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평소 자주 일하던 청담동 구찌의 홍보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가 밀란에 가서 톰 포드를 찍어오면 어떨까요?” 라고.
여부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구찌의 톰 포드는 나름 자신의 사진을 일일이 검열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하물며 한 컷 한 컷 보고나서 “이건 여기에 실어도 되고, 저건 내가 쉬크하지 않으니 절대로 노출되어선 안 돼.”하며 한 켠에 밀어놓는다고. 그러니 백스테이지에 들어간들 성공여부는 미지수인 셈. 하지만 호랑이를 만나려면 구찌를 만나봐야 하지 않은가. 이런저런 시간이 흘러 파리에 도착, 자그마한 알리탈리아 항공기에 탑승하여 밀라노에 입성했다. 장소는 000 0000 호텔.
쇼 시작 30분 전에 홍콩의 홍보담당을 만나 이리저리 백스테이지에서의 해도 될 일과 안될 일에 대해 지시를 받았다. 그리곤 다시 구찌 본사의 수석 홍보담당을 만났다.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헬로우, 미스터 케이티, 당신이 백스테이지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단 15분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알아서 찍어 주시고 단 톰은 절대로 찍으면 안 돼요, 아셨지요? 당신이 우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톰 포드를 마음대로 찍다가 행여 그가 지적이라도 하게 되면 당장 백스테이지에서 물러나야만 해요, 명심해 주세요!”
아니 이럴 수가, 먼 길을 달려와서 톰 포드를 눈앞에 두고 사진기를 들이대면 안 된다고? 할 수 없지… 끄덕끄덕하면서 예스라고 할 밖에. 동행한 구찌코리아의 홍보담당은 자식을 수험장에 밀어 넣는 눈빛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백스테이지에 들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좁고 복잡한 데서 톰 포드는 자신의 컬렉션을 매번 탄생한 셈이다. 가장 핫한 브랜드 구찌를.
행거들에는 옷들이 가득하고 좁은 복도에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 그리고 남자 모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리고 흰 호텔가운을 걸친 여자 스트립 댄서들. 실제로 밀란 시내의 스트립걸들이 토플리스 차림으로 대기 중이다. 내가 할 일은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 일이다. 모델들은 모두 죠니워커사의 온더락잔을 손에 쥐고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삼삼오오 댄서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좀 찍자 하며 그들의 샴페인잔을 높이 쳐든 사진을 찍기도 하고 포즈도 취해달라고 하며 찰칵찰칵. 나는 지금 안 찍어 두면 언제 다시 건질 소냐, 하며 셔터를 눌렀다.
이때 세계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 옆으로 웬 남자가 웃음을 지으며 나타났다. OMG, 톰 포드가 아니던가, 이때 슬쩍 한 컷 눌렀다(후레쉬를 터뜨리지 않은 채로). 이어 방송국 카메라맨을 달고 모델들을 격려하고는 테이블에 놓인 죠니워커의 온더락잔을 집어들었다. 아뿔싸, 방향을 바꿔 방송국 카메라맨을 뒤에 둔 채로 내 정면으로 휙 돌아선다. 이때 좁은 백스테이지의 상황상 스트립댄서 한 명이 나를 스쳐 등을 보이며 톰 포드의 옆으로 지나치게 되었다. 톰 포드도 살짝 속도를 늦추지 않을 수 없는 타이밍.
즉 톰 포드가 나의 정면에, 그리고 스트립댄서의 엉덩이가 나의 렌즈를 향하고 있다. 어머, ‘이건 눌러야 돼!!!’ 가 아니던가, 그래 누르자, 누르자, 누르라구!!! 이때 톰 포드가 눈을 부릅뜨며 내 눈과 마주쳤다. 즉각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아놔… 그냥 눌렀다.
쫓겨날 준비를 해야지… 아니 그런데 옆의 홍보담당(밀란의 수석)이 나를 살짝 쳐다보는 듯했는데…웬걸 일단 지나친다. 그리곤 시간이 다되었는지 나를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게 톰 포드를 처음 본 날의 이야기다.
그래서 어찌 되었냐구요? 서울로 돌아와서는 GQ Korea의 이충걸 편집장과 사진들을 셀렉했다. 그리고는 모든 사진을 밀란의 구찌사로 전송했다. 물론 톰 포드에게 꼼꼼히 가위질을 당한 후 사용해도 좋다는 사진들이 선별되어 서울로 다시 건너왔다. 이럴 수가, 가장 염려했던 그 장면이 베스트샷에 선정되어 안젤리나 졸리가 표지 모델을 한 2004년 4월호에 실리게 되었다. 오호!!!
이후 세월이 흘러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톰 포드의 회고록에 나의 사진 2컷을 싣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래서 지금도 대형서점에 가면 뉴욕의 Rizzoli에서 발행한 검정색 대형 양장본 사진집 <TOM FORD>에 나의 사진이 두 컷 실려 있다. 유일한 아시아 포토그래퍼로서 말이다.
글 | 케이티 김
사진작가, 패션계의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Fashion 4 Development의 아트 디렉터로 뉴욕에서 활동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