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보사노바(Bossa Nova)의 물결
[아츠앤컬쳐] 이파네마의 몬테네그로 거리에 위치한 ‘벨로주 바(Veloso Bar)’에선 두 젊은이가 종종 머리를 맞대고 담소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주로 시와 음악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가끔은 무언가를 응시하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주의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이유를 대번 알 수 있었는데 바로 근처를 지나가는 옐로 삐네이루(Helô Pinheiro)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두 젊은이는 해변으로 향하는 이 아름다운 소녀를 동경하는 노래를 발표했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이 세계적 명곡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낭만적인 가사와 소박한 선율로 마음을 적시는 ‘이파네마의 아가씨’는 바로 이러한 탄생 배경을 지닌 노래이다. 두 젊은이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Antônio Carlos Jobim, 1927~1994)과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Vinicius de Moraes, 1913~1980)로 그들은 각각 ‘보사노바의 거장’과 ‘작은 시인’으로 통한다.
1962년 발표된 ‘이파네마의 아가씨’는 영미권에선 ‘The girl from Ipanema’로 불리며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포르투게스 뉘앙스로 세계인들의 가슴에 이파네마의 파도를 일렁이게 했다. 특별히 1964년 발표된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와 스탄 게츠(Stan Getz)의 듀오 버전은 보사노바의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며 1965년 ‘올해의 그래미상’ 수상곡의 영예을 안겨 주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에도 곡의 인기는 더욱 상승하여 2001년 ‘라틴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을 뿐 아니라 2004년 미 의회도서관이 선정한 ‘50장의 명반’에 수록됨으로 명실공히 비틀즈(The Beatles)의 ‘예스터데이(Yesterday)’와 더불어 음반 역사상 가장 많이 녹음된 곡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파네마의 아가씨’는 조빙과 비니시우스에게 화려한 국제적 명성 이면의 불쾌감 또한 가져다주었는데, 이는 그들의 성공이 동료 예술가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그저 분에 넘치는 행운 정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작곡가 조빙은 당시 음악계의 비호의적인 시선과 무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그의 보사노바 스타일은 종종 ‘브라질 전통음악’의 변질과 위기를 부추기는 부정적 본보기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조빙은 특유의 낙천성으로 그들의 날 선 비난에 대처했으며 가끔은 재치 있는 노래로 그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의 유명곡 제사피나두(Desafinao:불협화음)가 달콤한 보사노바의 선율 위에 흐르는 위트로 무장된 조롱의 메시지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예이다. 어찌 됐든 조빙은 연이은 히트곡들의 놀랄만한 선전과 쾌거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으며 더불어 새로운 보사노바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아! 왜 이리 외로울까? 아! 왜 이리 슬프지? 아! 아름다운 존재여! … 내 것이 아닌 저 아름다움이 홀로 걸어가네! 그녀가 해변을 거닐 때 온 세상이 미소 짓고 우아함과 사랑으로 가득 차는 걸 안다면…!”
– 이파네마 아가씨의 노래 중에서
‘새로운 물결 혹은 성향’으로 풀이되는 브라질의 ‘보사노바(Bossa Nova)’는 전통 음악인 상바(Samba)와는 다른 음악적 특성과 지향성을 갖는다. 아프리카 노예 공동체의 원색적인 춤과 리듬에 뿌리를 둔 격렬한 ‘상바’와 간결하고 우아한 선율에 시적 운율을 더한 ‘보사노바’의 몇 소절을 비교하는 것으로도 누구든지 쉽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50년대에 처음 선을 보인 보사노바는 주로 빈민층에서 각광 받던 격렬한 상바리듬을 약식화하고 집단 가창과 춤을 배제하는 대신 절제된 악기와 독창을 중심으로 ‘서정적 예술성’을 추구하던 음악이다. 이에 주로 사랑이나 갈망, 자연과 향수 등의 정서를 시적인 가사와 낮은 읊조림, 재즈의 풍미를 가미한 세련된 톤으로 표현하며 당시 상류층과 지식층의 취향을 만족시켰다.
60년대에 들어 보사노바는 조빙과 그의 조력자들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와 다국적 장르로의 가능성을 수용하게 되는데, 여기엔 조빙의 다채로운 음악적 배경과 국제적 감각이 큰 역할을 한다. 조빙의 음악은 브라질의 문화적 특성처럼 커다란 ‘문화의 용광로’ 안에서 가장 독창적인 것을 끌어내는 절대적 능력의 본보기이다. 그의 보사노바엔 브라질 대중음악의 아버지 픽싱기냐(Pixinguinha)를 비롯하여 12음기법을 전수한 독일 작곡가 한스 코엘로이터(Hans-Joachim Koellreutter), 브라질의 민속 음악가 빌라 로부스(Heitor Villa-Lobos), 그리고 유명 상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아리 바호주(Ary Barroso)의 영향이 절충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웨스트 코스트의 ‘쿨 재즈(Cool Jazz)’와 드뷔시와 라벨로 정의되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조합이 자연스레 용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빙의 음악에는 브라질의 숨결이 살아 숨쉬며 노스탤지어와 유포리아, 자연과 정서에 관한 소소한 성찰이 낭만적이고도 이국적인 터치로 펼쳐져 있다.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기고 모든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산, 나무, 바다, 새 등 자연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삶이 아름답다. 그리고 세상은 살만하다.” 그가 남긴 이 말은 그의 정서와 음악 성향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조빙과 비니시우스는 ‘이파네마의 아가씨’ 이외에도 ‘행복(A Felicidade)’, ’마실 물(Água de Beber)’, ‘슬픔이여 안녕(Chega de Saudade)’, ‘난 그대를 사랑하게 될 걸 알아요(Eu sei que vou te amar)’, ‘경솔하게(Insensatez)’, ‘상바 춤만 춰요(Só danço Samba)’ 등 수 많은 명곡들을 남기며 그들의 우정과 동지애를 확인했다. 물론 뉴튼 멘도사(Newton Mendonça), 돌로레스 두란(Dolores Duran), 빌리 브랑쿠 (Billy Blanco), 알로이지우 지 올리베이라(Aloysio de Oliveira), 치코 부아르케(Chico Buarque)등 많은 음악가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조빙의 음악 여정은 늘 풍요로웠지만, ‘우 포에치냐(O Poetina:작은시인)’ 비니시우스와의 동행은 특별했다. 그들은 한때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해변으로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찬란하고도 짧은 ‘젊음’의 본질을 찬탄과 서글픔으로 함께 나누던 친구이자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예술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