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대성당 광장
밀라노 대성당 광장

[아츠앤컬쳐]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외우게 되는 유명한 속담이다. 그렇다면 로마와 같은 이탈리아 도시인 밀라노는 하루가 아닌 며칠에 만들어졌을까. 또 우리의 서울은 며칠에 만들어졌을까. 밀라노는 우리나라 일반 관광객들에게 크게 관심이 높은 도시는 아니다. 같은 이탈리아에서 로마, 베니스, 피렌체, 나폴리 등 먼저 가야 할 도시들이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전국에서 가장 문화 수준이 높은 도시를 말해달라고 부탁하면 아마도 밀라노를 꼽지 않을까 싶다.

13세기 말 밀라노 인구는 약 20만 명이었고 베니스, 피렌체, 제노아 등의 인구는 10만 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1377년까지 영국 런던과 독일 쾰른의 인구가 4만 명을 넘지 않았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미 중세 유럽부터 밀라노는 유럽의 중요 도시였음에 틀림없다. 15세기 중반에는 한때 서로마제국의 수도이기도 했기에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서울이 밀라노에서 배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멋’이 아닐까 싶다. 다른 말로 문화다. 밀라노는 분명 이탈리아의 서울이 아님에도 현재 이탈리아의 문화를 이끄는 대표 도시다. 사실 문화만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서울 로마를 압도한다. 밀라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도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활약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지금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식당에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밀라노는 미술과 회화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것은 디자인, 패션, 가구 등으로 이어진다. 현대에 와서는 기능보다 디자인이 생명인 페라리, 람보르기니, 부가티 등 이탈리아제 최고급 스포츠카도 인근 도시 토리노보다는 실질적으로 밀라노 디자인 학교가 만들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밀라노 가구 전시회가 열릴 때면 몇 달 동안 호텔 얻기가 어려울 정도다.

밀라노의 중심인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동상은 성당 앞이 아닌 라 스칼라 극장 앞 광장에 서 있다. 라 스칼라란 또 세계 최정상의 오페라 하우스이기도 하다. 세계에는 오스트리아 빈의 빈 가극장도 있고,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도 있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도 있지만 역시 라 스칼라가 최정상에 우뚝 서 있다. 세계적 오페라 가수들도 라 스칼라에 설 때는 긴장을 한다. 밀라노의 청중들은 박수도 잘 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페라 연주 중 야유를 보내는 데에도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다.

밀라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상 최고, 최상을 추구하는 도시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밀라노에 가고, 이 도시가 만들어낸 제품을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에게 ‘메이드 인 밀라노’ 이상의 제품이나 용역(서비스)을 찾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걸맞는 최고가의 자동차, 패션, 가구, 호텔, 레스토랑, 오페라 입장권 등이 모두 밀라노에 있다.

이제 서울이 밀라노로부터 배울 것은 무엇일까. 바로 끝없이 세상 최고를 추구하는 집요함이다. 서울은 서울이지 어떤 도시의 아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 사람으로의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당당한 도시를 만들어 나가면 된다. 서울 명동 거리를 중국 사람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 우리들이 명동을 가장 문화적인 거리, 멋과 품위가 있는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명동을 가장 멋진 거리, 문화적인 거리로 만들고 있는지 의문이다. 단지 우리는 명동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명동에 문화는 없다. 2016년 2월 국토교통부의 전국 표준 공시지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최고 비싼 땅은 잘 알려진 대로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자리다. 제곱미터당 8310만원, 평당 2억7400만원이다. 2위부터 10위도 모두 강남도, 세종로도, 홍대앞도 아닌 오로지 명동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최고 명품 패션 거리인 방대한 에마누엘 2세 아케이드 건물은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 라 스칼라와 초대형의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자랑하는 밀라노 성당 사이에 있다. 명품들이 문화에 포위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 서울의 가장 비싼 땅 명동의 네이처 리퍼블릭, 토니모리, 나이키, 레즈모아, 더페이스샵 등은 문화가 설 자리가 없는 명동에 외로이 떠 있어 중국 관광객들에게만 의존하고 있다. 명동은 우리들에게 문화를 통해 살려달라고 간절한 S.O.S.를 보내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는 못 듣거나, 다른 정치 뉴스만을 듣고 있거나, 외면 중이다.

글 | 강일모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사)한국음악협회 이사, 경영학박사/ 음악학석사
president@ku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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