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aranjuez con tu amor 암흑 속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꿈
[아츠앤컬쳐] 그래미 어워드에 빛나는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와 보컬 바비 맥퍼린의 라이브 듀엣 ‘스페인(Spain)’을 감상할 때마다 음악의 미적 가치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1939년에 작곡한 오케스트라와 기타의 협주곡이 변모된 방식으로 진화된 세대를 만족시키는 장면이란 생각보다 꽤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은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즈 협주곡> 2악장의 테마를 꺼내어 9분에 달하는 즉흥 연주를 펼쳐 관객을 매료시켰다. 이처럼 <아랑후에즈 협주곡>은 스페인의 낭만음악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면서 재즈와 팝 등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주목받는 소스이다.
<아랑후에즈 협주곡>의 매력은 무엇보다 스페인의 대표적 악기인 기타의 특성이 오케스트라와의 협주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의 기타에 대한 이해와 앙상블의 구조적 치밀함이 드러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2악장의 구조 -기타의 인트로에 스며든 잉글리시 호른의 테마, 오케스트라의 지속음 위 기타의 베리에이션, 오케스트라의 충주에 대비된 기타의 잔잔한 장조의 마침- 는 로드리고의 뛰어난 작곡 능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사실상 <아랑후에즈 협주곡>은 18세기 스페인, 이탈리아의 기타의 전통과 플라멩코스타일, 바로크적 특성이 어우러져 기타의 무한대의 가능성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그 결과 칙 코리아뿐 아니라 전설의 트럼펫 주자인 마일스 데이비스를 비롯해 장 크리스티앙 미셸, 버스터 윌리암스, 톰 스콧의 경우처럼 장르를 뛰어넘은 멋진 퍼포먼스들을 목도하게 했다. 보컬 버전 또한 매우 인상적인데 이는 가사에 담긴 영감의 주체가 바로 아름다운 장소 아랑후에즈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사랑이여,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하는 한 꽃들은 빛나기를 멈추지 않으리다.
세상은 평화로, 대지는 열기로 가득해야 하기에.
사랑 없는 공허한 말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지만
곧 바람에 흩어져 아무도 듣지 못할 것이요.
나의 사랑이여, 아랑후에즈에서 날 기다린다면
내 심장 속엔 결혼의 송가와도 같이 아름다운 소리들이 울릴 거요.
초저녁의 분수들이 장미들과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게 되리다.”
아랑후에즈는 마드리드의 남쪽에 위치한 18세기 부르봉가의 궁전으로 녹음 짙은 정원과 호화로운 왕궁이 유명하다.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선사하는 이곳은 로드리고가 그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빅토리아와 신혼 시절 방문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장소들이 소중한 이야기들을 간직하듯 아랑후에즈 또한 로드리고와 빅토리아의 사랑을 간직했으리라 생각된다.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즈의 기억을 기타와 오케스트라로 표현했지만, 후에 그의 기억은 귀 봉탕펠리(Guy Bontempelli)에 의해 프랑스어 가사를 지니게 된다.
1967년 봉탕펠리의 ‘아랑후에즈, 나의 사랑(Aranjuez, mon amour)’은 리차드 안소니(Richard Anthony)의 목소리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노래는 곧 여러 유럽어로 번역되어 각국의 유명 가수들에게 불렸다. 그리스의 대표 가수인 나나 무스꾸리로부터 팔로마 산 바질리오, 디앙고, 달리다, 둘세 폰체스를 거쳐 현재 안드레아 보첼리, 일 디보에 이르기까지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다양한 버전을 내놓았다.
이들 중 개인적인 취향을 담아 추천하자면 단연 디앙고(Dyango)를 언급하고 싶다. 그가 스페인어로 부르는 ‘사랑의 아랑후에즈(En aranjuez con tu amor)’가 가장 로드리고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본질을 미화하지 않는 디앙고의 거친 단순성이 아름다움을 소리로 접하는 로드리고의 애달픈 음악과 매우 닮아있다.
덧붙이자면, 로드리고는 세 살 때 디프테리아로 시력을 잃어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았다. 그는 보이는 것 보다 들리는 것을 묘사했기에 아랑후에즈의 기억은 암흑 속의 꿈결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여겨진다. 그가 만일 가사를 썼다면 아마도 ‘En aranjuez con tu amor’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