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도시 빈과 “초일류 음악기업” 빈필
[아츠앤컬쳐] “모차르트(1756~1791)가 활동하던 당시 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영토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오스트리아 도시입니다. 반면 슬로베니아는 당시 오스트리아령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나라죠.”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빈에 사는 오스트리아 음악애호가 코이들씨는 정치적 사건이 끝날 때마다 유럽의 도시별 지도가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을 한국 관광객에게 이렇게 설명하며 유럽사를 이해하기 위해 기존의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브람스, 모차르트, 베토벤이 인생의 절반을 빈에서 보낸 이유!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완성한 브람스는 오늘날 북유럽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음악활동은 주로 빈에서 하고 빈에 묻혔다. 인류 최고의 천재작곡가, ‘작곡기계’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통치자 대주교의 녹을 받으며 자존심 접은 채로 편안한 일생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자신의 음악적 재능만으로 전업작곡가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과감하게 다른 나라 도시인 빈으로 이주하여 빈에서 생을 마감했다.
독일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나폴레옹군대가 1794년 라인란트 지역을 침공하여 쾰른의 선거후를 폐위하여 궁정음악가 지위를 잃게 되자 고민 끝에 빈으로가서 인생의 승부수를 띄우기로 결심하고 빈에서 성공하여 생을 마감했다.
대작곡가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빈에서 보내며 생을 마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빈이 18~19세기 당시 합스부르크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 제국의 수도로 유럽영토의 1/2 이상을 차지하며 파리와 함께 사실상의 유럽의 수도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파리가 그랜드오페라, 발레 등 대중적이고 화려한 “악가무(樂歌舞)” 중심의 사교적인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발달시킨 반면, 빈은 작곡가의 음악적 아이디어가 충분히 발휘되는 개성 넘친 예술음악에 의한 콘서트가 발달하여 진지한 음악적 내용으로 생계도 보장받고 대중적인 성공도 얻고자 하는 유럽 전역의 끼 많은 작곡가들의 꿈의 도시였다.
이러다 보니 오케스트라, 콘서트홀 등이 다른 어느 도시보다 풍부하여 빈은 그야말로 18~19세기 음악천재들의 각축장이었다, 음악의 도시 빈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장을 꼽으라면 단연 무직페라인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 그리고 콘체르트하우스 세 곳이고, 공연단체는 당연히 빈필과 빈심포니 두 팀이다.
빈의 3대 클래식음악 공연장
무직페라인잘, 슈타츠오퍼, 콘체르트하우스
‘무직페라인(Musikverein)’이라는 말은 “음악협회센터”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시내 한복판에 있기에 언뜻 작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건물 내에는 놀랍게도 브람스홀, 유리홀, 대강당, 금속홀, 나무홀 등 7개의 콘서트홀이 있다.
그 중 역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홀은 “황금홀” 대공연장으로, 바로 빈필의 주무대이면서 매년 연말연시에 총 3회(12.30, 12.31, 1.01)에 걸쳐 <빈필신년음악회>가 진행되는 홀이다. 내부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각종 조각작품과 기둥도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무엇보다도 이 콘서트홀이 세계적인 명성을 떨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음향 때문이다. 전형적인 슈박스(신발상자) 형태의 심플한 구조에 객석과의 거리가 최대로 좁혀진 이 홀은 황금도금 위 나무재료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음향반사로 인해 연주자나 관객 모두 최고의 음향을 경험할 수 있다.
빈필 신년음악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음악회’로 통한다. 더러 진지한 음악학자들은 “대중의 얄팍한 기호에 영합하는 왈츠 나부랭이를 2시간 동안 연주하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음악회”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빈필 신년음악회의 티켓가격은 매년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 음악회는 이제 단순한 음악회를 넘어서서 마치 유명한 원본 미술품처럼 “아날로그적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계속 천정부지로 오르는 명품상품”으로 정착했다. 사람들이 이 음악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순간 음악회의 브랜드가치는 날로 높아가고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꼭 그 음악회를 보고 싶어 한다.
유럽에서 오퍼(Oper)는 오페라극장(건물), 오케스트라, 가수, 합창단, 발레단, 무대제작팀, 기술팀, 행정팀 모두를 총칭하는 넓은 개념이다. 빈슈타츠오퍼는 그래서 오페라단이면서 오페라극장을 말한다. 연간 오페라, 발레공연 약 270회를 소화하는 빈슈타츠오퍼의 모든 공연은 빈필이 반주를 하게 되므로, 우리는 빈슈타츠오퍼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면 자동적으로 빈필의 연주를 듣게 된다. 슈타츠오퍼의 빈필오케스트라 멤버 중 엄격한 내부심사에 의해 세계 연주투어를 떠나는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예멤버가 재차 정해진다.
이 빈필이 매년 9월초에 시즌을 시작하여 다음해 6월 초순까지 빈에서 연주하고, 5월말에 쇤브룬 궁전 앞마당에서 야외음악회를 끝낸 다음 모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7월 중순~8월 말)로 옮겨가기 때문에 빈필 단원들에게는 사실상 잘츠부르크 이후 단 1주일 정도의 휴식기간을 제외하면 연중무휴 연주근무를 하는 셈이다.
빈에서 무직페라인잘과 빈필 다음으로 명성이 높은 이름은 바로 콘체르트하우스와 그 상주 오케스트라인 빈심포니다. 무직페라인잘과 불과 200m 떨어진 이 홀은 1913년 문을 열었는데 전통적인 무직페라인잘과 대조되는 형태의 페스티벌용 다목적공간으로 계획되었으나 빈에서의 음악회의 수요가 워낙 높아 오늘날에는 콘서트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이곳 콘체르트하우스를 홈그라운드로 사용하는 빈심포니는 빈필이 잘츠부르크페스티벌 상주 오케스트라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최근 20년 동안 급격히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호수 위 오페라무대’로 유명한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상주단체로 여름을 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빈필과 빈심포니의 실력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알려져 있다. 빈심포니의 음악감독 필립 조르당이 프란츠 뵐저-뫼스트의 후임으로 빈슈타츠오퍼 음악감독으로 지명된 것이 그 방증이다. (빈필은 음악감독제도를 두지 않음)
단 하나밖에 없는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의 기준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세계적인 명성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빈필의 연주를 접할 때마다 자주 느끼는 느낌이다. 특히 일반 오케스트라는 도저히 연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대곡, 난곡을 연주할 때의 빈필 단원들의 여유와 거장다움을 경험하면 이들의 1위 자존심에 감탄하게 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정상, 본인들이 세계정상의 표준을 매공연마다 만들어내는 지독한 장인집단…. 이것이 전후 대제국 오스트리아의 유럽에서의 영향력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도시 빈과 빈필의 경쟁력이 계속되는 이유이다.
글 | 서정원
클래식음악 해설자, 음악칼럼니스트이자 유럽음악여행 기획자이다. 서울에서 영문학과 미학, 독일 함부르크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지인들과 오페라를 공부하고 즐기며, 베를린, 뮌헨, 드레스덴,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베로나, 취리히, 파리 등을 방문하여 세계적인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콘서트를 경험했다. 현재 클래식음악공연기획사 서울컬쳐노믹스 대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