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성북동에는 유난히 많은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이 이곳에 있고,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집이었으나 지금은 찻집이 된 수연산방도 성북동의 명소다. 조지훈, 김광섭 등 많은 문인들과 화가 김환기도 성북동에 근간을 두고 활동했다. 그들 중 다수가 시내를 벗어나 이곳에 터를 잡은 내력은 경제적인 여건도 있었을 테지만 도심과 멀지 않으면서도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지리적인 요인이 컸으리라.”
일명 ‘도트작품’으로 이름난 이동재 작가도 2년 전 성북동에 둥지를 마련했다. 이사를 한 이 작가가 처음 한 일은 동네 골목과 옛길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성북동을 몸소 체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북동을 앞서간 수많은 문인과 예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틈틈이 찾았던 골목과 성곽길, 피정의 집과 덕수교회, 성북동이 한눈에 들어오는 와룡공원, 수화 김환기의 수향산방과 심우장 그리고 수연산방…, 곳곳이 그대로 예술향이 온전하다. 굳이 밖으로 나가는 수고스러움이 없더라도, 언덕에 자리 잡은 그의 집 옥상에서 성북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간송 선생이 거닐었을 간송미술관 뒤뜰의 소나무숲을 바라보는 게 일품이다.
이동재 작가는 2000년 초반부터 독특한 재료로 작품을 제작해 큰 화제를 모았다. 가령 작품 <콩팥>은 곡식인 콩과 팥을 붙여 실제 신장(콩팥)을 만들었거나, 실제 쌀알들을 모아 ‘쌀’이라는 글자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형식이다. 또한 곡식 녹두를 낱알로 붙여 녹두장군 전봉준을 표현했다. 현재는 더 나아가 레진으로 일일이 제작한 작은알파벳을 한 땀 한 땀 붙여 어느 문학작품에서 인용한 문장이나 텍스트를 상징하는작업으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해 10월 청와대 영빈관 복도에 쌀알로 표현된 김구 선생의 초상화 작품이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는 서울 성북동 생활의 일상에선 만난 예술가들의 단상을 옮긴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같은 성북동에 소재한 60화랑(대표 손진우)에서 <짓고 쓰고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오는 6월까지 대장정의 초대전이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성북동에 기거하며 예술활동을 했던, 혹은 민족정신을 고취하여 우리의 얼과 문화유산을 지켜낸 이들의 혼을 이동재 작가의 시각으로 다시 보듬어본 일상예술’이란 컨셉을 갖는다.
우선 크리스탈을 재료로 한 초상작품들과 레진 알파벳 작품들로 나뉜다. 초상의 주인공들 중엔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 일제강점기에 ‘님의 침묵’으로 저항 문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한용운, 우리의 문화재를 일제로부터 지켜낸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 ‘승무’로 대표되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야기를 남긴 근대 단편소설가 이태준 등이다. 단색의 화면에 크리스탈을 점점이 붙인 인물들의 표정이 함축적인 상징미와 실제감이 돋보인다. 또한 도트로 처리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나,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 등의 시(詩)는 마치 눈으로 점자책을 만지는 듯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이 외에도 원색 톤의 바탕에 아트(ART), 아트워크(ARTWORK) 등의 사전적 내용을 담은 텍스트 작업도 관객의 시선을 한참 동안 사로잡는다.
이동재 작가의 작품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표면적으로는 전통적인 회화의 시각적인 요소를 가졌지만, 제작과정이나 재료가 지닌 것은 지극히 조각적인 면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일상을 채집하는 작품의 구상단계는 지극히 문학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동재의 작품은 장르와 조형기법의 혼용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열린 감성의 집합체’로 불릴 만하다. 제작과정을 면밀히 살펴본 이라면, 절대적인 고요함과 정중동의 미학을 품은 그의 작품에서 ‘참선하는 수행자의 자세’까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소개 | 이동재
이동재(1974~) 작가는 동국대 미술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조각전공으로 졸업했으며, 서울ㆍ베이징ㆍ파리 등에서 9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동안 2017 100Albums 100Artists(롯데월드타워점 에비뉴엘 아트홀/서울), 2016 Total Support for Total Museum(토탈미술관/서울)ㆍ텍스트 그 이전(교보문고 광화문점 교보아트스페이스/서울), 2015 조우(서울시립미술관/서울), 2014 한국의 초상미술-기억을 넘어서(전북도립미술관/완주), 2013 Hommage à Whanki I_김환기를 기리다(환기미술관/서울), 2012 몸의 사유(소마미술관/서울)ㆍ현대미술사용설명서(포스코미술관/서울), 2008 Real illusion(가나아트갤러리 뉴욕/뉴욕)ㆍPOP N POP(성남아트센터/성남)ㆍMeme trackers(송장미술관/베이징)ㆍLet a thousand flowers blossom(파리국제예술공동체/파리), 2007 Spain ARCO art fair(후안 카를로스 전시장/마드리드), 2006 Contemporary Asian Art(소더비 뉴욕), 2005 다이나믹 라이프 (서울올림픽미술관/서울) 등 150여 회의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다. 또한 파리국제예술공동체와 장흥아뜰리에 등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초대됐으며, 국립현대미술관ㆍ서울시립미술관ㆍ환기미술관ㆍOCI미술관ㆍ진천종박물관ㆍ동국대학교 외 다수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필자소개 | 김윤섭
미술평론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정부미술은행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