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아몬드나무
반 고흐, 아몬드나무

[아츠앤컬쳐] 프로방스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또 편안하다. 처음 오는 이들도 마치 오래전부터 살아온 듯한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편안한 사람들, 따뜻한 햇살, 신선한 음식들 그리고 꽃향기는 프로방스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휴식을 안겨 준다. 반 고흐, 샤갈 같은 화가들이 무거워진 삶의 무게를 이젤에 가득 이고 프로방스에 흘러들어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햇살을 찾아 멀리서부터 온 두 이방인에게 프로방스는 너그럽게도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밝은 햇살과 푸른 하늘 그리고 라벤더의 향기를 넉넉히 선사했고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아낌없이 불어 넣어주었다.

생 폴 방스
생 폴 방스

사실 프로방스는 나에게도 특별한 곳이다. 예술 전문 가이드로서 또 그림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프로방스만큼 시각적인 만족감을 얻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는데 많은 여행객을 안내하면서 받는 수많은 질문 중에 항상 답변을 흐릴 수밖에 없는 질문이 한 가지 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라고 물으시는 분들에게 그때마다 난 지금 여행하는 곳이라며 다소 퉁명스러운 답변을 내놓곤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좋아하는 곳을 말해버리면 여행객들로 하여금 지금은 가장 좋은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찍어둔 곳도 없긴 하지만, 사실 그때 프로방스가 떠올랐었다는 것이 내 진심이다.

싸이프러스 나무 -반 고흐
싸이프러스 나무 -반 고흐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이기에 곳곳에서 예술가들의 숨결을 찾아볼 수 있는 프로방스는 정말이지 매력적인 곳이 아닐 수 없다. 프로방스에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어떤 힘이 있다. 그 힘은 분명 빛일 것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빛이 아니라 은은하게 반사되어 비춰 오는 투명한 빛은 예술가들 특히 빛을 그리는 화가들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하다.

카뉴쉬르메르 -르누아르
카뉴쉬르메르 -르누아르

1905년 화가 르누아르는 프로방스의 카뉴 쉬르 메르에 정착해 올리브 나무와 유칼리로 뒤 덮인 숲 속에 아틀리에를 지어놓고 쏟아지는 빛을 묵묵히 화폭에 담아냈다. 그의 그림 속 빛은 마치 소나기처럼 한바탕 쏟아지고 난 후 나뭇잎 사이사이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싱그러운 이슬 같은 느낌이 있다. 그가 살아생전에 풍경화를 보면 사람들이 산책하고 싶은 기분이 들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처럼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문득 프로방스를 걷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앙리 마티스 역시 르누아르가 보았던 빛을 따라 1917년 니스에 정착했다.

니스의 리비에라해안이 보이는 창 -마티스
니스의 리비에라해안이 보이는 창 -마티스

이상적인 빛을 찾고자 타히티, 모로코, 알제리, 코르시카 등 많은 곳을 여행했던 마티스는 최종적으로 프로방스의 빛을 택했고 그곳에서 많은 작품을 탄생시킨다. 특히 그의 리비에라 해안의 전경이 보이는 실내 그림은 색채의 느낌이 이전의 그림들보다 훨씬 풍부하고 밝아졌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현재 그가 살던 집은 마티스 미술관이 되었다.

모네, 앙티브
모네, 앙티브

모네 역시 프로방스의 앙티브 전경을 무려 40여 점이나 화폭에 담아냈다. 그의 복숭아 빛으로 물든 그림을 보고 있자면 그가 얼마나 앙티브를 사랑했는지, 그리 간절히 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섬세한 붓칠로 정성스레 담아낸 앙티브의 하늘은 순수한 지중해의 바닷가에 반사되어 마치 눈앞에 실제로 펼쳐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라울뒤피, 생 폴 방스
라울뒤피, 생 폴 방스

세잔은 원래 출신이 프로방스이고 라울 뒤피 역시 프로방스에 정착하여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야수파와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넘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찾아낸다. 그는 생 폴 드 방스에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아류로 남아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앙티브에서의 밤낚시 -피카소
앙티브에서의 밤낚시 -피카소

피카소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중해가 내다보이는 앙티브에서 ‘앙티브에서의 밤낚시’라는 명작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샤갈이야말로 프로방스에 영혼을 묻은 화가라 할 수 있다. 이 러시아 출신 유대인 화가는 러시아의 혁명 직후 자신의 고향을 떠나 베를린과 파리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미국의 망명생활까지 반평생을 길 잃은 청어처럼 떠돌아다니다가 마지막 여생을 자신의 조국도 아닌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 생 폴 드 방스에 맡긴다. 생 폴 드 방스는 망명생활 동안 자신의 반쪽을 넘어 그 자신이라 여겼던 연인 벨라 까지 잃어버리고 참담했을 그에게 안식과 함께 생애 마지막 영감을 선물해 준다. 샤갈은 성서이야기라는 대 프로젝트를 착수하고 완성해낸다.

샤갈, 생 폴 방스에서의 꿈
샤갈, 생 폴 방스에서의 꿈

마지막으로 한 명 더 소개하자면(사실 누구보다도 가장 소개하고픈 화가인데),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고흐는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 아를에 정착하면서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며 고갱을 불러들이고 자신의 작품 세계에 새로운 전환기를 이루어 낸다.

반 고흐, 생 폴 모솔
반 고흐, 생 폴 모솔

삶과 예술에 대한 견해차가 컸던 탓에 둘의 공동생활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지만 어쨌든 반 고흐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주변의 권고를 받아들여 아를을 떠나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 있는 한적한 시골 요양원에 정착했고, 그 작은 공간에서 아픔과 슬픔, 외로움 심지어 조카의 탄생에 의한 기쁨까지 모든 감정을 담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고 서양 미술사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작품들로 재탄생시킨다.

반 고흐, 아를의 밤의 카페테라스
반 고흐, 아를의 밤의 카페테라스

프로방스 여행은 곧 휴식이다. 수십만 인파에 둘러싸인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거나 만년설로 뒤덮인 수천 미터 높이의 산 위에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편안하고 마치 르누아르의 한 작품처럼 따뜻하고 밝은 곳이다. 닫혔던 마음과 피로했던 정신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프로방스 여행을 권하고 싶다.

글·사진 | 강정모
유럽가이드이자 통역안내사로 일하며 세계 유명 여행사이트인 Viator 세계 10대 가이드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기업에 출강하며, 아트 전문여행사 Vision tour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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