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시즌을 오픈하다
[아츠앤컬쳐] 프란츠 레하르(Franz Lehar, 1870~1948)의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는 유럽과 미대륙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빈 오페레타 최고의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독일어로 쓰였지만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연주되면서 독일어 원제인 ‘디 루스티게 비트베(Die lustige Witwe)’보다는 ‘메리 위도우(Merry Widow)’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에서는 ‘라 버브 주와요즈(La veuve joyeuse)’, 우리말로는 ‘유쾌한 미망인’ 또는 ‘즐거운 과부’로 연주된다.
오페레타는 보드빌(vaudeville)이라는 가벼운 희극, 싱스필(singsipiel) 또는 오페라 코믹을 비롯하여 18세기 극형식에 뿌리를 두고 나폴레옹 3세가 지배하던 제2국 시절에 프랑스에서 자크 오펜바흐에 의해 탄생했다. 지아코모 마이어베어가 그랜드 오페라로 명성을 얻을 당시, 황제권은 좀 더 가볍고, 친근한 대중친화적인 형식의 탄생을 후원하였다. 이는 곧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조에 전파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으며,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1874년작 <박쥐>와 함께 오페레타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에 창작된 <메리 위도우>의 경우 오페레타의 백은기(silver age)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프란츠 레하르가 <메리 위도우>를 발표할 당시 비엔나를 일컬어 석양이나 황혼녘으로 표현한다.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스트리아 왕가(Haus Österreich)’라 불리며 광대한 꿈의 지배권을 얻었던 합스부르크 왕가 하에서, 수 세기 동안 오스트리아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배출했다. 1804년 선언된 오스트리아 제국(당시 헝가리와 보헤미아까지 포괄)은 제국의 서쪽 부분이 1815년부터 1866년까지 독일 연방의 일부였고, 1867년부터 독립국가가 된 헝가리 왕국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 중 왕조를 구성했다. 1905년, 바로 이 시기에 <메리 위도우>가 탄생한 것이다.
레하르는 당시 비엔나의 순응적인 부르주아 사회를 파리라는 배경으로 옮겨서 전개하였다. 오펜바흐의 전통을 이어서 그는 오페레타에 캉캉춤을 주요 요소로 설정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일정 대사는 프랑스어화 된 독어를 사용하여 극의 사실적인 묘미를 더하였다. 막심의 무희들도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때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데, 이는 극 전체에 담겨있는 로맨스와 더불어 당시의 외교적 상황의 팽팽한 긴장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파리 바스티유국립오페라는 축제 분위기를 더하고자 가을시즌 오픈과 함께 <메리 위도우(La Veuve joyeuse)>를 선보였다. 무대 연출에는 20년 전부터 한결같이 조르쥬라벨리(Jorge Lavelli)가 역임하여 비엔나의 데카당스와 화려한 파리의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여주인공 미망인 한나 역에는 프랑스 출신의 소프라노 베로니크 정(Véronique Gens)이 분하였다. 그녀는 이미 2006년에 리옹 오페라에서 같은 역을 소화하여 시크하고 우아한 분위기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바스티유 오페라의 무대의 대규모 무대에서 그녀의 음량에 대한 평은 일정부분 고르지 않았다면서 호평과 비판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그녀의 실루엣과 연기력에 대해서는 극찬했다.
그녀의 파트너 역인 다닐로로 분한 미국인 바리톤 토마스 햄슨(Thomas Hampson)의 경우 프랑스 대표적 일간지인 르 몽드지는 카리스마와 침착함을 겸비했다며 호평했다. 더불어 이들과 함께 나온 커플인 카미유 역의 미국계 테너 스테펀 코스텔로(Stephen Costello)와 발랑시엔 역의 몰도바 출신의 소프라노 발렌티나 나포르니타(Valentina Nafornita)에도 후한 점수를 주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통신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inesleeart@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