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찬란한 축복을 그리다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76x56.5cm(20호).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76x56.5cm(20호).

 

[아츠앤컬쳐]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종려나무, 포도나무, 유향나무, 사과나무, 뽕나무. 성경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여럿이다. 이 중에 자주 언급되는 예는 종려나무(Palm tree)가 대표적이다. 일명 대추야자로 불리는 종려나무의 열매는 식용으로 쓰고, 이파리는 지붕을 잇는 재료로 사용되며, 나무는 목재, 꽃은 술의 원료로 쓰이니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시편 92:12-13)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100x70cm(40호)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100x70cm(40호)

 

승연례 화백은 이처럼 성경에 묘사된 종려나무를 그림의 일관된 소재로 다룬 <팜트리(Palm tree)>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성경에서 팜트리의 다양한 쓰임은 존경과 기쁨, 승리와 번영 등의 다양한 상징성으로 묘사된다. 물론 기독교적 시각에서 비유된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하나님 백성들이란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히브리어에서 번성하다로 번역되는 단어인 파라흐나무줄기에서 가지들이 뻗어 나오는 것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단어가 흥하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결국 한 몸통의 줄기에서 사방으로 뻗친 잎줄기와 풍성한 열매를 지닌 종려나무의 형상으로 의인의 번성함을 묘사한 셈이다.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76x56.5cm(20호)..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76x56.5cm(20호)

 

승 화백의 조형적 어법은 아주 간결하고 담백하다. 표면에 적당한 질감이 느껴지는 판화지에 크레용 한 재료로 반복적인 드로잉 선 긋기로 완성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쭉쭉 뻗은 선들을 보면 속도감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화의 일필휘지(一筆揮之)에 과감하고 명확한 작가적 신념이 뚜렷하게 읽힌다. 아마도 일정한 속도의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한 그루 혹은 한 쌍의 종려나무 마지막 이파리를 긋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필선의 흔적이 큰 특징인데, 그 선들이 반복적으로 그어지는 과정에선 아주 안정된 호흡이 유지된 고요한 리듬감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놓칠 수 없다.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76x56.5cm(20호)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76x56.5cm(20호)

 

흔히 그림자가 강할수록 빛도 더 찬란하기 마련이다. 종려나무 역시 그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돋보이는 것은 자라 나는 주변의 환경이 대개 삭막한 광야이기 때문이다. 주로 사막같이 열악한 환경임에도 아랑곳없이 사계절 동안 변함없이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이다. 그것은 종려나무의 깊은 뿌리가 오아시스 샘물에 닿아 있기에, 드넓은 죽음의 사막에서도 종려나무의 존재는 생명의 희망으로 여겨진다. 이 역시 하나님의 뜰인 오아시스 샘물에 비유되며, 생명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의 성령에 비유된다.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42x29.7cm(8호)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42x29.7cm(8호)

 

실제로 한 그루의 종려나무가 연간 200kg 가까운 열매를 생산하고, 50년이 넘어서면서 가장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고 하니 찬란한 축복의 나무가 아닐 수 없다. 승연례 화백의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단순히 팜트리 풍경 초상에 머무르지 않고, 종려나무 묘사를 통해 인간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가령 나란히 선 두세 그루의 종려나무가 한 쌍의 연인이나 부부 혹은 가족을 연상시킨다. 또한 종려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둘러 자연스럽게 화목하고 안정된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는 형국을 연출한다.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42x29.7cm(8호)
승연례, Palm tree, 2022, 종이에 크레용, 42x29.7cm(8호)

 

이외에도 성경에 묘사된 종려나무의 인상들―‘의인(시 92:12), 신부의 품위와 미모(아 7:7-8), 영화로운 통치자(사 9:14) 등을 그림의 기반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승연례 화백의 종려나무가 단지 성경에 등장하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작가적 신념으로 다져진 믿음이 스미어들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고 여겨질 것이다. 승연례 화백의 팜트리 연작은 청담동의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이달 25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승연례(1949~) 화백은 1971년 서라벌예술대학교을 졸업하고, 호리아트스페이스 등 4회의 개인전과 여러 기획전에 참여했다. 주로 팜트리라는 일관된 소재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절대적으로 애용하는 작업 도구는 크레용이다. 오일스틱 종류의 크레용을 활용한 드로잉은 페인팅 못지않은 자유로움과 밀도감을 자랑한다. 두껍거나 얇게,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필력은 무한한 에너지로 뻗치는 역동성이 판화지 특유의 질감과 만나 잠든 화면을 해방 시킨다. 독특한 필력의 리듬감은 그녀만의 조형적 언어를 구성한다. 그의 남다른 풍성한 어휘력은 몽환적인 단색조의 일필휘지 필력으로 완성된다.

 

글 | 김윤섭
명지대 미술사 박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아이프aif 미술경영연구소 대표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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