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독일 태생으로 역동성, 강한 색감, 그리고 관능미를 추구하는 환상적인 바로크 스타일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루벤스는 초상화, 풍경화, 신화나 사실을 바탕으로 그린 역사화, 그리고 교회 제단을 위해 그린 반종교개혁적인 제단화로 유명하다.

사실 루벤스는 화가이기 이전에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잉글랜드의 찰스 1세에게 기사 칭호를 부여받은 외교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외교관으로 활동한 루벤스는 유럽 여러 나라의 왕실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스페인, 영국, 프랑스 왕실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작품들을 비롯하여 그의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회화작품은 거의 3천여 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여왕이자 국모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는 1621년 화가이자 외교관인 루벤스에게 파리의 룩셈부르크 성에 전시될 그녀와 그녀의 남편 앙리 4세의 삶을 그린 그림 시리즈를 주문한다. 이에 루벤스는 연작 대벽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Marie de' Medici Cycle)>를 완성한다. 루벤스는 역사화·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궁전의 21면으로 이루어진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그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후 마리 드 메디시스는 아들인 루이 13세와 계속 정치적 대립을 하다가 결국 프랑스에서 추방되는 신세가 된다(이런 연유로 마리 드 메디시스가 추가로 요청했던 다른 연작 대벽화는 루벤스가 더 이상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마리 드 메디시스의고독하고 쓸쓸한 마지막 생애와는 다르게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되어 루벤스의 최고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마리 드 메디시스와의 정치적 대립 속에 루이 13세가 이 연작 대벽화를 없애라고 했다면 루벤스는 이를 바라만 봐야 했을까?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이와 같은 사안에 대하여 판결을 내린 적은 없지만, 1, 2심 법원에서는 “소유자가 저작물을 저작자의 동의 없이 변경하여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가 저작물을 완전히 파괴하는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그 파괴 행위가 예술가의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포섭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면서, “저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양도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은 예술가라면 이후 자신의 저작물에 발생 가능한 운명에 대하여는 이를 점유자의 손에 맡기는 행위를 이미 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고, 소유자의 취향 변화 등 어떠한 이유로든지 예술저작물에 대해서 싫증이 났다면 소유자가 예술저작물을 양도·매도·교환·증여하거나,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으로부터 제거하여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소유권의 행사로 볼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즉, 현재로서는 저작물 원본에 대한 소유권을 다른 사람이나 국가에 양도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았다면, 저작물을 소유한 사람이 그 저작물 자체를 파괴하더라도 예술가가 이를 제한할 저작권법 상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2심 법원에서는 “헌법 제2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자신이 소유한 벽화를 철거한 후 소각한 행위는 예술창작자가 법적으로 가지는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그리고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사실 루이 13세는 ‘태양왕’이라 극찬을 받으며 절대왕정의 정점에 오른 루이 14세의 아버지이긴 하나, 루이 14세가 겨우 5살 때 세상을 떠났으며, 루이 14세처럼 예술을 사랑하고 즐겼다거나 음악과 무용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고 전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루이 14세가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루이 13세를 자연스럽게 보고 배웠을 것이므로, 루이 13세도 예술을 사랑하고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루이 13세는 자신이 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시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강박 관념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벤스의 작품인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마리 드 메디시스를 폐위하고 그 주변 인물들을 숙청하는 와중에도 이 연작 대벽화는 그대로 보존하였기에 우리가 이와 같은
걸작을 지금까지도 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 대법원이 소유권자가 자신이 소유한 작품을 마음대로 소각하는 등 없애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해준다고 하더라도, 이미 파괴된 그 작품은 다시 우리 곁으로 되돌아올 수는 없다. 그 파괴된 작품의 수준이 루벤스의 대벽화와는 큰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작품이 루벤스의 대벽화였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루이 13세는 이 대벽화를 그대로 놔둠으로써 루벤스를 최고의 화가로서 살렸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변호사/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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