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학에 대한 이유 있는 변
[아츠앤컬쳐] 조각가 양형규는 부조 형식의 작품만을 선보인다. 작품의 소재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포착한다. 가령 얼굴이나 손처럼 신체의 일부이거나, 거리의 분주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이들의 해석은 주로 ‘형태의 규칙성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할 만큼, 상식적인 편견들을 비틀어 보인다. 조형적인 제작과정이 곧 작품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 정직한 제작과정을 거치지만, 어긋나게 재조합하는 왜곡과정을 통해 일상을 벗어난 꼬임 혹은 끝을 모를 반복된 불확실성 등을 암시한다. 그것이 곧 인생이고, 그래도 살아가야만 한다는 작가적 역설인 듯하다.
겉으로 얼핏 보면 성의 있게 만들어진 보통의 부조 작업이지만, 가만히 보고 있을수록 묘한 흔들림이 느껴진다. 보는 이의 잔잔한 감정을 일깨우는 심리적인 울림이 있다. 간혹 양형규의 ‘가로 8m50cm, 세로 1m20cm가 넘는’ 대형작품 앞에 서본 관객들이라면 최소한 두 번은 놀라게 될 것이다. 먼저 목판(木板)을 무심한 듯 거칠게 쳐내어 파편화된 조각도의 터치 속에서 발견되는 섬세한 인체 표현 능력이다. 적게는 수천 번에서 보통은 수만 번의 조각칼 터치를 만나야만 얻을 수 있는 밀도감으로 인체의 부분을 클로즈업했다. 그래서인지 너무나 유기적인 생동감이 넘쳐, 화면 전체가 일렁이고 꿈틀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흥미로운 점은 화면의 조형적 조합 방식이다. 재단된 나무를 가집성하여 평소 만났던 일상의 한 장면을 스케치한 뒤 목각(木刻)을 통해 부조 작품을 완성한다. 여기까진 평범한 과정이다. 하지만 각각의 재단됐던 목재를 다시 해체와 조립과정을 거치면서 ‘어긋한 형태의 불명확한 조합이미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러 왜곡되고 굴절된 거울로 자신과 세상을 투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과정은 실재한다는 풍경의 진실이 무엇이고, 진실이라고 믿는 그 신념의 근원은 과연 존재하는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양형규의 부조는 구상으로 시작했지만 추상이며, 이성적이면서도 동시에 감성적이고, 뿌리칠 수 없는 ‘직관적 사유의 깊이’를 품고 있다.
“부조의 외곽 프레임은 바라보는 혹은 보여지는 창(窓)이다. 나와 나 아닌 것들과의 관계는 매 순간 흔들리고, 어긋나며 필연적인 우연과 무작위의 연속이다. 우리는 그것을 ‘일상’이라 부른다. 변형과 왜곡, 해체의 과정을 통해 독창적인 조형성을 제시하고,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소통하고자 한다. 각 셀들의 어긋남으로 불분명해진 형태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는 또 다른 관점이기도 하다. 나와 나 아닌 모든 것들과의 관계는 어긋남을 통해 재해석되고 판단되어진다. 또한 평면상에 가해진 힘의 충돌은 굴곡과 형태를 만든다. 모든 면과 선들은 우연과 무작위로 유일무이한 형태를 만든다. 우리들의 ‘관계’처럼….”
양형규의 말처럼,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관계(關係)’이다. 양 작가에게 관계는 단순히 ‘두 대상이 이어진 상태’로써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다. 서로 만났다가 헤어지고, 어긋나고, 충돌하며, 동요하는 모든 순간의 에너지를 통틀어 지칭하는 정의인 셈이다. 그만큼 작가적 고민과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결과는 작품에 힘을 실어준다. 지극히 전통적이고 평범한 조형방식을 고수하면서도 동시대적 감성으로 표현하려는 작가적 의지를 기반으로 독창적이고 함축적인 새로운 조형미를 완성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양형규의 작품에 자주 선보이는 색감은 ‘청색(靑色)’이다. 작가는 청색을 ‘무심함, 감정 기복 없는 평정심의 표현에 용이한 색’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한다. 그가 일상에 대한 관조적 시선이 어느 대목에 닿아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서두르지 않는 특유의 인내력과 작가적 포용력은 국내 조각계에서 그의 입지를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MBC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 천주교 국제미술공모전 장려상수상 수상 등이 그를 입증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이미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국가기록원, MBC 문화방송, 이천시청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마침 간만에 서울 삼청동의 한벽원갤러리에서 오는 10월6일까지 전시 중이며, 내년에는 한가람미술관에서 펼쳐지는 ‘2019 서울국제조각페스타’전에도 초대되었다.
작가소개 | 양형규
양형규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에서 조각전공으로 졸업했으며, 그동안 5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했다. 주요 수상경력으로는2002 MBC한국구상조각대전 특선(예술의전당), 2008 MBC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성남아트센터), 2012 서울미협 이사장상, 2017 천주교 국제미술공모전 장려상(서울대교구 절두산 성지) 등이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국가기록원, MBC문화방송, 동서대학교, 이천종합운동장, 노원구청, 김천시청, 절두산성당 등을 비롯해 여러 개인에게 소장되어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조각가협회, 홍익조각회, 구상조각회, 소조각회, 이천조각가협회, 2013~현재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추진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필자소개 | 김윤섭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