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도 레니 Guido Reni
무한한 아름다움의 화가
[아츠앤컬쳐] 오늘날 우리가 ‘아름다움(美)’의 개념 또는 이를 창조한 화가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누구보다도 귀도 레니와 1600년대 볼로냐(Bologna)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로마나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페라라, 그리고 만토바 등이 예술의 중심지로 잘 알려져 있는 반면, 대중에게 덜 알려진 볼로냐는 호황기가 1500~1600년대로, 화가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와 조각가 장 볼로뉴(Jean Boulogne)가 활동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볼로냐 학파(scuola bolognese)가 탄생했고 또한 볼로냐 회화 운동과 함께 이탈리아 미술사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피렌체와 경쟁했다. 대표적인 예술가들로 카라치 가문의 루도비코(Ludovico)와 아고스티노(Agostino), 안니발레가 있으며 귀도 레니 또한 이들 중 한 명이다.
1600년대 형상미의 대표 주자인 귀도 레니는 1575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가였고 그의 영향은 귀도의 그림 안에 조화와 예술성, 명료한 아름다움으로 반영되었다. 귀도는 처음에 음악을 공부했지만 9살부터 아버지의 친구이자 로마에서 라파엘로(Raffaelo)의 작품을 연구하고 볼로냐에 정착한 플랑드르 화가 칼베르트(Denys Calvaert)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망 후 귀도는 칼베르트를 떠나 1500년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복원을 주도한 안니발레 카라치의 공방으로 옮기고 라파엘로(Raffaello), 미켈란젤로(Michelangelo), 티치아노(Tiziano), 베로네제(Veronese)등 대가의 회화풍과 르네상스의 미술의 탁월함을 자신의 그림 속에 축적했다.
당시 귀도 레니에 관한 카라치 가문의 서신들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그 중 안니발레가 사촌 루도비코에게 보낸 서신에는 귀도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지 말라는 당부와 귀도가 머지않아 그들보다 훨씬 앞설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귀도는 1595년 20세에 <성녀 마리아의 대관(L’Incoronazione della Vergine Maria)>을 그리며 특출함을 드러낸다. 플랑드르 스승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마니에리즘을 벗어난 이 작품은 당시 사조와 달리 그의 자율적 화풍이 엿보이며, 세련된 색채감이 돋보인다.
그 후에도 계속 열정적으로 그림에 매달린 덕에 드디어 청년기 작품 중 가장 뛰어난 <파에톤의 추락(La caduta di Fetonte, 1596~1598)>이 탄생한다.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쳐 1600년대 신고전주의(Néo-Classicisme)의 전제를 깨닫게 하는 이 프레스코화엔 ‘파에톤’이란 인물이 시사하듯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신화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태양의 전차를 끌겠다며 떼쓰던 파에톤이 전차에 오른 후 결국 통제력을 잃고 반항하는 말들과 하늘을 거칠게 폭주하는 내용이며, 결국 너무 높게 오른 파에톤이 은하계와 천체를 다 불태우자 성난 제우스는 그를 벼락으로 추락시킨다.
여기서 그림속 말들의 형상은 고전과 르네상스, 마니에리즘의 조화와 완벽성을 넘어서려는 귀도의 의지가 엿보이는데, 이와 더불어 인상적인 색채감은 회화적 힘과 우아한 추락, 그리고 귀도식의 불안감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1600년 그는 많은 작품을 의뢰받고 로마에서 라파엘로를 연구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 그의 전형적인 형태와 색감의 형식이 결정된다. 더불어 1500년대 말 시각과 회화에 혁명을 불러온 카라바조(Caravaggio)의 연구를 병행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귀도 레니는 후기 르네상스와 마니에리즘을 포함한 이탈리아 회화의 다양한 도해법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가라 할 수 있다.
1605년 완성된 <성 베드로의 순교(La crocifissione di Pietro)> 또한 카바라조의 극적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와는 구분되는 혁신적인 색감과 명암의 유희가 드러나 있다. 이렇듯 귀도 레니는 타 예술가에게서 받은 영감을 변형하고 전환하여 총체적으로 재탄생시키는 탁월한 화가였다.
1610년 수많은 추종자들과 새로운 회화세계를 구축하던 카라바조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유산의 계승으로부터 귀도를 자유롭게 한다. 카라바조의 표현적 밀도를 줄이고 새로운 색감과 밝기를 시도함으로 1611년 가장 뛰어난 작품인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La strage degli innocenti)>이 탄생한다.
여기에 카라바조나 바로크의 전형적인 어두움 대신 뚜렷한 하늘과 선명한 형상을 담고, 비극적 표현이 아닌 혼미의 감정을 무겁지 않게 뒤섞었다. 다양한 인물의 의복에 보이는 겹겹의 주름장식과, 더불어 그 인물들을 보호하는 듯 느슨하고 편안한 의복들, 또한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파괴되었으나 구성의 조화와 미학적 완벽함을 입은 장면을 통해 귀도는 감상자에게 장면의 극적 현실성을 인지할 수 없게 만든다. 이 그림으로 그는 바로크의 극적 회화를 넘어 라파엘로의 색상법을 흡수한 새로운 미의 개념과 함께 1600년대의 신고전주의로 모두를 이끈다.
마침내 카라바조의 유산으로부터 벗어난 귀도 레니는 색채와 형태의 선명함으로 고전주의의 근본으로 돌아서며, 라파엘로의 미적 개념과 플라톤 철학에서 기인한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의 영감에 도달한다. 또한 그는 색채의 규율에서 벗어나 표현법과 색채를 독립적으로 분리함으로 아름다운 색감과 섬세함을 끌어내며 볼로냐 미술사의 절대 고지에서 카라바조와는 상반된 또 하나의 강렬한 시적 세계를 그려냈다.
1628년에 완성된 <아스콜리 피체노의 고지(Annunciazione di Ascoli Piceno)>는 귀도 레니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예수 탄생에 대한 성모영보의 순간은 바로 신플라톤주의의 개념과 이상적 미의 완성을 조명할 수 있다. 귀도 레니의 시대를 초월한 미적 개념은 파스텔톤의 색채감과 함께 현실화되며, 장면의 묘사적 기능을 뛰어넘으려는 의지와 함께 세련되며 이상적인 완벽성으로 표현된다.
이는 라파엘로에서 출발하여 귀도 레니의 새로운 색채들로 열린 신고전주의의 완벽하고, 조화로우며, 절대적이고도, 영원한, ‘아름다움’이며 이로 더 이상 회화 속의 신화적 인물은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색채감으로 빛나는 고전미가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상적 아름다움의 중심에서 색채를 통해 미에 도달하며, 영원한 빛의 세계를 구축한 귀도 레니의 천재적 화법은 카라바조의 혁명 이후 최고의 가치라 부르기에 마땅하다.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예술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