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미술사에는 위대한 미술가들이 많지만 가장 위대한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를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해냈는데 그것은 단지 그가 만든 작품의 규모와 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이루어 낸 완벽이라 평가받았던 미술을 스스로 파괴하는 진정한 예술 세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천장화 「The Sistine Chapel Ceiling」(일반적으로 ‘천지창조’라고 불린다.)와 벽화 「최후의 심판」은 인간이 그렸다고 하기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압도적이다. 전자는 30대에 후자는 60대에 그렸으며 둘 다 색채에 있어서나 형태, 원근법 등에서 르네상스의 미술 규범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파괴와 도전으로 일관한 미켈란젤로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 주는 걸작들이다.
‘천지창조’를 그리게 된 계기는 독특하다. 미켈란젤로에 관한 여러 전기에 따르면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칭찬하는 것을 베드로 성당의 감독관이자 건축가였던 브라만테가 듣게 된다. 이에 브라만테는 미켈란젤로에게 경험이 없는 회화 작업을 맡김으로써 실패를 통해 그의 명예를 실추시킬 계획으로 교황에게 그를 천장화를 그리도록 추천하면서 일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같은 해에 역시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가 바티칸 궁전의 벽화를 그려서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 주문은 미켈란젤로에게는 일종의 시험이자 시련일 수밖에 없었다. 미켈란젤로도 스스로 자신은 조각가이므로 그림은 라파엘로에게 맡기라고 교황에게 재차 이야기했으나 이미 미켈란젤로에게 그림을 맡기기로 결심한 교황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결국 미켈란젤로가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것이 불후의 명작 시스티나 천장화이다. 미켈란젤로는 이 거대한 벽화를 혼자 그린 것은 물론이고 주문자인 교황 율리우스 2세를 포함하여 그 누구의 출입도 금지했다고 한다. 작업 시작 무렵에는 조수를 쓰기도 했으나 이들의 솜씨가 오히려 작업에 방해가 되는 것을 알고는 모두 지워 버리고 문을 걸어 잠근 채 물감을 준비하는 조수 한 사람만을 남겨 4년간의 외롭고 긴 작업에 들어갔다.
인간이 4년간 눕거나 구부정한 상태로 사다리 위에 올라가 천장만 올려다보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천장화를 통해 르네상스 프레스코화를 기법, 형태, 색채 면에서 절정에 올려놓았다.
미켈란젤로는 1508년 5월 10일 계약하고 4년 동안 천장 벽화의 프로그램을 짜고 설계하여 그 계획에 따라 일을 진행해 나간 것이다. 그의 그림은 1512년 완성되어 같은 해 11월 1일 제막식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계약 구조를 도급 계약이라 한다. 도급 계약에 따라 수급인(그림을 의뢰받은 자, 미켈란젤로)이 완성한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은 도급인(그림을 의뢰한 자,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된다.
그러나 그 결과물에 대한 무체 재산권, 즉, 저작권 등은 특약이 없는 한 창작자 귀속의 원리에 입각하여 수급인에게 귀속된다. 즉, 그림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것이지만, 그림에 대한 저작권 등 무형적권리는 미켈란젤로가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원칙을 고수하게 되면, 대가를 지급하고 수급인에게 저작물의 제작을 의뢰한 도급인이 당해 저작물을 다른 용도로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에 수급인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등 도급인의 입장에서는 법 감정상 납득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이를 수용하기가 쉽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법원은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하여 도급인이 수급인에 의해 행해진 당해 저작물의 제작과정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감독하였다면 이는 업무상저작물로 보아 그 저작자를 도급인으로 볼 수 있다고 하거나,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수급인이 도급인으로부터 의뢰받아 제작한 저작물을 도급인에게 인도하였다면 그와 동시에 그 저작물에 관한 저작권도 함께 양도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리 법원은 바둑 비디오 교재의 제작 납품 계약을 체결하면서 비디오 교재의 판권은 도급인에게 귀속한다고 약정한 사건에서 “도급계약에 의한 영상저작물 제작에 있어서는 수급인이 그 저작물을 완성하며 도급인에게 이를 인도하였을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소유권과 아울러 그 지적재산권의 전부 또는 일부인 복제 및 배포권도 같이 양도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1994. 12. 7. 선고, 94라175결정).
위 사례에서 법원은 “신청인(수급인)과 피신청인(도급인) 회사와의 비디오 교재 제작 계약은 그 성질상 신청인이 비디오 제작을 완성하여 피신청인 회사에게 인도함으로써 계약이 완결되는 도급계약으로 보여 지고, 이와 같은 도급계약에 의한 영상 저작물 제작에 있어서는 수급인이 그 저작물을 완성하여 도급인에게 이를 인도하였을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소유권과 아울러 그 지적재산권의 전부 또는 그 일부인 복제 및 배포권도 같이 양도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인데, 신청인이 비디오 교재의 원본 및 복제본을 피신청인 회사에 인도한 이상 적어도 비디오 교재의 복제 및 배포권은 도급인인 피신청인 회사에게 양도되었다가 피신청인 회사에 의하여 다시 피신청인 A에게 양도되었다 할 것이므로, 그 잔금 채권이 남아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신청인에게 아직 비디오 교재의 저작재산권 또는 복제 및 배포권이 남아 있음을 전제로 하는 신청인의 이 사건 신청은 이유 없다.”라고 함으로써, 도급계약의 경우에 있어서 수급인이 도급받은 저작물을 완성하여 이를 도급인에게 인도를 하게 되면, 그 저작물에 관한 소유권은 물론 저작권의 전부 또는 일부도 도급인에게 양도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한편,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그리고 있던 중에 지인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나는 완전히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벌써 일 년이나 교황에게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청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그런데 원칙적으로 도급 계약에서는 완성된 물건의 인도와 보수의 지급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즉, 수급인(미켈란젤로)의 기본 의무는 ‘그림을 완성할 의무’였던 것이다. 즉 원칙적으로 완성된 그림을 교황에게 전달하면서 그에 따른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원칙이 아닌 예외를 규정하려면 도급인(교황)과의 계약에 그러한 내용을 특약사항으로 넣었어야 했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