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 빅토리아’(Young Victoria, 2009) 스틸컷 (c)네이버 영화
영화 ‘영 빅토리아’(Young Victoria, 2009) 스틸컷 (c)네이버 영화

[아츠앤컬쳐] 물 끓는 주전자에서 증기기관을 발견한 와트(James Watt, 1736~1819),그의 증기기관은 범선의 시대에서 증기선으로, 마차에서 증기기차로, 당시 첨단과학 문명은 팍스 브리태니커(Pax Britannica)의 시작이자 유럽 제국주의에 불을 댕기는 1차 산업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석탄으로 구동하는 증기기관이 하마터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우여곡절이 있었다는데, 문제는 ‘석탄’이었다. 만약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은 운명적으로 영국을 선택이라도 한 것처럼 때마침 절묘한 타이밍에 영국에서 엄청난 매장량의 석탄광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유럽은 영국을 중심으로 열강들과 더불어 치열한 식민제국주의 늪에 빠져들어 갔다.

영화 ‘영 빅토리아’(Young Victoria, 2009) 스틸컷 (c)네이버 영화
영화 ‘영 빅토리아’(Young Victoria, 2009) 스틸컷 (c)네이버 영화

대영제국 빅토리아 시대
와트가 세상을 떠나던 바로 그해 훗날 영국을 대표하는 여왕이 될 빅토리아(Victoria, 1819~1901)가 태어났다. 그녀는 대영제국, 아일랜드 연합왕국과 인도의 여왕으로 64년 동안 재위하며 안정적인 왕권을 수립.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왕실 전통의 시작과 더불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인 ‘빅토리아 시대’를 열었다.

영화는 제국주의의 잔혹사를 다루지 않는다. 왕실 내 권력투쟁 또한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의 로맨스를 스크린에 담아내고 있다. 잔잔히 흐르는 스크린에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바로 슈베르트 3대 연가곡 중의 하나인 <백조의 노래> 중 ‘세레나데’이다.

영화의 배경음악은 ‘세레나데’를 여러 형태로 변주한 음악들로 영상과 결합하여 한층 더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사운드 트랙은 수많은 영화와 TV방송 음악을 통해 신고전주의적 어법으로 컨템퍼러리 음악을 펼치고 있는 영국의 일란 에쉬케리(Ilan Eshkeri, 1977~)가 맡았다. 주요작품으로는 영화 니벨룽의 반지(2004), 한니발 라이징(2007), 닌자 어쌔신(2009) 등이 있다.

아름답고 화려한 영상의 배경 뒤에 식민제국주의 시대의 고통이 숨겨진 영화는 슈베르트 음악으로 가면을 뒤집어쓴 듯하다. 고통의 시대지만 음악으로 고통을 애써 외면하는 듯 흑과 백, 듀얼리즘의 교묘한 공존이 느껴진다. 마치 슈베르트의 이중성과도 같다. 슈베르트는 평생 고통, 외로움, 질병과 같은 죽음의 단어를 옆에 두고 살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이 항상 그의 곁을 지켰다.

감독-장 마크 발레, 주연-에밀리 블런트, 루퍼트 프렌드
제82회 아카데미시상식(2010) 샌디 포웰(의상상)
제63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2010) 제니 셔코어(분장상)


<백조의 노래>를 남기고 전설이 된 슈베르트
“슈베르트는 돈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머리에 떠오르는 악상을 단지 그대로 악보에 옮겼을 뿐이다.” 
그에 대한 전기를 쓴 누군가의 표현이다. 이처럼 슈베르트에게서 음악만큼은 신의 축복을 받았다. ‘슈텐트혠(Ständchen)’이라고 불리는 <백조의 노래> 중 이 ‘세레나데’는 전 세계 연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곡으로 “남자가 연인의 창문 아래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바로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의미심장한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슈베르트는 <백조의 노래>를 작곡한 그해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평생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운다”는 백조에 대한 속설처럼 결국 슈베르트는 3대 연가곡 중 마지막 유품 <백조의 노래>를 남기고 전설이 되었다.

영화 ‘영 빅토리아’(Young Victoria, 2009) 스틸컷 (c)네이버 영화
영화 ‘영 빅토리아’(Young Victoria, 2009) 스틸컷 (c)네이버 영화

이렇게 영화는 슈베르트를 녹여가며 빅토리아와 엘버트 공과의 러브라인을 너무나 아름다운 화면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과거 1967년 작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흐르는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흐르는 스웨덴의 아름다운 자연과 연인과의 사랑 그러나 비극의 결말처럼 이 영화 또한 앨버트 공의 죽음으로 슬픔의 결말을 짓는다. 장티푸스를 앓은 앨버트 공은 42세에 부인 빅토리아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잊지 못한 빅토리아는 81세로 죽을 때까지 매일 남편의 의상을 준비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이루는 와트와 증기기관, 석탄, 1차 산업혁명 그리고 영화에서의 화려한 왕궁, 빅토리아 여왕과 엘버트 공의 사랑 그리고 슈베르트… 이 모든 게 마치 한 호흡으로 전개되는 오페라의 무대를 보듯 영화는 모두를 아우르며 우리에게 한 시대 역사의 흐름과 불멸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글 | 알렉스 강
문화칼럼니스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학과 졸업
현재 문화예술 전문매체 ‘더프리뷰’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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