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탐미의 절정

[아츠앤컬쳐] 자유로운 영혼, 허무주의자, 스캔들 메이커, 욕망의 화신, 프렌치 팝의 대부 등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수식어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음악, 문학, 영화, 미술 등 여러 영역에서 예술성을 불태우며 기행을 일삼았고 프랑스인들은 그런 그대로를 인정했고 사랑했다.

의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항상 독한 지딴(Gitane)을 입에 물고 술과 여자, 향락을 누리던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완전한 데카당이었다. 음악적으로 볼 때 그의 삶을 대변한 명곡들은 한결같이 자유롭고 느슨하며 퇴폐적이었지만, 반면 새롭고 파격적인 시도들로 가득했다. 그의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가사들은 새로운 사운드와 리듬 안에서 탐미적, 감각적으로 음악 안에 결집되었으며, 사람들은 기꺼이 그의 음악을 즐기며 쾌락을 향유했다.

1969년 갱스브루의 ‘Je t'aime... Moi non plus(I love you... Me not anymore)’가 발표된 직후 전 세계 음악 시장은 들썩였다. 프랑스어를 이해하든 못하든 모두가 제인 버킨(Jane Birkin)의 숨넘어가는 목소리와 신음소리에 놀랐고, 이를 비난하거나 옹호했다. 성적 가사로 일관된 버킨과 갱스부르의 듀오는 노골적이기에 강렬했고 뻔뻔하기에 자유로웠다.

이들의 노래는 지나친 선정성으로 일정기간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유럽 시장을 장악하며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물론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위시한 보수 국가들은 금지곡 처분을 내렸지만 갱스부르는 오히려 바티칸의 제재가 최대 광고효과를 내주리라 장담했다. 얼마 후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전 세계를 들썩이던 이 노래는 아시아에도 유입되어 ‘애욕’이란 이름으로 국내 라디오 청취자를 사로잡았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흠모하던 갱스부르의 예술성에는 자연히 같은 맥락의 사상이 흐르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고엽’의 작사가인 프레베르(Jacques Prévert)는 그에게 영감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갱스부르는 ‘고엽’에 부친 노래 ‘La chanson de Prevert(프레베르의 노래)’를 작곡해 자신의 세 번째 앨범<'Étonnant Serge Gainsbourg>에 수록하였고, 얼마 후 한 없이 수줍은 모습으로 프레베르와 대면했다고 한다. 또한 논란의 중심에서 그는 ‘애욕’이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피카소 논평’에서 영감을 받았다 주장하기도 했으며 ‘육체적 사랑의 불능과 절망’에 관한 예술적 표현이라 강조했다.

‘애욕’은 발표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꾸준히 커버되어 인기를 누렸다. 1967년 갱스부르는 이미 군터 샤츠(Gunter Sachs)와 결혼한 바르도에게 ‘애욕’을 헌정하고 파리 스투디오에서 두 시간 만에 녹음을 끝낸다. 그러나 얼마 후 낯 뜨거운 앨범의 제작 소식을 보도로 접한 남편은 노발대발하고, 바르도는 곧 제작 철회를 요구한다.

이후 ‘애욕’은 갱스부르의 새로운 뮤즈인 제인 버킨에게 주어지는데, 스무 살 남짓의 아름답고 당돌한 그녀는 바르도에 비할만한 관능성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1986년 바르도 역시 제작 중단된 싱글을 재발매하여 인기를 누리게 되며 더불어 유명 남녀 가수들의 새로운 버전들이 속속 등장한다.

사실 바르도와 버킨의 버전은 바로크 오르간과 기타가 주를 이룬 C조의 감미로운 샹송 무드의 반주패턴이 유사하다. 물론 편곡은 각각 미셸 콜럼비에(Michel Colombier)와 아더 그린슬레이드(Arthur Greenslade)가 맡았으나 모두 갱스부르의 취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여성의 음성 톤에서 비롯된 감성적 반응이다. 바르도의 음성은 세기의 섹스 심벌답게 농염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반면 버킨은 노래 부분에서 바르도보다 한 옥타브 위로 끊어질 듯 부르는데, 이는 어리고 민감한 소녀와의 금기시된 사랑을 연상시킨다.

두 여성의 고혹미를 끌어 낸 갱스부르의 감각은 적중하여 ‘애욕’은 전 유럽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1986년에는 4백만 부 이상 발매되어 세계 음반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Tu es la vague, moi l'île nue
당신은 파도이며 나는 벌거벗은 섬입니다.
Tu vas, tu vas et tu viens entre mes reins
당신은 내 허리 사이로 오고 또 가지요.

음악의 보들레르와 아폴리네르로 불린 세르주 갱스부르는 대중의 숨겨진 갈망을 태연하게 들추어 그것을 시인하고 열망하며 탐미하게 만들었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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