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유쾌한 일탈을 꿈꾸다

내 대답은 예스, 49x42cm, 한지에 채색, 2011
내 대답은 예스, 49x42cm, 한지에 채색, 2011

 

[아츠앤컬쳐] 아이도 좋아하는 그림
김선영 작가는 무척 낙천적인 인성을 지니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진중한 미소를 지닌 그의 인상에서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놓인 감성이 읽힌다. 몹시 마른 체격이지면서도 강골로 보이는 외모에선 사뭇 ‘어른이 된 어린 왕자’의 느낌이 스친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점차 잃어가는 동심을 그리워한다. 만약 다시 지구를 찾은 어린왕자가 다가와 ‘원하는 게 뭐냐’고 물으며, 적지 않게‘ 그때’의 여린 감수성을 부탁하지 않을까?

오렌지향이 나는 바람, 49x42cm, 한지에 채색, 2011
오렌지향이 나는 바람, 49x42cm, 한지에 채색, 2011

김선영의 그림은 그렇게 동심을 잃은 어른들에게 잠시나마 시간을 되돌려 준다. 마치 양을 그려달라고 떼쓰는 ‘어른왕자’에게 마음속의 양들이 잠든 맞춤형 박스를 그려서 내보인 것 같다. 그림이 꼭 무겁거나 진지해야 좋은 것만은 아니다. 김선영은 어른이나 아이도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그림,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그림, 오랜 시간 함께 해도 지치지 않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실제로 김선영 작가의 팬층은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를 자랑한다.

두시간 뒤에 오세요, 45x59cm, 한지에 채색, 2015
두시간 뒤에 오세요, 45x59cm, 한지에 채색, 2015

김선영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낸 그림 중, 2011년 작품인 <내 대답은 예스>와 <오렌지향이 나는 바람>의 대조가 무척 흥미롭다. 우선 앞에 작품은 출정에 나선 콧물 흘리는 소년병의 힘겨운 표정과 ‘무조건 YES’를 외치는 목마가 재미를 더한다. 반면 뒤의 작품은 목마를 잠시 멈추고 전쟁의 불안감은 아랑곳없이 독서삼매경 후 곤히 잠든 소년의 모습이다. 마치 트로이목마가 지닌 평화로움과 팽팽한 긴장감의 이중성을 동화식으로 풀어낸 백미와 같다.

이처럼 김선영 작품에선 쉬운 듯 사색의 깊이를 더하는 매력이 숨어있다. 그래서 볼수록 정이 가고, 뒤돌아서면 이내 궁금해지는 감성적 스토리텔링의 묘미를 지녔다. 생경한 환경이나 어색한 타인과의 원활한 소통방식을‘ 어른왕자’의 일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가끔은 익숙해진 일상에서 과감하게 일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을 건네는 것도 같다. 그리고 무심결에 스치는 순간순간에 행복의 문을 여는 행운의 열쇠가 숨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속삭인다.

그림 읽는 다섯 개 키워드
그림을 보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만약 그림에서 보는 재미 이외에도 읽는 재미까지 찾아낼 수 있다면 감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김선영 그림이 바로 두 재미가 동시에 곁들여진 작품이다. 그의 그림들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선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을 모티브로 삼아 접근해보면 좀 더 수월하다. 김선영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꼽아보자.

후회하지 않는 선택의 비결, 53x45.5cm, 한지에 채색, 2014
후회하지 않는 선택의 비결, 53x45.5cm, 한지에 채색, 2014

첫째, 콧물 흘리는 소년이다. 작품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소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포수 같은 콧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다. 반면 또 다른 주인공 소녀는 말끔한 모습이다. 또한 소년은 하얗게 이를 드러내고 어정쩡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소녀는 옹 다문 입술에 한결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다. 어쩌면 그런 소녀를 만나고 싶은 소년의 욕망과 갈증 또는 애절함의 상징이 콧물일 수도 있겠다.

모두다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59x45cm, 한지에 채색, 2015
모두다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59x45cm, 한지에 채색, 2015

둘째, 묻지마 여행 중이다. 주인공들은 항상 배낭을 메고 있고, 낯선 장소에 불시착한 것처럼 주변 환경에 생경해하는 눈치이다. 마치 서로 다른 차원으로 ‘순간이동’한 직후를 표현한 것도 같다. 실제로 작가는 등장인물을 2차원과 3차원 경계의 즈음에 놓길 즐겨한다. 그래서 보는 이들은 낯섦과 친숙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왕구라 철학관 뻥도사, 91x71cm, 한지에 채색, 2010
왕구라 철학관 뻥도사, 91x71cm, 한지에 채색, 2010

셋째, 비상구 표지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차원을 오가는 출구 혹은 입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공간에서 콧물을 흘릴 정도로 불안한 상황이지만, 정신만 바짝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다시 행복하고 안전했던 곳으로 데려다줄 표식이다. 반대로 답답한 현실의 일상에서 구원해줄 일탈의 메신저일 수도 있다.

이제 내가 널 찾는다, 한지에 채색 2011
이제 내가 널 찾는다, 한지에 채색 2011

넷째, 눈을 볼 수가 없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대개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선영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커다란 선글라스 안경을 쓰고 있어, 지금 무슨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안경유리에 비친 하늘이나 구름, 특별한 도상이나 색감 등으로 미뤄 짐작할 따름이다. 어쩌면 그렇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오히려 관객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배려인지도 모른다.

다섯, 시간의 흐름이 숨겨져 있다. 다름 아닌 녹슨 소품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주인공과 관련된 사연들이 아주 오랜 시간과 함께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동시에 내일의 어제이기도 하다. 같은 시냇물에 두 번 발을 씻을 수 없듯, 시간의 흐름은 매순간들의 집합이다. 김선영 작가는 그 녹슨 설정으로 기억의 파편들이 지닌 의미와 소중함을 엿보이려 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소개 | 김선영 
신라대학교 미술학과 및 일반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그동안 5회의 개인전과 수십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또한 홍콩 Asia Contemporary Art Show와 아트쇼부산 등 아트페어에도 초대되었다. 주요 작품소장 처로는 성인 스텐리스, 김현경 안과의원, 명인통증의학과, 이튼튼치과의원, Jay Moor & Harrison, IN PAINTER GLOBAL, 레드벨벳 키친 등이며, 그 외에도 다수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5월에는 5월에는 홍콩의 인기 아트페어인 ‘Affordable Art Fair’ 참여와 서울 서머셋팰리스호텔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글 | 김윤섭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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