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올해 폴란드 영화제는 KRZYSZTOF KIEŚLOWSKI RETROSPECTIVE: 탄생 80주년 기념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8.25(수)~9.22(수)까지 '탄생 80주년 기념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회고전'을 진행한다. 이번 회고전은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초기작부터 대표작인 <데칼로그> 연작과 세 가지 색 연작, 그리고 키에슬로프스키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 다큐멘터리까지 모두 42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크지쉬토프 키에실로프스키 Krzysztof Kieślowski 1941.06.27 – 1996.03.13
폴란드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크지쉬토프 키에실로프스키는 《십계 Dekalog》,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Podwójne życie Weroniki》, 《세 가지 색: 블루, 레드, 화이트 Trzy kolory: Niebieski, Czerwony i Biały》와 같은 대표작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폴란드 영화감독이다.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주제로 근본 보편적이지만 어려운 질문을 간단한 이야기로 풀어내며, 비교대상을 찾아보기 힘든 실력파 영화 제작자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대답을 도출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한다. 나는 문자 그대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본 적이 없다. 단지 세상이 그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학생영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키에슬로프스키에 대해 영화 평론가 마레크 헨드리코프스키 Marek Hendrykowski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다큐멘터리는 키에슬로프스키의 첫 번째 위대한 사랑이었다. 장편영화 감독으로서 세계적으로 이룬 것에 비해 그의 다큐멘터리 작품은 성공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감독의 예술적 정체성이 담긴 작품이며, 장편영화 감독으로 성공을 이루기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했는지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영화학교 시절에 다큐멘터리 영화 《관공서 Urząd》, 《도시 우츠에서 Z Miasta Łodzi》와 단편영화 《트램 Tramwaj》를 제작했다. 미코와이 야즈돈 Mikołaj Jazdon은 키에슬로프스키의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한 연구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첫 번째 학생영화 《트램》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키에슬로프스키는 애초부터 장편영화를 만들 운명이다’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어리석은 소년 소녀의 만남을 주제로 한 무성영화는, 감독이 관심을 가지는 현실, 삶, 우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 Documentaries
1966-1980년 폴란드에서 집단 영웅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공장 Fabryka》, 《병원 Szpital》, 《노동자 1971 Robotnicy 1971》,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벽돌공 Murarz》, 《이력서 Życiorys》, 《야간 수위의 시선에서 Z punktu widzenia nocnego portiere》, 《첫사랑 Pierwsza miłość》, 《다양한 연령대의 일곱 여성 Siedem kobiet w różnym wieku》을 발표했다. 타데우시 소볼레프스키 Tadeusz Sobolewski는 저서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에서 연구와 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키에슬로프스키의 다큐멘터리와 장편영화는 시스템에 대항하지 않는다. 장편영화 《흉터 Blizna》의 공장장, 다큐멘터리 《나는 모른다 Nie wiem》의 전 공장장, 《벽돌공》과 《병원》의 주인공들은 단지 스스로에 주어진 일을 훌륭히 해내고 싶어할 뿐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이들이 가진 열정을 응원하지 않는다.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주인공들은 사소한 다툼에 계속 엮여있거나(《병원), 《비포 더 랠리 Przed rajdem⟫) 열정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함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무너지기도 한다(《이력서⟫, 《나는 모른다⟫). 이들은 틈을 파고들어 평화로운 삶에 정착하려는 희망(《고요 Spokój⟫, 《첫사랑⟫)이 실현하기 어려운 것임을 깨닫고, 어떤 한쪽 편에 서기를 강요 당하며(《직원 Personel⟫, 《나는 모른다⟫, 《아마추어 Amator》) 정치적 선택과 인생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TV 다큐멘터리 《사진 Zdjęcie》으로 프로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한 키에슬로프스키는 1983년까지 바르샤바 다큐멘터리 필름 스튜디오 Wytwórnia Filmów Dokumentalnych와 협력하며 거의 독점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아마추어 배우들은 실제 장소에서 실제 자신을 연기하였고, 이러한 특징은 키에슬로프스키의 장편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73년에는 첫 번째 TV 서사영화 《지하도 Przejście podziemne》를, 1980년에는 마지막 다큐멘터리 《일주일 중 7일 Siedem dni w tygodniu》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성상 제작과정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제작된 영상을 당국이 사용하는지, 그리고 그 영상이 의도와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당시 폴란드 인민공화국에서는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작품 제작이 제한됨에 따라 키에슬로프스키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그만두게 된다.
장편영화 Feature Films
1985년은 키에슬로프스키와 함께 영화 각본을 써온 바르샤바의 변호사 크지쉬토프 피에시에비츠 Krzysztof Piesiewicz와의 오랜 협력이 시작된 해이다. 《끝없는 Bez końca》로 시작으로 이 둘은 《십계》 시리즈의 두 단편영화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Krótki film o zabijaniu》,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Krótki film o miłości (1988)》또한 함께 작업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1991)》를 기점으로 폴란드 & 프랑스 영화 공동제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1993년 이후 제작된 모든 영화는 유명한 프랑스 제작자 마랭 카르미츠 Marin Karmitz와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십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세 가지 색 시리즈》는 현실의 함정이 벗겨졌다는 점, 헐거벗은 최소한으로의 단순화라는 점, 증가된 이미지의 응축화라는 점에서 키에슬로프스키의 이전 다큐멘터리 영화와 장편작품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새로운 주제에 의지하기 보다는 영화 언어를 수정하며 의식적으로 다른 해답을 찾으려 하였다. 영화 평론가 마리아 코르나토프스카 Maria Kornatowska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겼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미학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지배적인 색조를 신중하게 선택해 색다른 방식으로 주인공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촬영을 통해 아름다움이 고조되고 강조된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는 광고한 유사한 특성을 가지며, 그 속에 드러난 새로운 스타일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현실이라는 절대적인 힘에 대항하지 않으면서 논리적으로 명확하고 잘 구성된 '단순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만을 독점적으로 다루며, 마치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외부의 한계에서 벗어나 신념을 따라가는 능력을 얻었다.
수상
그랑프리 《직원》,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 금메달 《카메라광》,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세 가지 색: 블루》,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세 가지 색: 화이트》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받았다. 1990년에는 '영상을 통해 문화에 큰 공헌'을 한 것을 인정받아 영국 영화 연구소의 명예 회원이 되었고, 1993년 프랑스 문화부에서 수상하는 문학・예술 훈장을 받았다. 1994년 유럽 문화와 영화 예술 발전의 공헌을 인정받아 덴마크 소닝상 C.J. Sonning을 받았고, 《세 가지 색: 레드》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1995년에는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멤버가 되었고, 1996년 지로나에서 열린 유럽 미디어 어워드와 유럽 필름 아카데미 펠릭스상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폴란드 카토비체 소재 실롱스크 대학교 라디오・텔레비전 학부는 2000년 키에슬로프스키의 이름을 따 제정되었다.
폴란드문화원 제공
전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