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학창시절에 공부를 할 때, 무언가를 새롭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혹은 배우자를 향한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처음 다짐처럼 꾸준히 유지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아마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 나는 10년 넘게 여행을 핑계 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처음 사하라 사막 횡단을 결심했을 때는 도전과 열정이 나를 사막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의지를 한결같이 지켜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2003년 4월, 북아프리카 사하라에 첫발을 내디딘 후에도 사막과 오지를 향한 모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도전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자만할 수도 있지만 그 험난한 장도에 오를 때마다 나는 단 한 번도 완주를 장담한 적이 없다. 코스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이 나를 더 당혹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교만을 떨다가는 자칫 실패와 낙담을 넘어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
사막에서는 급작스레 불어대는 모래폭풍은 물론, 온천지를 쓸어버릴 듯 퍼붓는 폭우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05년 시각장애인과 함께 고비사막 250km를 달리다 맞은 레이스 둘째 날 저녁,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굉음의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퍼부었다. 고비사막 전부를 삼켜버릴 기세로 광분하듯 휘몰아쳤다. 몰아치는 폭풍우에 철핀이 뽑혀나가고 텐트가 뒤집히면서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폭풍우 속에 이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끔찍한 생각에 텐트 안에 숨죽이고 있는 선수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다. 웅크리고 앉아있는 시각장애인 이용술 님을 침낭 속에 밀어 넣으며 애써 침착하게 말을 했다. “이형,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이 형, 그냥 침낭 푹 뒤집어쓰고, 귀 막고 누워 있어.”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부디 이 포악한 비바람을 빨리 멈추게 해 주옵소서.~’ 저녁 9시 30분, 그제야 성이 찼는지 2시간 넘게 퍼붓던 대자연의 반격이 사그라졌다. 무섭게 휘몰아치는 폭우 속에서 인간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의 그랜드캐니언, 겁도 없이 시각장애인 송경태 님과 함께 지구상 두 번째로 큰 대협곡, Fish River Canyon으로 들어섰다. 부시맨이 화살 통으로 만들어 쓰는 별모양의 잎을 가진 퀴버 트리Quiver Tree가 주변에 듬성듬성 자라나 있었다. 사고는 내가 조심한다고 비껴가진 않는다. 강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강변을 두리번거리다 커다란 바위가 물길을 가로막고 있는 루트를 선택했다. 먼저 시각장애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허리춤까지 찬 강의 하상과 물 위로 솟은 바위를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며 세 개의 강줄기를 건넜다.
네 번째 강물을 가로 지르다 수면 위로 돌출된 커다란 바위와 맞닥뜨렸다. 시각장애인을 암반 중앙에 안착시키기 위해 함께 점프를 하다 그만 바위 모퉁이로 미끄러져 중심을 잃었다. 두 다리가 바위 틈새에 끼면서 무릎과 머리가 바위에 부딪혔다. 순간 두 팔을 버둥거렸지만 꿈쩍할 수 없었다. 잠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하지만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내 안의 내가 ‘깨어나 일어서라’고 나를 다그쳤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 건너편의 선수들도 발만 구를 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2010년, 죽음의 바다 타클라마칸사막 100km를 건넜다. 주민들의 삶은 모래와의 전쟁 그 자체였다. 레이스 중 블랙 제이드 강변에 터전을 잡은 투슬루코타크Tuslukotak 마을로 들어섰다.
농로를 따라 달리던 중 아랫도리가 조금씩 근질거렸다. 무심코 다리 쪽을 내려다보니 양 허벅지와 종아리에 수백 마리의 모기떼가 우글거렸다. 녀석들은 어깨와 팔뚝에 목덜미까지 들러붙어 무언가에 열중했다. 펄쩍펄쩍 뛰며 온 몸을 털었지만 대롱을 박고 피를 빠는 놈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모기떼에 놀라 레이스에 가속이 붙었다. 모자를 벗어 종아리와 허벅지를 연신 내리치고 휘저으며 달아났다. 녀석들도 맹공을 퍼부으며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타클라마칸사막에서 흡혈파리에게 피를 빨릴 걱정을 했던 것은 기우였지만, 모기라는 복병을 만나 혼쭐이 났다.
하지만 이건 전조에 불과했다. 주로에서 다시 온밤을 맞았다. 밤 1시를 넘어설 무렵 쌀쌀한 기운이 돌더니 모래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레이스 출발 전에 불어대던 돌풍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땅바닥을 훑으며 몰아치는 광풍에 주로 표시를 위해 꽂아둔 푯대가 순식간에 뽑혀 날아갔다. 몸을 지탱하기조차 힘들었다. 몸을 때리는 흙먼지가 피부 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웅크린 채 바람을 피해 보았지만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질긴 놈이 이긴다. 벗어날 수 없다면 버텨야 했다. 한 시간 넘는 사투 끝에 모래폭풍의 핵이 중심이동을 하며 서서히 비껴갔다. 이 순간 나를 지탱해준 힘은 처음 사하라로 향했던 그 도전과 열정을 늘 처음처럼 마음에 새겼기에 가능했나 보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원하는 것이 있다. 남은 이해 못 할 가슴속 열망이 자라 숨 쉬고 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좀 더 가치 있게 살아갈 권리도 있다. 굳이 달리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인생에는 달리기보다 사막을 건너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 학업 때문에, 가족의 생계 때문에 뒤로 밀어 두었던 일들. 여행, 자격증, 연애, 운동 등 당신이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이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늘 처음 마음가짐을 잊지 말고 꾸준히 준비한다면 당신의 생애에 최고의 순간들은 더 자주 찾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글ㆍ사진 | 김경수 오지레이서
서울 강북구청(팀장) 근무, 선거연수원 초빙교수, 제31회 청백봉사상 수상,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없는 인생이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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