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이탈리아식 코미디의 귀환
[아츠앤컬쳐]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이 우화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많은 이들이 공감할 원숙한 통찰을 담고 있다.” - 보스턴 글로브 -
“상상이 현실에 개입하는 순간을 포착한 능력은 마치 펠리니와 같다. 환상이 깨진, 아프도록 현실적인 세상의 모습은 더없이 기괴해 보인다.” - 르 몽드 -
<고모라(Gomorrha)>로 평단은 물론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이탈리아 영화계의 새로운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마테오 가로네(Matteo Garrone)의 후속 작품 <리얼리티(Reality)>에 대해 그는 “TV가 현세의 천국이라고 착각하는 이야기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의 ‘꿈의 미로’라는 부제로 주인공이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나폴리에서 생선장사를 하고 있는 한 평범한 가장이 스타가 되고 싶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우화적으로 다룬 블랙 코미디이다. 리얼리즘과 펠리니를 떠오르게 하는 이탈리아식 코미디를 넘나드는 스타일로 감동, 슬픔 게다가 잔혹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쓸쓸해지는 영화이다. 현대판 피노키오의 씁쓸한 우화라고 감독이 언급해서 그런지 영화의 전체적인 색조에서 동화를 보고 있다는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시작은 경쾌하고 즐거운 결혼식 피로연장을 보여주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옷과 사람들의 스타일은 마치 서커스 단원들이 일을 끝내고 휴식하면서 즐기는 듯한 모습이다. 주인공 루치아노는 아이 셋을 둔, 평범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면서 가족을 위해 사는 가장이다. 그는 결혼식에서 우스꽝스러운 여자 분장을 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며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런 소박하지만 진솔한 그에 비해 피로연에 초대되어 온 연예인 같은 사람이 오자, 자신의 딸이나 사람들은 더 환호하는 광경이 벌어진다. 형식적으로 참석하는 듯한 그를 배웅하면서 부러움과 씁쓸한 표정이 루치아노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어느 날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 유명 리얼리티 서바이벌 쇼인 ‘빅 브라더’의 오디션이 열려서, 아이들의 부탁과 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참가하게 된다. 우연히 1차에 통과하고, 2차 면접을 치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로마에 간다. 루치아노가 오디션을 받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즐겁게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마치 현실과 꿈의 괴리감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다 말하고, 분명히 합격하게 될 거라는 자신감에 차서 마을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이 그가 이미 대단한 스타라도 된 것처럼 추켜세우자, 그는 자신의 생선가게를 팔고 방송국에서 연락 오기만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합격했다는 소식은 오지 않는다. 자신의 불합격을 받아들일 수 없는 루치아노는 방송국에서 자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감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자선활동을 벌이는 등 엉뚱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착각에 빠진 엉뚱한 행동은 절망에 빠져야 할 현실을 익살스러운 시선으로 그려서 오히려 영화의 느낌이 쾌활하기조차 하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느낌처럼 현실을 가짜로 여기고 오히려 이룰 수 없는 꿈이 진짜라고 여기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결국, 자신을 가장 아끼는 가족들마저 지쳐가는데,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네버 기브 업!”이라는 말로 그는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하게 된다.
가로네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을 현대판 피노키오라고 여러 번 말하고 있다.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환상에 매혹되어 그곳에 가려고 애쓰는 루치아노는 피노키오를 닮았다. 그는 주제 면에서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동화처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현실과 꿈이 뒤섞인 세계를 매우 밝고 강렬한 색채로 담아내고 있다.
오프닝은 눈이 부실 정도로 컬러풀하고 시끄러웠지만, 밤에 촬영된 엔딩 장면의 하얀빛으로 꾸며진 오디션 세트장 휴게실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 분위기에 취한 듯 주인공이 긴 의자에 행복하게 누워있는 모습 또한 환상적이다.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이야기에 균형을 맞춰주는 빛과 음악으로 슬픈 스토리의 영화지만 끝날 때까지 느끼지 못하고, 감독이 의도하여 연출한 착각의 늪에 관객도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뉴욕 타임즈의 다음 말이 깊이 공감된다.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현대인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작품!”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
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_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