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과 악필
[아츠앤컬쳐]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독일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독일의 본(Bonn)에서 태어났으며, 성인이 된 이후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주로 살았다. 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환기에 활동한 주요 음악가이자 작곡가로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를 “음악의 성인(聖人)” 또는 “악성(樂聖)”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이 보통 가장 먼저 손대게 되는 베토벤의 곡은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Bagatelle No. 25 in A minor (WoO 59, Bia 515))’이다. 사실 이 곡의 악보는 베토벤이 죽은 지 40년이 지난 뒤 뮌헨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독일의 음악학자 루트비히 놀(Ludwig Nohl)이 원본을 발견하여 베토벤이 1810년 4월 27일에 곡을 작곡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를 출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베토벤의 자필 악보는 찾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듣는 ‘엘리제를 위하여’는 루트비히 놀이 편곡한 초기 버전이며, 후에 여러 작곡가가 편곡한 버전들이 출판되었다. 실제 자필 악보에는 ‘엘리제를 위하여. 4월 27일, 추억을 기리며. 베토벤’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일생 동안 엘리제라는 여성을 사귄 적이 없다. 이에 여러 학자들은 갖가지 추론 끝에 본래 베토벤이 ‘테레제(Terese)’라고 쓴 것을 ‘엘리제’로 잘못 읽고 출판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베토벤의 글씨는 지렁이가기어가는 것 같은 악필로 유명했다. 그가 손수 쓴 악보의 복사본을 보면 이를 쉽사리 알 수 있다.
베토벤답지 않게 달콤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지닌 이 곡에는 사실 끝내 이루지 못한 그의 애틋한 사랑의 에피소드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앞서 테레제라는 여성의 정식 이름은 테레제 폰 말화티(Therese von Malfatti, 1792~1851)였다. 베토벤이 빈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던 제자였고, 그녀에게 청혼한 것이 1810년 5월이었다. 이때 베토벤의 나이가 40세였던 데 비해 테레제는 겨우 18세였다. 그런데 단순히 나이 차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테레제는 귀족이었고 베토벤은 당시 천한 음악가라는 차별을 받고 있었다. 결국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청혼이었다. 테레제는 얼마 후 헝가리의 한 귀족과 결혼을 하였다.
이 곡은 바로 이 무렵, 즉 베토벤이 테레제에게 청혼을 하고 거절당하기 직전에 그가 사모하던 테레제에게 보낸 사랑의 음악 편지였던 것이다. 달콤한 멜로디와 애틋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는 젊은 연인에게 바친 베토벤의 깊은 애정을 간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천재는 악필’이라는 말이 있다. 선천적으로 뛰어난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다 보니 손글씨가 머릿속 문장생성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에디슨 등이 모두 역사 속 ‘악필가’로 유명하다. 그런데 예술가의 악필은 창작 활동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엘리제를 위하여’ 처럼 제목을 잘못 읽는 경우뿐만 아니라, 작가 톨스토이는 워낙 악필인 까닭에 그의 아내가 원고를 '해독'해 출판사로 넘기는 임무를 맡아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악필이기 때문에 시험시간 내 글씨를 예쁘게 쓰기 위해서는 시험시간을 더 늘려주어야 하고, 시험 시간이 짧은 것은 평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떨까?
A는 필기 속도가 느리고 악필인 사람이다. A는 몇 년 동안 사법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하였다. A는 사법시험 공고 중 ‘시험시간 및 시험과목’에서 특정 과목은 3시간의 시험 시간을 주면서, 나머지 과목의 시험시간은 각 과목당 2시간으로 배정된 부분이 짧다고 생각하였다. 2시간 내에 본인 글씨로 답안을 썼지만 낙방한 이유는 자신의 악필 때문에 채점 위원들이 제대로 평가를 못 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에 A는 시험 공고 중 시험시간에 관한 부분은 시험시간을 지나치게 짧게 정하고 있어서 자신의 직업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시험시간이 짧은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도 이를 터무니없다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A와 같이 다른 응시자에 비해 필기 속도가 느리고 악필인 수험생의 경우 시험 시간이 시험 합격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로 인하여 이들이 법조인을 직업으로 선택하여 활동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으므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법관, 검사는 원칙적으로 사법시험을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자 중에서 선발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사법 시험에 불합격한 수험생의 경우 법관이나 검사로 임용될 기회가 자동적으로 박탈된다. 따라서 직업의 자유와 함께 A의 공무담임권이 침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A와 같이 필기 속도가 느린 응시자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시험시간을 과목당 2시간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 A의 평등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관해 판단해보기로 하였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전문분야의 자격시험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법시험은 시험 시간을 과목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법시험의 과목당 시험시간을 어느 수준에서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법시험제도와 관련한 정책적 내지 기술적인 문제로서 입법부 내지 그로부터 위임을 받은 행정부에 광범위한 형성재량이 허용된다. 사법시험은 실무가를 선발하는 시험으로서, 실무가에게는 법률지식을 얼마나 능숙하게 실제의 상황에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측면도 중요한 평가요소이다. 따라서 실무가를 선발하는 사법시험에 있어 주어진 문제를 충분하지 않은 시간 동안에 해결하는 능력을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
한편, 사법시험 제2차 시험의 응시자 모두에게 동일한 시험시간을 부여하고 있다고 하고 있으나, 일반적인 수험생들과 동일한 시간과 조건 등을 부여하는 경우에 객관적 능력을 평가할 수 없는 장애가 있는 응시생들에 대하여는 특별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현재도 배려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본적으로는 시험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하면서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응시자에 대하여는 예외적으로 특별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 기본권의 제한을 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법시험의 과목당 시험시간을 이 사건 공고의 내용과 같이 정한 것이 시험주관 관청인 법무부의 재량의 한계를 일탈하여 A의 직업선택의 자유 또는 공무담임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과목당 시험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한 이 사건 공고가 명백하게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하여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혁신제도연구팀장,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