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영화 <돈룩업>에는 헐리우드 제작사들이 플래그십 영화를 만들 때 주인공으로 스태핑할 것 같은 배우들 수십 명이 나온다. ‘지구를 멸망시킬 혜성을 처음 발견한 미시간 주립대 천체물리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와 그의 스승 랜달 민디 교수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트럼프, 오바마, 클린턴, 부시 등 미국 대통령들의 우스꽝스러운 부분만 모아놓은 듯한 미대통령 역의 메릴 스트립이 주인공들이다. 거기다 마크 라이언스, 케이트 블란쳇, 티모시 살라메와 아리아나 그란데까지. 진정한 넷플릭스의 플렉스이다.
이 영화 때문에 과학계가 난리가 났다. 과학은 다수결이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비말을 통해 전염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물론 이것을 현실에 적용할 때는, 백신 패스 문제처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실은 이 두 가지 유형의 문제들은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특히 그 시사점이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경우, 가장 근본적인 과학의 영역 문제까지 챌린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마스크를 쓰는 것을 정치적 신념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그때는 아무도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이런 이슈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 <돈룩업>에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그 답답함에 대한 영화라며 흥분하고 큰 응원을 보내고 있다.
혜성이 충돌해서 6개월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주장은 너무 구체적이고 위험하게 들린다. 영화 초반에는, 왜 사람들이 저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연예인 커플이 깨지고 재결합하는 것보다 관심 없어 하는지 의문이 든다. 혜성 충돌을 지구 온난화로 바꾸면 이런 반응이 이해가 간다. 많은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며 이를 위한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굳이 과학적 근거가 없어도 분명 20~30년 전과는 날씨가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정치 성향의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가 음모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지금 기후의 변화는 긴 역사를 놓고 보면 오차 범위 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돈룩업> 속 정치인들과 그들의 후원 기업인들이 하는 주장과 동일하다.
인터넷/스마트폰 기업 Bash의 창업자인 피터 이셔웰(마크 라이언스)은 다가오는 혜성에 엄청난 가치를 가진 희귀금속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제이니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에게 자기 회사의 우주선과 탐사 로봇을 보내 압력을 넣는다. 덕분에 인류는핵폭탄으로 혜성의 궤도를 바꾸고 지구를 구할 기회를 날려 먹는다.
피터는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마크 저커버그, 스티븐 잡스의 다크 사이드만 모아 놓은 것 같은 인물이다. 그는 매년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전자 제품 시장을 장악한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은 ‘알고리즘’ 기반 추천 서비스인데, 사람들이 우울해하면 자동으로 강아지 영상을 추천해주거나, 정신과 예약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내 스마트폰이 물어보지도 않고 결제했어”라는 대사가 나오는 것처럼 이 회사는 개인의 사생활과 개인 데이트를 속속들이 알고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Bash CEO 피터 이셔웰은 민디 교수에게, Bash는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알고리즘에 따르면 당신은 외롭고 쓸쓸히 혼자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구현한 알고리즘에 따르면…”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하면 이는 과학의 영역 같고, 신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는 과학처럼 들리는 것이지 과학이 아니다.
민디 교수는 지구를 함께 탈출하자는 대통령의 제안을 뿌리치고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최후를 준비한다. 만약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그는 Bash 알고리즘이 예언한 대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지구 멸망의 순간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보내기로 결정한다. 과학을 믿어달라며 절규하던 민디 박사가 과학의 영역처럼 보이는 ‘알고리즘’에 반박하는 결말이 마음에 든다.
글 | 도영진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전문 기업 경영인, CJ E&M과 이십세기폭스에서 전략 및 디지털 사업을 담당하였으며 AI를 활용한 새로운 콘텐츠 마케팅과 배급을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