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칼날도 막지 못한 사랑

[아츠앤컬쳐]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이상적인 세계로의 걸음을 내딛기 위한 인류의 진보적인 움직임으로 기록되어 왔다. 부패한 왕권을 무너뜨리고 또 다른 왕권을 옹립하거나 이전 체제와는 전혀 다른 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진화다. 그러한 움직임 중에 역사적으로 꼽히는 사건으로 프랑스 혁명을 들 수 있다. 부르봉(Bourbon) 왕가의 통치 하에 극단의 빈곤으로 내몰린 프랑스 국민들은 1789년 봉기한다. 그 결과 혁명의 파도가 구체제(ancien régime)를 무자비하게 수장시켜버린다.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던 국왕의 목이 단두대에서 잘려나가고 몸에서 분리된 머리가 시민의 손아귀에 들린 채 우롱당하는 광기의 시대. 이 광기의 파도에 휘말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앙드레 셰니에(André Chénier, 이탈리아어 발음으로 ‘안드레아’)다. 런던주재 프랑스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셰니에는 프랑스계 아버지와 그리스 문화권에 속해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술적으로 조예가 깊던 그는 시를 쓰기도하고 미술가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ques Louis David)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릴 때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드는 방식에 대해 조언을 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미술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2011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에 올려진 <안드레아 셰니에>의 무대 세트가 다비드의 그림 <마라의 죽음>의 한 부분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도 역사적인 사건과 더불어 셰니에와 다른 예술가들의 교류를 상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국의 격변을 방관할 수 없던 셰니에는 귀국했고 곧 혁명의 흐름에 익숙해져갔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의 공포정치에 반대하여 입헌군주제를 주창하다가 32세의 나이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움베르토 조르다노(Umberto Giordano)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énier)>는 셰니에의 실제 삶에 가상의 인물들과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들을 삽입하여 창작한 베리즈모(Verismo, 사실주의) 오페라다. 베리즈모 오페라란 신화에 바탕을 둔 비현실적인 영웅이 등장하던 기존의 오페라에서 벗어나 실제로 있던 사건, 인물들처럼 사실적인 내용을 다루는 오페라로 프랑스의 자연주의 문학운동이 이탈리아 색채를 띤 오페라로 변이 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베리즈모 오페라 속 인물들은 장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개인의 고뇌를 낱낱이 드러낸다. 대본은 쟈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와 협업하여 좋은 결과를 내오던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가 맡았다. 시인 셰니에는 생전에 시집을 발간하지 못했지만 사후, 혁명기를 상징하는 예술가, 시인으로 자리 잡게 된다. <안드레아 셰니에>에는 셰니에의 대표적인 두 가지 시(‘즉흥시’, ‘단장시’)가 아리아로 등장한다.

오페라 대본의 원작은 쥘 바르비에(Jules Barbier)의 <앙드레 셰니에(André Chénier)>, 폴 디모프(Paul Dimoff)의 <앙드레 셰니에의 생과작품들(Life and Works of André Chénier)>이다. 조르다노는 1888년 악보 출판사 손초뇨(Sonzogno)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참가한다. 당시 6위에 머무르지만 손초뇨는 그의 가능성을 주목한다.

조르다노는 창작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대본가 일리카를 소개받는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음악보다 장중한 드라마가 담긴 음악을 작곡하는데 재능을 보이던 조르다노, 그의 손에 쥐어진 일리카의 대본이 바로 <안드레아 셰니에>다. 개인의 고뇌와 더불어 그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역사의 파도를 음악으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던 조르다노에게 적절한 대본이었다.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의 내용은 이렇다. 혁명이 다가오는 시기, 쿠와니(Coigny) 백작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안드레아 셰니에가 참석한다. 파티에는 백작의 딸 맏달레나(Maddalena), 그녀의 시녀 베르시(Bersi), 가문의 시종 제라르(Gérard)가 있다. 제라르는 노구를 이끌고 일하는 아버지를 보며 대를 이어 하인 신분으로 살아온 삶을 한탄한다.

한편, 맏달레나는 시인 셰니에에게서 사랑이라는 말을 하게 만들겠다며 혼언장담 한다. 셰니에는 사랑을 가볍게 취급하는 맏달레나를 꾸짖고 나아가 귀족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노래를 한다. 맏달레나와 셰니에는 사랑을 느끼지만 이미 혁명의 그림자는 이들의 운명위에 드리운 상태다. 약 오년 후, 맏달레나의 시녀였던 베르시는 창녀가 되어있다. 대대로 하인 신분이었던 제라르는 혁명을 기회로 삼아 로베스피에르의 수하가 되어 권력을 손에 쥔다. 셰니에와 제라르 두 남자는 여전히 맏달레나의 흔적을 찾고 있다. 가까스로 재회하는 셰니에와 맏달레나. 제라르는 셰니에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지만 맏달레나의 셰니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셰니에의 이름이 적힌 사형수 명단은 통과되어 셰니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맏달레나는 셰니에와 함께 죽기 위해 사형수 명단에 올라있는 한 명의 여인을 구하고 그 여인의 이름으로 사형수가 되어 셰니에와 함께 죽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숭고한 죽음 앞에 완성되며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테너 오페라’ 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오페라들이 프리마돈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반해 이 오페라는 테너가 소프라노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셰니에는 1막에서 귀족들의 구습을 비판하며 ‘즉흥시(L’improvviso)’로 알려진 ‘어느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Un di all’azzurro spazio)’를 부른다. 이 노래는 실제로 셰니에가 쓴 시 ‘정의의 찬가(Hymne a la Justice)’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다.

4막의 아리아 ‘5월의 아름다운 날과 같이(Come un bel di di maggio)’는 셰니에의 마지막 시 ‘단장시’에서 기인한다. 1막에서 철없는 귀족 아가씨였던 맏달레나는 셰니에를 통해 사랑의 숭고한 가치를 깨닫고 그에게 빠져든다. 혁명의 소용돌이를 겪고 나서 한층 성숙해진 맏달레나는 3막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를 부름으로서 제라르를 감복시키고, 4막에서는 셰니에와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자칫 통속적으로 보일 수 있는 동반 죽음은 맏달레나가 누군가의 어머니를 구해낸 후 연인의 곁에서 최후를 맞이함으로서 희생적인 면이 강조된다.

셰니에, 맏달레나와 삼각 구도를 형성하는 제라르 역은 바리톤들이 가장 탐내는 역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바리톤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사랑을 방해하다가 최후를 맞이하는 정형화된 캐릭터지만 ‘제라르’는 다르다. 그는 사회적 지위가 변화함에 따라 다양한 감정적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맏달레나를 연모하던 제라르는 하인에서 권력가로 지위가 변하면서 맏달레나를 차지하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에 감동받아 자신의 감정을 접고 연적 셰니에를 죽음에서 구해내기로 결심한다. 이기적이고 열등감에 차있던 제라르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보다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이다. 이처럼 가변적이고 입체적인 ‘제라르’는 실력 있는 바리톤들의 관심을 독차지 할 매력이 충분하다.

2016년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라벨라 오페라단(예술감독 이강호)이 <안드레아 셰니에>를 공연한다. 이강호 단장의 리더십 하에 오페라를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뭉친 라벨라 오페라단은 그간 시각 청각을 압도하는 무대를 선보이며 대작 초연을 성공시켜왔다. 이강호 단장의 탁월한 음악 해석과 더불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 양진모, 재색을 겸비한 정상급 오페라 연출가 이회수가 보여줄 <안드레아 셰니에>에 대한 기대가 높다.

셰니에 역의 이정원, 국윤종 맏달레나 역에는 김유섬, 오희진, 제라르 역에는 장성일 박경준을 비롯해 전 출연진의 캐스팅이 완료된 상태다. 라벨라 오페라단이 <안드레아 셰니에>로 다시 한 번 성공신화를 이어나가길 바란다. 라벨라 오페라단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2016년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글 : 김도윤 <수프림 오페라> 저자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2016년 9월 23일(금) ~ 25일(일)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시간  금 7시 30분 / 토 3시, 7시 30분 / 토 5시
티켓  VIP석 25만 원, R석 20만 원, S석 15만 원, A석 10만 원, B석 5만 원, C석 3만 원
문의  라벨라오페라단 02-572 6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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