsty Mitchell

2019-03-03     아츠앤컬쳐

[아츠앤컬쳐] 작품집 제작 후원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에서 28일만에약 5억이라는 기금을 마련하여 순수예술 관련 펀딩 사상 유례없는 최고기록을 세운 커스티 미첼(Kirsty Mitchell)은 비옥한 토지 덕분에 ‘영국의 정원’으로 알려져 있는 켄트(Kent) 지방 출신의 사진작가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독특한 경력이 있다. 사진이아니라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10년 동안 패션계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했다는 점이다.

전도유망한 의상 디자이너였던 그녀가 사진가로 인생의 항로를 변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배경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있다. 2008년, 뇌종양 말기 선고를 받고 돌아가신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작가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는데 당시 그녀를 병원으로부터 해방시킨 출구이며 안전한 도피처가 되어준 것이 바로 ‘사진(Photography)’이다.

작가의 대표작인 ‘원더랜드(Wonderland, 2009-2014)’ 시리즈는 이렇게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한 기억으로부터 탄생되었고, 2011년 어머니를 추모하며 발표한 전시가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자 작가는 패션계를 완전히 떠나 사진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영어교사이면서 무엇보다도 문학을 열렬히 사랑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성장하는 동안 매일 아름답고 환상적인 전래동화를 들려주었는데,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끊임없이 읽어주었던 이야기의 조각들을 반영하여 사진을 통해 글이 없는 동화책을 만들고자 하는 콘셉트(Concept)를 예술로 발전시켰다.

The White Witch

이렇게 탄생된 작가의 작품 ‘원더랜드(Wonderland)’는 전래동화와 어린 시절의 기억, 어머니에 대한 애도, 자연과의 영적 교감과 자유로운 발상에 의해 가공의 신화적 세계를 구성하고 일상(日常)과 비일상(非日常)을 병치시켜 리얼리즘(Realism)과 판타지(Fantasy)가 완벽하게 결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판타지’는 인간의 잠재의식에 기반한 것으로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새롭게 만들어 낸 실재하지 않는 ‘허구’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판타지(Fantasy)’를 실제계(Real)의 진리가 드러나는 동시에 거부되는 장소이고 상징화될 수 없는 진실의 파편들이 상징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욕망의 근원에 이르는 길인 동시에 그것에의 접근을 방어하는 상징적 베일로 설명한다.

작가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로 대체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수집된 기억의 편린들은 상징 기호가 적용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의 새로운 시나리오로 재구성됨으로써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새로운 창조의 샘이 되었다.

미첼은 작품 속 주인공들의 의상과 소품, 비밀의 문, 눈폭풍, 보트, 아름답게 피어나는 야생화, 집 근처의 우뚝 솟은 고목 등을 몇 달씩 장기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실제와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냄으로써 현실과 일치하는 판타지를 연출한다. 관람객들이 작품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투영하며 시각적으로 우화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원더랜드는 독립영화 제작에 비견되는 대규모 아트 프로젝트로 왕립학회, 하퍼즈 바자(Harper's Bazaar), 보그(Vogue Italia), 가디언(The Guardian), BBC, CNN, 슈피겔 온라인(Spiegel Online) 등 세계 각국 30여 개의 주요매체에서 주목해야 할 작가로 소개되었으며, 세계적으로 높은 권위와 명성을 가지고 있는 현대사진미술관 포토그라피스카(Fotografiska)와 함께 2020년까지 국제 순회전이 예정되어 있다.

2012년 겨울, 런던의 유서 깊은 Quaglino’s(1929~)에서 작가와 그녀의 남편을 만났을 때, 어머니를 회상하며 이야기하던 미첼의 상기된 목소리가 지금도 이따금씩 나의 귓전을 맴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머니가 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상력’과 ‘아름다움’에 대한 확고한 견해입니다. 그것이 나의 작업에 뿌리이며 끊임없이 나를 꿈꾸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작품문의: 070.7528.3862)

글 | 김이삭
예술감독, 이삭 아르테포베라 대표
director@issa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