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국립극장
사진제공 : 국립극장

 

[아츠앤컬쳐] 국립극장은 현재 ‘국립레퍼토리시즌’이 한창이다. 올 9월부터 시작되어 내년 6월까지 299일간의 빼곡한 일정으로 관객들과 공감의 여운을 나누는 시간들이다. 국립무용단은 시즌 첫 작품의 주인공으로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인 송범의 <도미부인>을 선택하였다.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이한 국립무용단은 그 단초를 여기에서 찾았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극장 공연사의 새로운 역사의 전환을 이룬 시즌제의 의미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다. 즉, 시즌제는 검증된 레퍼토리 작품과 신작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시장 확장에 기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국립무용단의 <도미부인>을 과거의 박제된 유물로 남겨두지 않고, 단체의 대표 레퍼토리로 부활을 도모한 것은 의미가 크다.

도미부인 : 이윤정
도미부인 : 이윤정

 

이 작품은 1984년 LA올림픽 초청공연으로 특별 제작된 이래 국내외에서 200여 차례 공연되며, 한국무용극의 레퍼토리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용은 「삼국사기」를 통해 전해지는 ‘도미’와 도미의 부인인 ‘아랑’의 극적인 사랑이야기다. 이들의 부부애를 중심으로 권력에 의해 눈이 멀게 되는 도미의 비극성을 무용극 형식에 질박하게 담아내고 있다.

농악무, 장고춤, 처용무, 무속춤 등 다채로운 우리 춤의 빛깔들로 유희성과 여흥감을 고조시키고, 제의적 인생관을 녹용함으로써 객석에 긴장과 이완의 묘미를 전달해 주고 있었다. 더블 캐스팅으로 구성된 주역 무용수들과 솔리스트들의 빼어난 춤적 생명력과 군무진들의 유려한 공간 창출은 2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공백을 채워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명징한 움직임과 객석을 사로잡는 표현력을 가진 도미부인 역의 이윤정과 비장함마저도 심연한 사유의 몸짓으로 빛나게 했던 사당녀 역의 김영미는 무대의 힘을 보여주었다.

시즌제 레퍼토리 작품으로서의 가치성과 상징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이 작품의 구현은 상당한 만족감을 주었다. 하지만 약 30년 전의 레퍼토리를 현시점에서 부활함에 있어서는 동시대적 공감대를 충족시키도록 연출과 수정안무 등에 세세한 배려가 요구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국립무용단은 <도미부인>을 시작으로 ‘한국 여인의 초상’시리즈를 이어가려 한다.

한국 여인의 비장한 아름다움이 숭고하게 빛나기를 11월의 <그대, 논개여!>와 내년 6월 <춤, 춘향>에 기대해본다.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과 방향의 중심이 국립무용단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련된 호흡으로 살아 움직이는 무대를 만나고 싶다.

글 | 이주영
국립극장 기획위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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