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궁정화가
[아츠앤컬쳐]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는 1746년 스페인의 아라곤 지방 사라고사 가까이에 있는 후엔데토도스(Fuendetodos)라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도금공으로 많은 수익을 올리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대성당을 드나들던 궁정화가 프란시스코 바예우(Francisco bayeu)의 여동생과 결혼하면서 대성당에 프레스코화를 그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사라고사 성당 벽화를 그리며 상류층의 이목을 끈 뒤 주로 고관들의 초상화가로 명성을 쌓던 고야는 1780년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다. 그가 입회를 위해 제출한 작품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Christ on the Cross〉였다. 이후 고야는 1785년 왕립 아카데미의 회화부 부감독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국왕 카를로스 3세의 전속화가가 되었다. 그는 당시 전형적인 18세기식 스타일의 귀족들을 그린 초상화를 제작했다. 상류사회 사람들의 전신 초상화에서 인물의 거만하면서도 우아한 모습과 화려한 의상을 능숙하게 표현하고, 사냥하는 왕족들의 모습들을 담은 그림들도 다양하게 완성하였다.
고야는 궁정화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이러한 이유 중 하나가 고정적인 수입 때문이었다. 궁정화가가 되면 기본적인 생활비는 물론(궁정화가는 월급을 받는다)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초상화 주문을 쉽게 받을 수 있어 부를 축적하기에 아주 쉬웠기 때문이다. 결국 고야는 1788년 카를로스 4세의 등극과 함께 궁중화가의 자리에 오른다. 물론 ‘어용화가’라는 비아냥거림이 뒤따라 다녔다.
고야는 한편으로는 궁정화가여서 왕가와 귀족들의 위탁에 의해 작품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궁정으로부터 위탁을 받지 않은 테마에 관해서도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궁정화가의 지위를 유지한 채 처음으로 일반 고객들을 위한 독립적인 작품활동을 했던 화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예술의 자유는 경제적 자립 여부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던 고야는 궁중의 녹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부패한 군주제를 비판하던 예술가들의 단체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고야는 자신의 신념을 예술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예술가라고도 할 수 있다. 전쟁의 참화를 그린 작품인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El Tres de Mayo en Madrid(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의 총살 Los fusilamientos en la montaña del Príncipe Pío)>은 사건의 비극적 성격을 더하는 시대의 명화이다.
궁정에서 위탁받은 그림 중에도 현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 있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 La familia de Carlos IV>은 왕이 직접 초상화 제작을 명해서 완수된 그림이다. 고야는 왕실 가족들 틈바구니에 거리를 둔 채 어둠 속에 비켜나 있는 자기 얼굴을 함께 그려 넣기도 하였다.
고야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은 욕망과 본인의 창작성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모두 충족시킨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돈의 중요성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도 서민으로서 권력에 저항하는 삶을 모두 영위한 것이다. 그래서 미술사가들은 고야를 통해서 전시회를 위한 작품활동을 하는 ‘전시회 화가’가 ‘궁정화가’를 대체해가는 과정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면서도 어떤 측면에서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고야의 이러한 모습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고야의 삶과 예술의 복잡한 성격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항상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술사의 관점에서 21세기 지금의 시대적인 배경은 어떠할까? 미술은 미적 감성, 창의성의 근원으로 문화적, 사회적 가치가 높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인공지능(AI), 거대자료(빅데이터) 등의 기술과 융·복합해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술 분야의 낮은 수입과 높은 창작비용, 낮은 고용안정성, 전시관람 및 공급률의 지역 간 편차, 시장의 불투명성과 높은 시장집중도 등의 문제는 날로 심화된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는 2017년 4월 '미술작가 보수제도(아티스트피(Artists’ Fees) 제도: 작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인건비 지급)’를 국공립 미술관 6곳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임금의 기준단가는 중견·원로급 작가는 월 472만 원, 신진작가의 경우 월 236만 원이다. 여기에 전시 기간이나 작품 종류, 전시예산 가중치 등이 실제 지급액을 산정하는 데 반영된다. 만약 신진작가가 다른 사정 없이 한 달 내내 미술 전시에 참여한다면 월 236만원의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신진작가 10명이 참여하는 기획전이라면 1인당 23만6천원씩 돌아가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미술관은 작품 제작을 따로 의뢰했을 경우에만 제작비 명목으로 미술가에게 돈을 지급하고 별도의 전시 보수는 주지 않았다. 정부는 미술작가 보수제도를 시범운영을 거쳐 보완한 뒤 2018년부터 전체 국공립 미술관으로 확대할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 2018년 발표된 우리나라 미술진흥 중장기계획(2018년-2022년)을 보면, 기존 미술작가보수제를 확대하고 이를 법제화한다고 되어 있다. 국회도 미술작가 보수제도의 법제화를 준비했었고, 국공립뿐만 아니라 민간 미술관으로 이를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모든 미술전시업자에게 작가 보수 지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미술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발의 준비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이전에는 누가 유명 미술가인지는 의외로 쉽게 알 수 있었다. 답은 바로 당시 궁정에서 보수를 받고 일하는 궁정화가로, 최고의 그림 실력을 갖춘 화가만이 절대 권력자인 왕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다. 사실 미술가가 사회적으로 보상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미술관에서의 좋은 전시에 출품함으로써 시장에서 그 작가의 작품 가격이 올라가는 것일 것이다. 미술가가 처한 사회적인 환경에 따라 유연한 자세를 취한 고야의 모습을 현 우리나라 미술 환경의 변화 과정에서 되살려 볼 만하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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