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행복한 그림읽기’
[아츠앤컬쳐] 서양에서 평범한 일상이 회화의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 그림에서 보듯 일상의 여러 풍경을 표현하는 일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이런 일상의 모습을 주변적인 소재가 아니라 조형의 핵심적인 주제로 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중세에는 그림의 주제가 대부분 종교 주제였고, 역사화의 형성 과정에서 보듯 르네상스 이후에도 성경이나 신화, 혹은 역사를 다룬 그림이 우월적인 위치에서 오랫동안 그려졌다. 일상적인 소재들은 독립된 장르를 형성하기보다 이런 그림을 위한 장식적인, 혹은 배경적인 모티프로 차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이미지를 하나 만드는 것이 철저히 손 작업에만 의지하는 고된 노동이었고, 그 작품의 구매자가 대부분 교회나 왕후장상, 귀족이다 보니, 자연히 거창하고 이상적인 소재를 우선적으로 취급해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화가들은 대부분 서민 계층 출신이었다. 화가가 자신이 살아온 배경과 서민의 시선에서 사회적 관심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일종의 잠재된 본능이었다. 17세기 이후 회화의 장르 구분이 본격화하고 일상 혹은 풍속 주제를 독립적인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활성화되면서 18세기 들어 서양에서는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을 장르화(genre painting)라고 부르게 된다. 우리로 치자면 풍속화쯤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장르화는 풍속뿐 아니라 일상생활과 관련한 보다 광범위한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풍속화는 해학과 풍자, 익살로 충만하다. 서양 장르화에서도 이런 해학과 풍자, 익살의 표정을 만나볼 수 있다. 아직 장르화라는 구분이 명확히 나타나기 전에 활동한 화가이지만, 일찍부터 서민의 풍속을 잘 표현한 대가 가운데 한 사람이 16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 브뢰겔(1525-69)이다.
브뢰겔이 그린 <게으름뱅이의 천국>(1525경)을 통해 서양 장르화가 지닌 해학을 음미해 보자. 그림은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있는 언덕을 무대로 삼고 있다. 나무 밑에 세 명의 남자가 누워 있고 왼쪽으로는 간소한 지붕 아래 다른 한 남자가 엎드려 있다. 언뜻 봐서는 평범한 시골 풍경 같은데, 자세히 보면 구석구석 의아스러운 장면이 적지 않다. 나무에 웬 둥그런 식탁이 모자의 챙처럼 끼워 있는 것도 그렇고, 지붕에 빵이 널려 있는 모습, 돼지가 허리에 칼을 꽂고 다니는 모습, 그리고 다리만 삐죽 나온 달걀이 껍데기 윗부분을 깨뜨린 채 스푼을 얹고 다니는 모습도 신기하다. 이 그림은 과연 무엇을 그린 것일까?
브뢰겔이 그림의 소재로 삼은 것은 중세 유럽의 민간에서 전승으로 내려온 상상의 나라 코케인(코케뉴, Cockaigne)이다. 이 나라는 진짜 아무 일 안 하고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곳으로, 강은 와인이요, 집들은 케이크와 보리 사탕으로 만들어져 있고, 거리는 빵으로 뒤덮여 있다. 가게는 아무에게나 공짜로 물건을 나누어주고, 구운 거위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먹도록 유혹한다. 또 하늘에서는때때로 버터를 바른 종달새가 만나처럼 떨어져 먹을 것을 피하기가 비 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 환상의 땅 코케인의 어원과 관련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그 뜻이 케이크의 땅(Land of Cakes)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힘겨운 노동과 굶주림으로 고생한 중세 유럽인들의 꿈과 소망이 절절히 담겨 있는 민간 설화가 아닐 수 없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스텐(1625/6-79) 또한 상당히 해학적인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그는 여관을 운영해 먹고살았는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여관에서 다채로운 인간군상을 보며 작업의 힌트를 많이 얻었던 것 같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여관 일이지만, 바로 그 일로 작품의 주제를 자연스레 얻게 됐으니 일석이조였다고나 할까.
얀 스텐이 1663년에 그린 <사치를 조심하라>는 일이 잘 풀릴수록, 상황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이를 경계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권면을 담은 그림이다. 매우 번잡해 보이는 실내에서 한 여인이 앉아 졸고 있다. 그림 왼쪽 값비싼 모피 반코트를 입은 여인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졸고 있는 사이, 집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그래도 여인은 여전히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테이블 위의 음식은 개가 먹어치우고, 테이블 앞의 아기는 비싼 목걸이를 가지고 놀고 있다. 뒤쪽의 아이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어른 흉내를 낸다. 그 아이의 아버지인 듯한 남자는 화면 중앙에서 하녀와 시시덕거리며 수작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 다른 등장인물들과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 음식물, 그리고 그것을 먹는 돼지까지 모두 뒤죽박죽이 된 이 집안의 형편을 생생히 드러낸다.
이 그림의 주제와 관련해 화가는 당시 네덜란드의 속담을 원용하고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놓인 석판에 그 속담을 써 놓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풍족할 때 조심하라. 그리고 회초리를 두려워하라.”
해학과 풍자는 사실 일정한 도덕적 입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만큼 장르화는 도덕 주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발달해왔다. 특히 근대 들어 부르주아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장르화는 시민들의 근면한 생활이나 노동윤리 등 합리적인 생활태도를 강조하고 허례허식과 부도덕한 삶을 비판함으로써 시민적 윤리의 확산을 도왔다. 이런 경우에도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표현 방식이 여전히 유효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같은 측면에서 벗어나 매우 냉정한 현실 고발, 혹은 시사 고발적인 접근으로 사회에 만연한 악을 직설적으로 질타하기도 했다.
영국화가 윌리엄 호가스는 특별히 도덕 주제를 많이 그려 인기를 얻은 화가이다. 그의 <탕아의 일대기>(1733-34)는 모두 여덟 점의 연작으로, 구두쇠의 아들이 어떻게 낭비와 허영, 쾌락에 빠져 파멸의 길로 들어섰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탕아는 방탕한 생활 끝에 마침내 정신병원에 수용되기에 이르는데, 그 마지막 장면을 그린 ‘베들렘(정신병원의 이름)’ 편은 현실의 잔인함을 매우 냉정한 붓으로 형상화했다.
그림은 화면 오른쪽 하단에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탕아를 중심으로 갖가지 인간군상을 배경처럼 둘러놓았다. 그림 왼쪽의 세 사람은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각각 바이올린을 켜고 노래를 부르거나 멍하니 앉아 있다. 제정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반면 그림 맨오른쪽 독방에서 몸을 흔들며 참회의 기도를 하고 있는 광신자나 그 옆방에서 왕관을 쓰고 벌거벗은 채 조각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미치광이는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인다. 두 방 사이의 공간에 그려진 여러 정신병자들도 제각각 자신의 미망에 깊이 빠져 있다.
우리의 주인공은 그러나 이들보다 지금 더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다. 쓰러진 그는 탈진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신이 나간 데다 기력마저 쇠한 그는 방탕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렇게 사위어 가는 그로부터 쇠사슬을 끌러줌으로써 간수는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준다. 탕아의 옆에는 그의 운명을 슬퍼해 주는 단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한때 곤경에 빠뜨렸던 하녀다. 이 하녀 외에는 지금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는다.
화면 뒤쪽의, 잘 차려 입은 두 여인은 한때 탕아가 알았던 이들이지만, 재미 삼아 정신병원을 찾은 듯 벌거벗은 미치광이를 부채 사이로 몰래 보는 것 외에는 탕아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 낙오자는 그렇게 철저히 무시되고 내동댕이쳐질 뿐이다. 그것은 모두 낙오자 자신의 잘못이요, 인과응보인 것이다. 이렇게 냉엄한 현실을 그려 보임으로써 호가스는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보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이끌어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평범한 풍속화로서 장르화의 모습은 19세기 도미에나 쿠르베, 밀레의 그림에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단순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까지 적극적으로 담아내게 되는 것이다.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며 스스로를 역사의 주인으로 자임하는 민중의 모습이 이렇게 해서 장르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쿠르베의 <석공들>이나 <오르낭의 매장>, 그리고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들>에서 보듯 농민들은 더 이상 전원의 평화 속에 묻혀 있는 촌부들이 아니라 삶과 투쟁하며 현실의 변화를 꿈꾸는 리얼리스트들이고, 도미에의 <삼등열차>, <세탁부>에서 보듯 도시의 서민들 역시 소외와 불평등에 대한 잠재적인 저항자로서 현실과 투쟁하는 사람들이다. 세태의 변화는 이렇듯 풍속화의 변화로 그대로 나타났다. 해학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에 대한 보다 냉철한 인식과 구체적인 변혁 의지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양현재단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