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16세기 최고 영광의 도시는 단연 피렌체였다. 피렌체는 그 어떤 나라도 범접할 수 없는 비범하고 영특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고 예술과 인문주의가 온 도시를 뒤덮어 신의 재능을 부여받은 천재들이 가득했다. 그 특출함으로 인해 현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이 도시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모습은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피렌체는 참 신기한 곳이다. 한 나라의 역사를 통틀어 본다 해도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들이 그 길지 않은 시간에 수도 없이 탄생했으니 말이다. 문학 부문에서는 르네상스의 여명을 밝힌 선구자 단테를 비롯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 그리고 데카메론의 보카치오가 있었고 건축에서는 르네상스 형 만능 인간이었던 알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조르조 바사리가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미술 분야가 어느 예술 분야보다 풍족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곳에서 모나리자를 탄생시켰고 그의 나이 어린 라이벌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완성시켰으며 서양미술사를 통틀어 비너스를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다는 보티첼리가 비너스를 재탄생시킨다. 피렌체 시내 중심 산타크로체성당 내부의 벽과 바닥에는 이와 같은 모두 276명의 피렌체를 완성한 천재들이 고이 잠들어있다.
이런 영광의 피렌체에 특별한 자랑거리가 또 있다. 바로 우피치 미술관이다. 20세기 미술의 중심은 뉴욕이었고 19세기까지 파리가 중심이었다면 16세기의 꽃은 단연 피렌체였다. 그리고 우피치는 피렌체 예술의 중심이자 보물창고이다.
우피치는 메디치가의 코지모 1세가 효율적인 행정과 사법 업무를 담당할 공간으로 전속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조르조 바사리에게 주문해 지은 건물이다. 베키오 궁과 자신의 강 건너 자신의 가족들이 머무는 두 공간 사이에 지어졌다. 미술품의 제작과 수집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 군주 자리에 오른 뒤 200여 년간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 1737년 메디치가의 마지막 상속자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모든 작품들은 피렌체를 떠나지 않도록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토스카나 대공국에 기증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그리고 19세기 통일 이탈리아 시대에 국립미술관으로 승격되어 피렌체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갤러리는 3개 층에 걸쳐 100여 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관과 서관 두 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1층에는 주로 고문서 등 기록물들이, 2층에는 판화나 드로잉, 3층은 주로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 작품들이 시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작품들을 모두 훌륭한 가치를 지닌 메디치가의 품격있는 컬렉션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피렌체 예술의 전형을 보여주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걸작들이다.
우리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떠올리지만 당대의 명성과 예술적 성취, 후대에 끼친 영향까지 견주어 본다면 산드로 보티첼리 역시 그들 못지않은 르네상스 형 예술가였다. 그는 다빈치보다 일곱 살이 많은 선배 화가였으며 당대의 누구보다도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로렌초 일마니피코의 후원을 받았고 플라톤 아카데미를 드나들며 그리스 고전과 신화를 배우고 아름다움을 통해 신의 의미를 알리려 했다.
개인적으로 우피치 미술관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작품으로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아펠레스의 비방’이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보티첼리의 대표작으로 ‘프리마베라’나 ‘비너스의 탄생’을 떠올리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림에 속에 담긴 내용과 알레고리를 파악하고 본다면 그에 못지않은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아펠레스의 비방’은 고대 로마의 일화를 옮긴 것으로 웅변가인 루키아노스가 전하는 기원전 4세기경의 전설적인 화가였던 아펠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을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이자 화가였던 알베르티가 자신의 저서 ‘회화론’을 통해 소개했고 ‘회화론’을 본 산드로 보티첼리가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해 회화로 표현한 것이다. 이야기는 아펠레스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탓에 많은 화가들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켰고 그중 안티필로스라는 화가가 시기심에 눈이 멀어 아펠레스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에 연루되어있다고 거짓 고발했으며 결국 아펠레스가 그림 한 점을 그려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고 최종적으로 무고를 증명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보티첼리의 ‘아펠레스의 비방’을 보면 벌거벗은 남자가 한 여인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고 있다. 마치 기도를 하는 듯 손을 모으고 있는 남자의 모습과 십자가에 못 박힌 듯 교차 되어 있는 다리는 무죄를 의미한다. 횃불을 들고 그를 끌고 가는 여인은 비방을 상징하며 검은 옷을 입고 험악한 얼굴을 한 남자의 손에 이끌려 옥좌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인도된다. 검은 옷의 남자는 미움과 증오를 나타내는 알레고리이다. 횃불을 들고 있는 여인의 뒤에서 머리를 매만지며 치장해주고 있는 두 여인은 속임수와 시기를 상징하며 옥좌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당나귀 귀를 가진 미노스 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옆에는 무지와 의심이 그의 귀를 막고 있다. 마지막으로 맨 왼쪽 귀퉁이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진실을 알리고 있으며 그 옆의 검은 외투로 얼굴을 뒤집어쓰고 있는 노파는 차마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양심의 가책을 의미한다.
그림 속에 모든 알레고리를 종합해 보면 미움과 시기에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비방하고 시기와 속임수가 진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진실은 외딴곳에 떨어져 고독함 속에 있다는 내용으로 귀결할 수 있다. 그림은 숨겨진 알레고리를 풀어가는 감동도 있지만 그 자체로도 매우 아름답다.
보티첼리의 작품들 외에도 우피치 미술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들과 카라바조, 젠틸레스키, 로쏘 등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르네상스 회화 컬렉션은 작품의 양이나 질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우피치를 빼놓고 르네상스 예술과 피렌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 중 하나로 꼽히는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의 열정이 담긴 작품들을 마음껏 감상하는 것은 최고의 경험이 될 것이다.
글·사진 | 강정모
유럽가이드이자 통역안내사로 일하며 세계 유명 여행사이트인 Viator 세계 10대 가이드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기업에 출강하며, 아트 전문여행사 Vision tour를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