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al 김향란의 ‘브로드웨이 들여다보기’
[아츠앤컬쳐]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이 검증된 뮤지컬 작품들을 라이선스한 후 한국 배우를 캐스팅하여 한국어로 흥행하는 것은 어쩜 땅 집고 헤엄치기다. 일단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뮤지컬들은 완성도 면에서 철저하게 수정, 보완되고, 관객 검증을 거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투자사나 제작사들이 라이선스 뮤지컬에 매달리는 것은 어쩜 매우 당연하다. 물론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모든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했다고 하여 한국에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거나 정서상 맞지 않아 국내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동안 완제품을 수입하거나 아니면 라이선스하여 어떻게 하면 원작과 유사하게 복제해내느냐에만 골몰했던 한국의 프로듀서들에게 뮤지컬 창작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난 호에서도 썼듯이 이제 오리지널 뮤지컬을 우리 손으로 창작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고, 이런 대세를 외면할 경우 조만간 콘텐츠의 부족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오리지널 뮤지컬을 우리 손으로 창작하지 못할 경우 우리와는 정서적, 문화적으로 동떨어진 소재를 다루고 있는 브로드웨이 작품들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속적으로 들여오거나 기존 작품을 반복흥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싫든 좋든 선진 창작 시스템을 배울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브로드웨이에서 흥행되고 있는 작품들이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쳐 완성되는 지가 관심 밖의 일이었다면 이젠 싫어도 귀를 기울여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사실 한국처럼 끊임없이 뮤지컬이 창작되고 있는 나라도 많지는 않다. 특히 대학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중소형 뮤지컬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특히 젊은 창작자들은 여러 단체가 지원하는 창작지원금에 고무되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뮤지컬 창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창작되는 뮤지컬들은 뮤지컬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이나 영국의 뮤지컬 프로듀서들이 따르고 있는 제작시스템이나 과정을 따를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버거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인프라의 부족, 제작시스템에 대한 인식의 부족, 투자자들의 이해 및 인내심 부족, 이 정도는 관객이 용서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 등등 그 핑계 같은 이유는 너무나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호에서는 뮤지컬 선진국들의 뮤지컬 창작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뮤지컬 창작에 보탬을 주었으면 한다.
뮤지컬 선진국들의 뮤지컬 제작 사이클은 아래 8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우리와 눈에 띄게 다른 부분은 바로 시험공연(Tryouts)과 프리뷰(Previews)이다.
1) 창작 아이디어 입수
뮤지컬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제일 먼저 봉착하는 문제가 뮤지컬의 소재이다.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뮤지컬 소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연구와 토론, 조사과정을 거쳐 창작 아이디어가 결정되는데, 뮤지컬의 소재는 흥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이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곤두서지 않는다.
창작 아이디어가 결정되면 제작자는 이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대본작가를 고용하여 대본을 만들도록 한다. 하지만, 기성 작가가 개발해놓은 대본을 보고 이를 뮤지컬로 만들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전 글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완전 오리지널 스토리를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어 성공하는 예는 많지 않으며, 대부분의 뮤지컬들이 기존의 창작물에 기초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작권의 확보이다. 만약 어떤 소설을 뮤지컬로 만들 경우 원작자 사후 70년까지만 저작권이 보호되지만, 후계자가 있을 경우는 저작권이 계속 승계되기 때문에 꼭 확인을 해야 한다.
공유재산 Public Domain에 들어와 있는 소재가 아닌 경우는 저작권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반드시 사전에 적법하게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순수창작의 경우도 남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아이디어를 훔쳐서는 안 된다.
2)대본과 음악개발
뮤지컬의 소재가 결정되어 적법하게 권리를 확보하고 나면 제작자는 대본작가를 선정하여 대본 개발에 들어간다. 보통은 작곡가를동시에 선정하여 대본과 작곡, 작사가 동시다발로 이루어지게 된다. 대본작가나 작곡가들은 보통 러닝 로열티 Running royalty 방식으로 계약을 하며, 총 예상 로열티의 몇 퍼센트를 로열티 선급금으로 받고 작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만약 개발된 대본이나 곡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제작자들은 중간에 대본작가나 작곡가를 바꾸기도 하는데, 이 경우 원칙적으로는 선급 받은 로열티를 반환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개발된 대본과 음악은 워크숍에서 리딩(Reading)과 쇼케이스(Showcase) 등을 통해 끊임없이 수정, 보완된다. 이런 과정은 최소 1년에서 최장 3년까지 걸리기도 하며, 아예 결실을 못 본 채 사장되어 버리기도 한다. 제작자들은 이 과정에서 투자 후보자들을 제한적으로 초청하여 대본과 뮤지컬 넘버들을 소개하면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여기서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제작자들이 어느 단계에서 연출을 투입시키느냐이다. 브로드웨이의 경우 보통 대본과 음악 개발단계에서 연출이 참여하기 시작하지만, 창작 아이디어 입수단계에서 연출의 참여가 시작되기도 한다. 연출은 작품의 큰 방향을 잡고 창작과 관련된 모든 예술적 결정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이지만, 직접 대본을 쓰거나 작곡이나 작사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손에 만져지는 저작물은 발생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창작과정에서의 연출의 역할을 고려하여 비록 저작물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작품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의 로열티를 받도록 되어 있다. 브로드웨이의 메이저 연출들은 전체 티켓매출의 최고 5%까지를 러닝 로열티로 받고 있다. 최근에는 연출적 안목과 역량을 지닌 프로듀서 또는 프로듀서적 역량을 지닌 연출들이 등장하여 이 역할을 겸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어쨌거나 어느 단계에서 연출을 개입시키느냐는 순전히 프로듀서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3)재원조성 Fund-raising
대본과 음악 개발이 완성단계에 이르고 자신감이 생기면 제작자들은 본격적으로 제작비 모집에 나선다. 투자자들에게 보내지는 투자패키지에는 대본과 완성된 주요 곡들 또는 모든 곡들의 녹음, 제작진 프로필, 캐스팅 희망 주인공 프로필, 예상제작비, 예상매출표, 손익분석표 및 이익분배 조건 등등 투자자들 이 투자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모든 자료들이 포함된다. 보통은 개별 접촉이 이루어지지만 워크숍 등에 초청하여 공개적으로 투자자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도 한다. 해외에서 투자자를 유치할 경우는 리허설, 오디션 등에 초청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를 하기도 한다.
4)오디션 Audition
브로드웨이에서는 끊임없이 오디션이 벌어지고 있다. 총 62개에 달하는 극장과 라이브 공연장에서 연일 계속되는 공연에서는 예기치 못한 각종 사건•사고들도 생기기 때문에 충원을 위한 오디션 또한 수시로 벌어진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메이저 프로듀서들의 사무실에 가보면 기본적으로 피아노가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디션을 하고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보통 뮤지컬의 캐스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공개오디션과 비공개 스타 캐스팅이다. 비공개 스타캐스팅은 소위 캐스팅 디렉터나 캐스팅 에이전트들을 통해 주연급 배우들을 물밑에서 캐스팅하는 것이다. 공개 오디션은 말 그대로 공개적으로 오디션을 하여 필요한 배우를 뽑는 것이다. 주인공급 캐스팅은 대부분 비공개 오디션을 통해 물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인공을 꿈꾸며 공개오디션에 나서는 신인이 있다면 매우 순진하다고 봐야 한다.
<뮤지컬 42번가>에서도 보듯이 앙상블이나 언더스터디로 캐스팅되었다가 주인공의 다리가 부러지기나 해야 신데렐라의 탄생이 가능한 것이다. 말 그대로 ‘지옥불이 얼어붙기’를 기다리는 게 빠를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5)리허설 Rehearsal
대부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경우 전통적으로 리허설은 짧게는 4주, 길게는 6주간 진행된다. ‘세상에, 4주 리허설하여 뮤지컬을 올린다고!’’라며 놀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6주 정도 리허설을 하는데 사실 6주도 굉장히 짧은 시간이라 놀라워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브로드웨이의 유니언 소속배우라면 모두가 선수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보통 8주 정도의 리허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리허설의 초기 단계에서는 보통 공연의 장면 장면을 블록별로 나누어 순서대로 연습에 들어가며, 음악 연습은 따로 하게 된다. 또한, 앙상블과 주연급을 분리하여 따로 연습을 시킨다. 리허설 시작 3주부터는 대본 없이 모든 대사와 노래를 암기해서 리허설에 임해야 한다. 게으름을 피울 시간이 없다. 리허설의 연장은 곧바로제작비의 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행되어야만 한다.
그 이후는 1막 런 쓰루(Run Through) → 2막 런 쓰루 → 전막 런 쓰루 → 드레스 리허설/
테크니컬 리허설 → 최종 리허설 → 전체 휴식 → 개막 순으로 이어진다. 장면 장면을 따로 연습한 후에 이것을 이어 붙여 한꺼번에 쭉 연습하는 것을 런 쓰루(Run Through)라고 하며, 리허설 마지막 주에는 두세 번 정도의 드레스 리허설을 하는데, 드레스 리허설은 공연할 의상을 갖춰 입고 하는 리허설을 말한다. 첫 드레스 리허설은 분장이나 헤어 없이 의상에 초점을 맞추어 의상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하는 것이며, 이때 보통은 테크니컬 리허설이 함께 진행된다. 하지만 최종 드레스 리허설에서는 의상과분장 등을 완벽하게 갖추고 연습에 들어간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보통 공연개막 이틀 전에 최종 드레스 리허설을 하고 개막 하루 전날은 모두가 쉬도록 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리허설에서 연출은 신과 같은 존재이다. 어떤 경우라도 배우가
연출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지각을 하거나, 연습을 게을리 해오거나, 소란을 피우거나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브로드웨이에는 건방떨거나 까부는 배우를 대체할 배우가 널려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곳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스타를 캐스팅할 경우도 스타라고 건방을 떨 가능성이 있어 보이거나 연습 스케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캐스팅을 하지 않는다. 무대감독이나 조연출은 배우들을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가, 소위 애드립을 하거나 연출의 지시가 없는 이상 행동을 보이면 바로 시정 요구를 하며, 이에 반항하거나 연출의 권위에 도전하면, 조용히 퇴출시킨다.
6) 시험공연 Tryouts
공연이 완성되면 시험공연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트라이아웃이다. 트라이아웃은 기자들과 비평가들을 따돌릴 수 있도록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 등 가능한 한 브로드웨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워싱턴 D.C나 필라델피아 등 브로드웨이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하는 예도 찾아볼 수 있긴 하다. 트라이아웃은 지방 극장을 빌려 브로드웨이 프리뷰 공연 전까지 보통 3개월 정도 공연을 하면서 수정/보완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일반 공연과 마찬가지로 매표를 한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시험공연이 되는 것이지만 그 지역민들에게는 일반 공연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진다. 물론 티켓 가격은 저렴하다.
7) 프리뷰 Previews
트라이아웃 이후 공연물은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거나 아니면 재작업되거나 아니면 폐기되는 세가지 운명 중 하나에 처하게 된다. 브로드웨이 입성이 결정되면 개막하기로 되어 있는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보통 개막일 기준으로 4주 이상의 Preview 공연을 하게 된다. 프리뷰 공연은 주로 관계자나 관계자의 친구나 친척 등 공연에 우호적인 사람들, 그리고 학생 등에게 보여주면서 작품 수정을 계속해나가는 과정이다. 프리뷰 공연의 경우는 주로 가격을 본 공연보다 싸게 책정하며, 항상 프리뷰 공연임을 강조하고 프리뷰 공연에서 있을 수 있는 실수나 문제점들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기자나 비평가들은 프리뷰 공연에 초대되지 않으며, 설사 프리뷰 공연을 보았다고 해도 정식 오프닝 또는 프레스를 위한 공연 전에는 절대로 평을 해서는 안 된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지만 가끔씩 이를 지키지 않는 몰상식한이들도 있어 말썽이 일어나기도 한다.
8)개막 Opening
프리뷰까지 무사히 넘긴 공연은 예정된 개막일에 성대하게 막을 올리게 되지만 프리
뷰 기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공식 개막일이 연장되기도 한다. 공연의 성패는 개막 후 일주일 안에 결정된다. 개막 이후 티켓판매가 올라가면 성공하는 것이고 내려가면 문닫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뮤지컬 관객들이 오프닝 나잇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관객 평을 보고 매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소위 Words of Mouth는 순식간에 맨해튼, 뉴욕,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개막 후 좋은 반응을 얻은 공연은 장기 공연에 돌입하면서 곧바로 ‘브로드웨이 투어 프러덕션’, ‘내셔널 투어 프러덕션’, 이후 각국별 라이선스 프러덕션 등의 순으로 흥행 사이클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평이 좋지 않은 작품은 보통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자빠져버린다. Flop! 말 그대로 자빠져 버리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제작단계에서 어느 정도의 워크숍, 리딩, 쇼케이스 등은 하지만 본격적인 트라이아웃을 하지 않으며, 프리뷰도 2회나 3회 정도에 그친다. 특히 대본과 작곡 단계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칠 수 있는 장치도 없고,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실력과 안목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인력들도 별로 없다. 따라서 충분한 검증, 그리고 수정, 보완을 할 시간이 없이 바로 서울 지역 대형극장에서 관객과 맞닥뜨리게 된다. 당연히 개막과 동시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게 되거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바로 흥행리스크로 연결된다.
그래서 한국의 영리한 뮤지컬 매니아들은 개막 직후에는 절대 공연을 보지 않고 기다렸다가 작품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본다고 한다. 그러니 개막 이후 1 내지 2주가 이들에겐 암묵적인 프리뷰가 되는 셈이다. 멋모르는 사람이나 제작자에게 우호적인 세력, 그리고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만이 이 기간에 공연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도 알게 모르게 일주일 이상의 프리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글·김향란
뮤지컬파크 대표, 뮤지컬 기획 및 콘서트 프로듀서, 뮤지컬 계약 및 프러덕션 코디네이션 전문가 오페라의 유령>, <스텀프>, <애니>, <피노키오>, <걸스 나잇>, <사운드 오브 뮤직>, <탭덕스>, <미녀와 야수>, <산타 킹덤> 등의 기획프로듀서 <킹 앤 아이>, <42번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애니>, <드 라구아다>, <캐츠> 등 라이선스 계약 및 코디네이터 / 삼성영상사업단, 제미로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