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2012년 1월 11일 저녁에 찾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저녁 8시에 시작되는 연극‘대학살의 신(神)’을 보러 왔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자유소극장 로비가 썰렁하다. 하우스 어텐던트에게 맡겨진 티켓을 찾아 입장을 기다리다가 공연시작 15분전에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따뜻한 온기가 밀려온다.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1층 B구역 6열5번 좌석을 찾아가 앉았는데 주변의 자리가 많이 비어있다. 공연시작 멘트가 방송되면서 빈자리는 채워졌다. 젊은 관객들도 보이지만 대부분이 5~60대 관객들이다. 공연시작과 함께 좌석은 거의 만석이 되었다.

연극 ‘대학살의 신(神)’은 2009년 토니상 최우수 연극상, 연출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010년 국내 초연되어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출상, 여우주연상과 동아연극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원작자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 1959~)는 프랑스 극작가로 이란과 러시아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대계 엔지니어와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술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파리 근교 낭테르에서 연극과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자크 르코크 국제연극학교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야스미나 레자는 지식인을 자처하는 중산층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 현대인의 일상에 존재하는 부부간의 갈등과 소통의 부족함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연극의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다. 아이들의 싸움으로 사태해결을 위해 부모들끼리 만나서 대화를 하는 중에 벌어지는 상황이 실제 우리 삶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서 관심을 끈다. 출연 배우들의 심리묘사와 연기가 수준급이다. 대사전달력까지 좋아서 편안히 관람할 수 있었다. 박지일(알랭/변호사)과 서주희(아네트/가정주부), 이대연(미셸/생활용품 도매상)과 이연규(베로니끄/아프리카에 관심이 많은 작가)의 흡인력 있는 연기력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4명의 연기자중 특히 서주희의 리얼한 연기는 일품이었다. 무대 위에서의 그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실제상황처럼 느껴졌다.

피해자 측 어머니 베로니끄는 아이들의 싸움에 ‘중무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가해자 측 부모를 자극하고 가해자 측 아버지 알렝은 변호사답게 맞대응을 하면서 사태는 점점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는데.... 자식들 싸움에 양측 부모가 만나서 감정을 억제해 가며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이성적인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말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대화는 급기야 감정싸움으로 변질되고, 양쪽 부모의 신경전은 엉뚱하게도 같은 편 부부끼리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부부사이에 내재된 갈등이 표출되고 만다. 자식문제에 있어서는 한 목소리를 내던 부부가 평소에 갖고 있던 좋지 않은 감정이 폭발하는 블랙코메디이다.

평생을 부부로 살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가 부족해서 갈등이 쌓여가는 우리의 모습을 연극<대학살의 신>은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쉴 틈 없이 수다를 떨어가며 온 몸을 던지는 네 사람의 연기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고 연극은 박진감이 넘쳤다. 네 사람의 수다에 빠져들어 즐기다보니 어느새 90분간의 연극은 끝이 났다. 물론 두 부부의 논쟁이 결론을 내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가식적인 말과 행위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의 갈등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면 한태숙 연출가가 연극을 통해 들려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잘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글·전동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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