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러와 명예훼손

2018-08-12     아츠앤컬쳐
Portrait of Whistler with Hat Whistler(1858)

[아츠앤컬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3)는 당시 미국의 신생 산업도시인 로웰(Lowell)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때 처음으로 미술교육을 받으면서 예술에 대한 시야를 넓히게 된다. 물론 훌륭한 가정환경도 한몫을 했다. 예술을 훌륭한 교육이라고 믿었던 휘슬러의 부모님은 피아노, 플루트, 하프를 포함한 여러 악기를 소유하고 자녀들과 연주를 하였다고 한다.

이후 21살이 된 휘슬러는 파리에서 프랑스 출신의 화가들과 함께 루브르의 명작들을 연구하고 모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한 성실한 학습보다는 보헤미안적인 삶에서 스스로 화가로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휘슬러는 특이하게 자신의 회화들에 음악적 제목을 부여한다. 주로 인물화들의 제목에는 ‘심포니(Symphony)’, ‘하모니(Harmony)’, ‘베리에이션(Variations)’과 같은 용어를 붙이고, ‘야상곡’이라는 의미의 ‘녹턴(Nocturne)’이란 제목은 자신의 풍경화에 사용하였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어떠한 음악적 기준을 회화에 접목하는 독특한 시도를 한 것이다.

Nocturne in black and gold_Whistler(1874)

휘슬러의 그림은 실제 대상의 재현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추상화된 형태와 선, 색에 의해 감성과 정신적 개념들이 구현되는 현대의 추상미술의 이념과 연결된다. 휘슬러는 “모방하는 사람은 궁색한 종류의 인간이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나무나 꽃 등 대상의 표면만을 그리는 사람이 예술가라면 예술가의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사진가일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의 일은 이보다 높은 수준의 일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휘슬러는 자신의 자유로운 느낌, 보헤미안적인 스타일과는 별개로 상당히 본인 작품에 관한 평가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특히 신문 기고, 인터뷰, 강의 등 대중 매체에 자신을 선전하는 것을 항상 확인하였고 심지어 자신에 대한 비평적 리뷰들을 수집하기 위해 출판물을 스크랩하는 대리인을 고용할 정도였다.

1877년 휘슬러의 작품인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떨어지는 축포(Nocturne in Black and Gold: The Falling Rocket)’가 런던의 한 갤러리에 전시된다. 그리고 비평가 러스킨(John Ruskin)이 나타난다. 러스킨은 당시 유명한 비평가로서, 예술이 삶과 분리되는 것은 질서와 협조의 원칙이 파괴되는 것이고 혼란과 분열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심미적 예술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에 있어서 예술은 인간의 삶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이며, 예술가는 사회와 무관한 것이 아니므로 예술과 사회와의 유기성은 절실한 것이었다. 특히 그는 예술과 노동과의 유기성을 중시했다. 예술가의 삶은 노동자의 삶과 일치된다고 보며, 노동은 단지 생산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노동을 통해서 인간이 가진 기능과 임무를 완수한다고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러스킨은 전시하고 있는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떨어지는 축포’를 보고는 “휘슬러 자신과 이 그림을 구매할지 모르는 구매자를 보호하기 위해 갤러리에 전시할 그림으로서 그릇된 교육을 받은 화가의 작품인 고의적인 사기 행위에 근접하는 그림은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나는 지금까지 뻔뻔한 런던내기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관중들 면전에 물감통 하나 집어 던지고서 200기니의 값을 부르는 사기꾼의 경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라는 비평을 쏟아낸다.

John Ruskin(1882)

결국 이는 유명한 명예훼손 소송 건으로 비화된다. 휘슬러는 곧 러스킨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재판 도중 러스킨의 변호사는 그림을 그린 시간이 얼마나 됐냐고 물었고 휘슬러는 이틀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러스킨 측은 고작 이틀이라는 시간을 그림 그리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으로 휘슬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생의 작업으로 얻은 내 지식에 대한 대가로 그 값을 요구했다.” 결국 재판은 휘슬러가 승소하였다.

하지만, 변호사 비용으로 휘슬러는 결국 파산을 하고, 패소 이후 러스킨의 비평가로서의 명성도 점차 옅어져 갔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명예훼손 소송이 상당하다. 그 이유는 온라인을 통한 답글, 댓글 등으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고소 때문이다.

A씨는 온라인 게임상에서 닉네임 ‘XX’을 사용하는 B와 감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B를 비방할 목적으로 그 게임에 접속하여 누구나 볼 수 있는 채팅창에 “XX, 대머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2심 법원은 통상의 일반인이 ‘대머리’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고, 또한 사회적 가치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기도 하므로, A가 B를 ‘대머리’로 지칭한 것은 단순한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 진술이 아니라 사실을 드러낸 것으로서, 온라인상에서 상대방을 ‘대머리’로 지칭할 경우 당사자가 실제로는 대머리가 아님에도 대머리인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어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었다고 볼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A를 명예훼손의 유죄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법원에 가서 다른 판단이 나왔다. A는 인터넷 게임을 통해 ‘XX’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B와 게임을 한 적은 있으나, B의 외모에 대하여 알고 있는 바가 없었다. 현대생활에서는 온라인 공간을 통하여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나 표현도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타인의 권익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나 침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절제와 규범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글을 게시하는 것도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의한 보호의 대상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므로, 게시한 글에 대한 형사적 제재에 관한 규정은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해석·적용하여야 하고, 그로써 온라인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의사표현이 지나친 제약을 받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보통신망(온라인)을 통한 명예훼손죄의 법리에 비추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한 ‘거짓의 사실’은 개인의 주관적 감정이나 정서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볼 때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내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그 표현을 하게 된 상황과 전후 맥락에 비추어 그 표현 자체로 ‘구체적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표현 중 문제가 되는 ‘대머리’라는 표현은, 그 표현을 하게 된 경위와 의도, A와 B가 직접 대면하거나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라도 상대방의 모습을 본 적이 없이 단지 온라인이라는 사이버 공간의 게임상대방으로서 닉네임으로만 접촉하였을 뿐인 점 등 앞서 본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볼 때, A가 B에게 모욕을 주기 위하여 사용한 것일 수는 있을지언정 객관적으로 그 표현 자체가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이라거나 그에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드러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무죄 취지의 판결).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혁신제도연구팀장,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