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지난 2012년 3월 28일 개막하여 국내 뮤지컬 흥행 1, 2위를 달리고 있는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뮤지컬 코메디의 문법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에 대해 염증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고 하면 맞을까? 공연을 보는 도중 내내 브로드웨이에서 보았던 <리틀 샵 오브 호러스 Little Shop of Horrors>와 <프로듀서스 The Producers>가 떠올랐다.
뭔가 약점이 있지만 미워할 수 없을 만큼 잘생기고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남자주인공, 따돌림을 당할 만큼 어리숙하고 순진하며, 열녀비를 세워줘도 모자랄 만큼 주인공 남자에 올인하는 열녀형 백치미 금발 미녀 여주인공, 청산유수처럼 흐르는 대사, 핫팬츠 또는 미니 스커트를 입고 긴 다리와 큰 가슴으로 승부하는 미녀 코러스, 아무리 사기꾼 악당이라도 금발 미녀의 사랑을 얻고야 마는 해피엔딩, 하나도 귀에 남지 않는 그렇고 그런 노래들 등등 … 지나치게 정형화되어 있어 개인적으로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뮤지컬 코메디, 하지만 관객들은 열광한다.
뮤지컬 제작자라면 금세 “그래, 흥행은 역시 뮤지컬 코메디만한 게 없어!”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도록 만들 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최장기 공연 리스트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공연들을 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거의가 뮤지컬 드라마로 분류되는 작품들이다. 뮤지컬 드라마와 뮤지컬 코메디, 한번 들여다보자.
뮤지컬 (드라마) –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Jesus Christmas Superstar>, <렌트 Rent>, <지킬 앤 하이드 Jekyll & Hyde>, <시카고 Chicago>,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위키드 Wicked>, <라이언 킹 The Lion King>, <에비타 Evita>, <갓스펠 Godspell>, <맘마미아! Mamma Mia!>, <메리 포핀스 Mary Poppins>, <스파이더맨 Spiderman>, <애니 Annie>
뮤지컬 코메디 – <고스트 Ghost>, <진짜로 노력하지 않고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기 How to Succeed in Business Without Really Trying>, <시스터 액트 Sister Act>, <북
오브 몰몬 The Book of Mormon>, <에비뉴 큐 Avenue Q>, <마틸다 Mitilda>, <허니
문 인 라스베가스>, <빅 피쉬 Big Fish>, <골든 보이 Golden Boy>
이것은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흥행하고 있는 뮤지컬들을 뉴욕 씨어터 가이드(New York Theatre Guide)가 분류해놓은 것을 일부 옮겨 적은 것이다. 뉴욕 씨어터 가이드는 공연물을 크게 두 가지, 그러니까, 뮤지컬(musicals)과 연극(plays)으로 분류한 후, 뮤지컬은 다시 뮤지컬(Musicals/ 여기서의 뮤지컬은 물론 뮤지컬 드라마이다)과 뮤지컬 코메디(Musical comedy)로, 연극은 드라마(Drama), 코믹 드라마(Comic Drama), 코
메디(Comedy)로 세분하고 있다.
뮤지컬 코메디(Musical Comedy)는 음악과 노랫말과 춤이 연극적 줄거리와 결합된 형
식으로 과거에는 사람들이 뮤지컬이라고 하면 보통은 뮤지컬 코메디를 일컫는 것이었다. 이는 가벼운 플롯과 노래, 춤이 어우러진, 대사로 구성된 뮤지컬 연극으로 노래가 빠져도 작품에 치명적 손상을 주지 않는다. 뮤지컬 발전단계에서 보면 뮤지컬 코메디는 레뷰가 그 원형이 되지만 레뷰와는 달리 플롯이 더 엄격하게 다루어지고, 한층 동기가 강화된 노래와 춤이 등장한다.
이름에서도 보듯이 물론 코메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Annie Get Your gun>, <아가씨와 건달들 Guys and Dolls>, < 42번가>, <공포의 꽃가게 The Little Shop of Horrors>, <프로듀서스 The producers> 등이 전형적인 뮤지컬 코메디이다.
뮤지컬 드라마(Musical Drama)는 뮤지컬 플레이(Musical Play)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뮤지컬 발전단계 면에서 보면 뮤지컬 코메디 다음 단계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뮤지컬 코메디보다 한층 더 드라마가 강조되고, 음악이 강화된다. 또한, 캐릭터가 노래와 대사 양면에서 모두 보다 복잡하게 발전해가며, 서브플롯(subplot) 또한 보다 더 연계성을 가지고 등장한다.
코메디는 코믹 릴리스(Comic Release)라 불리며 잠깐 나오거나, 잠깐 쉬어갈 목적으로 등장하는 정도이다. 뮤지컬 드라마는 사실성을 지향하며 진지하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 특징으로 진지한 목적의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뮤지컬 코메디와 확연히 구분된다. 뮤지컬 드라마에서 노래는 언제나 무대상황을 앞서가는 복선을 제공하며,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노래를 한 곡이라도 놓치게 되면 작품
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지장을 입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 외에 <집시 Gypsy>, <지붕 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 <돈키호테 Man of La Mancha>, <에비타Evita>, <나인 Nine>, <Big River>,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숲 속으로 Into the Woods>, <미스 사이공 Miss Saigon>, <도시의 천사 City of Angels> 등이 대표적인 뮤지컬 드라마이다.
뉴욕 씨어터 가이드는 정규 뮤지컬 무대에서 흥행되고 있는 공연물만을 뮤지컬(드라
마)과 뮤지컬 코메디 두 가지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고, 클럽이랄지, 홀, 캬바레, 호텔 등등 타 공연장에서 공연되는 공연물들은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레뷰(Revue), 보드빌(Vaudevile), 벌레스크(Burlesque), 컨셉 뮤지컬(Concept
Musical) 등의 분류는 아예 나타나지 않고 있고, 오페라타(Little Opera), 브로드웨이 오
페라(Broadway Opera), 뉴 오페라타(New Operatta) 등의 용어도 보이지 않는다. 뉴욕 씨어터 가이드가 분류하고 있는 것처럼 뮤지컬은 뮤지컬(드라마)과 뮤지컬 코메디 두 가지로만 분류하면 되는 것인가? 뮤지컬은 위에 열거한 것처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지만, 이런 분류들이 별 쓸모가 없으니, 뉴욕 씨어터 가이드에서처럼 두 가지로만 분류해서 알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두 가지로만 분류하는 것을 못마땅해할 사람들을 위해 뮤지컬의 종류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뮤지컬은 제작의도, 즉,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요소가 무엇이냐에 따라 크게 레뷰(Revues)와 북 뮤지컬(Book Musical)로 분류된다. 즉, 작곡가, 작사가, 대본작가 또는 연기자의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 주가 되면 레뷰이고, 스토리텔링이 주가 되면 북 뮤지컬인 것이다. 북 뮤지컬은 북(book)에 플롯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어떤 한 시각에 의해 통일성을 이루고 있고, 등장인물들이 변화, 발전하는 완벽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레뷰는 북 뮤지컬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북이 없으며, 작곡가, 작사가, 대본작가, 특히 연기자의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 제작동기가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세계적인 탭댄서의 탭 댄스를 보여주기 위해 공연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레뷰가 되는 것이다. 비교해서 알아두면 좋을 것으로 스타 비이클(Star vehicle)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뮤지컬에 유명 스타를 기용하여 ‘스타에 의존하는’, ‘스타에 업혀가는’ 뮤지컬을 일컫는 용어이다.
스타 비이클은 스타 자체를 흥행무기로 내세워 공연제작 의도가 마치 스타의 재능을 보여주는 레뷰가 아닌가 의심을 하게 만들며, 관객들 또한 스토리텔링보다는 스타의 재능이나 스타 그 자체를 보기 위해 표를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북에 기초하여 만들어질 경우, 이는 레뷰로 분류되지 않는다. 레뷰는 공연을 만든 목적 자체가 스타작가, 스타작곡가, 스타 배우 등등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스토리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레뷰는 다시 레뷰, 보드빌, 벌레스크, 컨셉 뮤지컬의 네 가지로 세분화되는데, 만약 브로드웨이나 라스베가스에 가서 호텔 디너쇼랄지, 캬바레 쇼, 카지노 등에서 쇼를 보았다면 위 네 개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레뷰(Revue)는 보드빌, 벌레스크, 엑스트라버간자가 결합된 듯한 양식으로 이들 중 가장 품격이 높아 지식층이 즐기는 것으로 시사 풍자가 주요 목적이 되며 주로 대본작가의 재능을 보여주는데 몰두한다. 레뷰는 옴니버스 단편 소설처럼 내용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춤과 노래와 희극적 스케치로 엮어지며, 대부분이 코믹이다. 배우들의 탭댄스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듯한, 1996년에 개막하여 브로드웨이를 압도했던 <Bring in da Noise, Bring in da Funk>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레뷰이다.
보드빌(Vaudevile)은 버라이어티쇼의 일종으로 노래, 춤, 곡예, 마술 등 잡다한 여흥에 익살스러운 사회자가 쇼를 진행하는 것이 특징으로 시사적 풍자와 해학이 곁들어진다. 러시아에서 만들어지는 마술쇼나 서커스 쇼, 태양의 서커스 같은 것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벌레스크(Burlesque)는 보드빌의 일종으로 한층 저속하고 남성관객의 흥미를 겨냥한 외설과 스트립 쇼 등이 곁들어질 수 있다.
상세한 플롯이 없고, 레뷰처럼 시사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레뷰로 분류되는 컨셉 뮤지컬(Concept Musical)은 하지만 북 뮤지컬에 더 접근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는 비교적 새로운 장르의 뮤지컬로, 첫 번째 컨셉 뮤지컬로 분류되는 <컴퍼니 Company)>가 1970년에야 등장한다. 컨셉 뮤지컬은 대부분이 플롯이 거의 없이 아주 간단한 상황만을 가지고 있다. <컴퍼니>에서 보듯이 플롯이라고 해봐야 그저 한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바비라는 한 독신남자를 중심으로 빙빙 돌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보면 <캐츠>, <스텀프>, <라이프>, <A Chorus Line>, <1776>, <Starlight Express>, <Dreamgirls>, <Baby>,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등은 모두 컨셉 뮤지컬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그냥 뮤지컬로 분류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컨셉 뮤지컬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캐츠>는 언뜻 보면 그저 고양이들의 버라이어티쇼라는 생각이 들어 레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즉,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개성 강한 고양이들의 특성이 음악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구사하고 안무를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의 연출가였던 트레버 넌이 아니었더라면 <캐츠>는 그저 버라이어티쇼나 보드빌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T.S. 엘리엇의 우화집을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자는 로이드웨버의 제안을 받았을 때 트레버 넌은 이 우화집을 내용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줄 컨셉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고양이는 아홉 개의 삶을 산다’는 서양 속담에서 착안해 새로운 삶을 선택받는 젤리클 무도회라는 컨셉을 생각해낸다. 즉,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캐츠>는 컨셉 뮤지컬이 된 것이다. 트레버 넌이 아니었더라면, <캐츠>는 그저 다양한 고양이들이 부르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와 그 노래들에 붙여진 다양한 춤을 선보이는 버라이어티 쇼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의 경우도 전통 타악을 보여주고 싶었을 <난타>와 <도깨비 스톰>, 태권도 등 마샬 아트를 보여주고 싶었을 <점프>, 브레이크 댄스를 보여주고 싶었을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등의 비보이 계열의 공연들은 모두 레뷰 형식에서 시작하여 점차 컨셉 뮤지컬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북 뮤지컬은 오페라타(Little Opera), 음악이 있는 연극(Play-with-Music), 뮤지컬 코메디(Musical Comedy), 뮤지컬 드라마(Musical Drama), 브로드웨이 오페라(Broadway Opera), 뉴 오페라타(New Operatta) 등으로 세분해 볼 수 있다. 앞서 설명하지 않은 것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브로드웨이 오페라(Broadway Opera)는 뮤지컬 드라마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Theatre Opera”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오페라 같은 뮤지컬, 다시 말해 대사의 사용을 자제하고, 음악을 강조하는 뮤지컬이다. 일반 오페라와 차이가 있다면, 음악이 대중적인 소스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며, 뮤지컬의 다른 요소와도 발란스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선보이고 있는 대부분의 프랑스 뮤지컬이나 체코 뮤지컬이 이 장르에 속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브로드웨이 오페라”는 일반 오페라처럼 스펙테큘러하지만, 내용 면에서 통속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또한, 일반 오페라는 성악가에게 초점이 모아지지만, 브로드웨이 오페라는 노래 그 자체에 관심이 모아진다. <Porgy and Bess>, <Jesus Christ Superstar>, <Sweeney Todd>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 <렌트>처럼 락 음악을 사용하는 뮤지컬을 따로 Rock Opera라고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는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 분류를 따르지 않고 그냥 뮤지컬 드라마에 포함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New Operatta는 Old Operetta의 새로운 버전으로, Old Operetta가 캐릭터상으로 보다 미국화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오페라타는 열정적이고, 서정적이며, 팬터시를 강조하는데, 뉴 오페라타도 그러한 속성을 그대로 지니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올드 오페라타와 차별된다. <Carousel>, <The King & I> 등이 그 대표작이다.
어쨌거나 위의 분류들 중 Musical Comedy, Musical Drama, Broadway Opera 정도를 진정한 뮤지컬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뮤지컬도대부분 뮤지컬 드라마, 뮤지컬 코메디, 컨셉 뮤지컬, 브로드웨이 오페라 네 가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소분류들은 학술적 가치 외에 별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될 것이다. 뉴욕 씨어터 가이드가 뮤지컬을 그저 뮤지컬(뮤지컬 드라마)과 뮤지컬 코메디로 분류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뮤지컬을 보게 되거든, 뮤지컬의 구체적 장르를 따져 머리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그저 마음이 내키는 대로 즐기시기를! 기분이 우울하고 세상사는 게 재미없을 때는 맹한 뮤지컬 코메디 한 편을 보면 좋을 것이고, 인생에 대해 좀 더 밀도 있는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싶으면 묵직한 주제를 지닌 뮤지컬 드라마 한 편을 보면 좋을 것이다.
글 | 김향란 뮤지컬파크 대표
뮤지컬 기획 및 콘서트 프로듀서, 뮤지컬 계약 및 프러덕션 코디네이션 전문가, <오페라의 유령>, <스텀프>, <애니>, <피노키오>, <걸스 나잇>, <사운드 오브 뮤직>, <탭덕스>, <미녀와 야수>, <산타 킹덤> 등의 기획프로듀서 <킹 앤 아이>, <42번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애니>, <드 라구아다>, <캐츠> 등 라이선스 계약 및 코디네이터 / 삼성영상사업단, 제미로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