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최근 한 모임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부쩍 어려워진 나라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매출이 얼마나 떨어졌냐가 화두였는데 돌고 돌아 필자에게까지 순서가 와버렸다. 신종 코로나 영향으로 6개월을 쉬다가 위기를 기회로 삼고 생각의 방향을 바꿔 일을 하다 보니 매출이 작년보다 두 배 늘었다는 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갑자기 모든 이가 대화를 멈추고 필자의 입만 바라보는 침묵이 흘렀다. 그들의 흐릿하던 눈빛들이 갑자기 생기를 얻고 반짝이는 모습에 적잖이 놀라고 당황스럽던 기억이 난다.
신종 코로나의 유행 초기에 수많은 공연이 다음을 기약하며 취소되었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공연들은 비대면 형식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동영상 녹화나 스트리밍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공연은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녹화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공연과 관객이 스스로 선택한 장소와 시간에 전자기기를 통해 보는 공연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초 단위로 새로운 자극을 줘서 시청자를 붙잡는 영상들은 이미 오래전에 태동하여 현재는 그 발전된 수준이 실시간 방송으로 스며들고 있는 정도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미 온라인에서 폭넓은 경험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대중음악과 이제 걸음을 뗀 클래식 콘텐츠는 비교 자체가 안됐다. 클래식 계통 종사자들은 사태를 냉정히 바라봐야 했다.
영상의 퀄리티로 경쟁이 힘들다면 내용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공연 실황 영상은 실제 공연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공연장에서야 집중력이 떨어져도 자리를 뜰 수 없지만 영상은 끄면 그만이다. 게다가 소리 그 자체가 목적인 클래식 공연은 영상이 되는 순간 경쟁력을 잃게 된다. 현재의 기술로 라이브 음향을 완벽히 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러 궁리 끝에 말로 하는 해설을 줄이고 그 자리에 다양한 효과를 넣은 시각적 해설을 넣어 보았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진행해오던 작업이었는데 코로나 시대에 돌파구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현재 대한민국 순수 예술 산업 상황은 그렇지 않아도 숨 가쁜 상황 속에서 마치 카운터 펀치를 맞아 경기장 바닥에 누워 심판의 카운트 소리만 듣고 있는 선수처럼 무기력한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다. COVID-19가 작년 이맘때 시작될 때는 길어야 3~4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황당하게도 1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백신 접종으로 인한 집단면역은 곧 오신다는 메시아처럼 언제쯤 이 땅에 오게 될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구조적으로 취약한 자영업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지원금과 대출이라는 산소 호흡기를 달고 생계를 겨우 이어가는 안타까운 실상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겠지만 산업의 구조조정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AI가 화두가 되면서 얼마 전까지는 끝까지 살아남을 직종에 예술가가 속해 있었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운명의 힘 앞에 지금은 제일 먼저 사라질 수도 있는 예비 멸종 종목이 되었다. 현실을 잊고 싶은 심리가 레트로 유행의 하나로 이어지면서 트로트의 열풍이 휩쓸었고 지난 2020년 순수예술계는 토네이도가 쓸고 간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처럼 황량해졌다.
지금까지도 국가의 공적지원금에 기대어 유지되던 클래식 공연들은 그나마 마지막 보루였던 공공 공연장들이 민간 공연장에 앞서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하면서 지원금은 받았으나 공연장소가 없는 상황으로 몰려 클래식 공연은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하향평준화 과정에 처하게 되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들고 나가 야외에서 행인을 향해 노래하는 클래식 음악회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를 부르던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최소 200석 많게는 3000석의 공연장을 기계의 도움 없이 채울 수 있도록 훈련된 성대이기에 오히려 마이크를 통해서는 관객들에게 그 소리의 깊이를 전달하기 힘들다.
진화인지 퇴화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점점 마이크에 익숙해지라는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게다가 성악가들의 레퍼토리에 대중가요가 트로트가 늘어나고 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처럼 전문가의 중요성 관점에서 비효율도 이런 비효율이 없다. 큰 무대가 사라진 이 땅에 클래식 아티스트들에게 주어진 무대는 초등학교, 산업현장, 교정기관 같은 장소다. 이런 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들은 저예산 국가 지원금을 받고 겨우 연명을 하는 상황이다.
유명 트로트 가수까지 갈 필요도 없이 무명 트로트 가수 한 명 보내기에도 부담스러운 예산으로 총 대여섯 명의 연주자들과 기획자들이 유랑극단 같은 모습으로 전국의 구석구석을 찾아가고 있다. 물론 이런 공연들은 코로나 시절 훨씬 이전부터 이미 있었고 분명 보람도 있을 것이다. 요점은 이런 곳에 가는 단체는 유독 클래식 단체뿐이냐는 말이다.
오랜만에 방역단계가 1단계로 전환되면서 공연장들이 모처럼 마음 편하게 공연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띄어 앉기가 필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대면 공연이라는 감격스러운 환경이 돌아왔다며 SNS에 클래식 공연 홍보와 공연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필자도 오랜만에 대면 공연을 올 11월이 되어서야 처음 올렸다. 전체 좌석의 25%만 채울 수 있었기에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무대 위에서 바라본 관객석은 풀이 듬성듬성 올라온 황량한 들판 같았다.
그나마 사정이 좋은 서울 시립오페라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린 풀사이즈 오페라 <토스카>조차도 관객석은 썰렁했다. 고전 오페라의 모습을 충실하게 재현한 프로덕션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좀 더 현대 관객의 기호를 반영한 요소들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 공연이었다.
물론 오페라를 처음 보는 관객을 타깃으로 한 공연이었다면 좋은 선택이었다. 허나 같은 오페라를 여러 번 경험한 필자와 같은 관객들에게는 TV 재방송을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성악가들 각각의 개성이 역할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딱히 역동적이거나 창의적 장면은 없었다.
일반 대중들이 바라보는 오페라는 구태의연하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편견의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거부감 없는 새로운 감각을 융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면서도 행동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1년 정도면 이 위기도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예술가들은 컴퓨터라는 장비와 친해지지 않고는 미래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술학교의 전공 교육에서부터 단순 기능교육을 넘어서는 창의적이면서 실질적 가이드를 보여 줄 수 있어야만 우리의 미래가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련은 끓고 있는 솥 안의 개구리에게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