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 레이스 The Ultra INDIA Race 2012

[아츠앤컬쳐] 간디, 힌두교, 갠지스 강, 카스트 제도, 타지마할(*아그라의 대리석 궁전),불교, 카레 등, 인도하면 종교와 철학 그리고 문명의 발상지가 있는 신비의 나라답게 많은 단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오토릭샤Auto Rickshaw의 물결이 먼저 떠오른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있듯 인도에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오토릭샤가 넘쳐난다. 이 오토릭샤를 툭툭이라고 부르며, 운전자를 릭샤왈라Rickshaw Wala라고 한다. 오토릭샤가 도로를 달릴 때 뿜어대는 매연은 인도의 대기를 오염시키는 주범이지만 빈민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이고 서민들의 주된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오토릭샤
오토릭샤

2012년 1월, 인도 남서부 케랄라Kerala주 깊숙한 곳, 코치Kochi를 거쳐 도착한 뮤나Munna에 전 세계 8개국에서 모험과 극한을 쫓아 19명의 선수들이 모였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와 한국이 유일했다. 내 안의 길들여지지 않은 나도 서울을 탈출해 그들과 합류했다. 레이스는 4박 5일 동안 해발 1,500m가 넘는 고원지대의 산야와 열대우림의 밀림에서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의 식량과 장비를 짊어지고 달려야 했다. 총 220km의 주로는 복잡하게 얽힌 개미집의 통로처럼 마을과 마을로 연결된 꾸불꾸불한 도로를 따라 펼쳐졌다.

레이스가 극에 달할수록 누군가 거침없이 내 심장을 주무르듯 숨이 턱 위까지 차올랐다. 간혹 스쳐가는 원주민들의 말소리조차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툭툭이들은 주로에서 달리는 나를 앞질러가며 경적 소리를 높였다. 깜짝 놀라 처진 고개를 들면 뒷좌석에 올라타라고 연신 손짓을 했다. 손을 들어 긍정의 눈짓만 보내면 바로 올라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밀림으로 뒤덮인 수풀 속을 가로지르는 길에서 누군가를 의식하거나 살필 필요도 없었다. 유혹은 너무 쉽고 달콤하게 찾아왔다.

타밀 나두Tamil Nadu주와 접경지역인 뮤나는 연중 아라비아해의 수증기를 머금은 해풍이 불어왔다. 숲 속은 온통 야자수 나무들로 가득했다. 밤새 산야를 품은 짙은 안개비가 온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새벽녘 처마 끝에서 낙숫물이 빗줄기처럼 흘러내렸다. 겨울철인데도 습도가 85%를 넘는 후덥지근한 대기 속에 이름도 알 수 없는 벌레와 곤충들이 들끓었다. 이글거리는 태양광선은 돋보기로 겨눈 듯 시종 내 몸통을 쫓아다녔다. 체내의 모든 수분이 빠져나갈 기세로 땀이 비 오듯 뿜어져 나왔다.

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이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는 야성이 이성을 지배한다. 유혹은 내가 약하고 부족할 때 찾아온다. 오토릭샤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니면 달리던 길을 그냥 묵묵히 갈 것인가. 순간 머릿속은 선택을 위한 비용효과분석에 들어갔다. 이곳까지 오기 위한 출전비, 항공료, 휴가, 아내의 눈총, 직장의 업무 공백, 위험 부담, 자괴감, 불안감까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많은 항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툭툭이에 한번 올라타면 최소 5천만 원 정도가 순식간에 날아갈 판이었다.

주로는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조성된 녹차밭과 원주민 마을을 번갈아 오르내렸다. 케랄라는 세계 최초로 자발적으로 공산주의가 수립된 주다. 선거철인지 마을 공터마다 후보자들의 유세와 붉은 공산당 깃발이 물결을 이루었다. 해발 1,700m에 있는 Madupatty Dam과 1,800m에 있는 Kundale Dam을 치닫다 아투카두 폭포Attukadu Water Fall를 넘어 다시 내리막을 따라 내달렸다. 주변은 여전히 녹차밭 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조성된 뮤나의 녹차밭은 인도 최고 갑부인 TATA그룹이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전남 보성의 차밭과 비교하면 어항과 풀장만큼이나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유혹을 뿌리치는 건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누가 대신 막아줄 수 없다. 20루피(*약 500원)만 내면 탈 수 있는 툭툭이에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맞붙어 싸우는 수밖에. “No, thank you.” 매번 릭샤왈라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점잖게 사양했다. 사실 내게 더 중요한 이유는 지금 눈앞의 유혹과 타협하는 것은 자신에게 굴복하는 것이고, 평생 스스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뮤나에서 선수들을 향한 외부의 물리적 공격은 사막의 환경과는 비교할 바 아니었다. 잠시 방심하거나 정신줄을 놓으면 한순간에 까무러칠 수 있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장티푸스, 파상풍, 황열병, A형간염 예방주사와 말라리아 예방약을 미리 먹은 터라 풍토병에 걸릴 부담은 덜었다. 레이스 때마다 겪는 통과의례는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양 발가락이 모두 터져버렸다. 더군다나 왼쪽 허벅지에서 일어난 경련이 심해져 내리막에서조차속도를 낼 수 없었다.

오토릭사의 유혹이 찾아올 때 나는 그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더 좋은 유혹을 떠올렸다. 인디아레이스‐열악한 환경을 뚫고 달리는 외로운 여정‐에서 정작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하중보다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오토릭샤의 끊임없는 유혹을 견뎌내는 것이었다. 완주의 기쁨을 넘어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록 이 여정을 이해하진 못 할지라도 훗날 녀석들은 아버지의 그 길을 멋모르고 쫓아올 테니까.

‘불가촉천민이 베다를 외우면 혀를 자른다.’ 베다Vedas는 신에게 비는 주문술을 엮은 힌두교 탄생의 근원이다. 여전히 계급사회가 존재하고 거리마다 걸인이 넘쳐나는 나라 인도.

“Where from?”, “Where going?” 주로에서 만난 아이들이 건넨 인사말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평생을 보내기도 한다. 오랜 세월 그 해답을 찾으려는 인도인의 문화가 일상에 녹아든 자연스러운 질문은 아니었을까. 2012년 정초, 오지레이스를 위해 불쑥 찾아간 인도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인디아 정글 레이스 http://www.canal-aventure.com

김경수 | 오지레이서
서울 강북구청(팀장)에서 근무하며 10년 넘게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고 있다. 블랙야크 셰르파와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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