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코리아 2005년
보그코리아 2005년

 

[아츠앤컬쳐] 톰 포드의 첫 번째 취재에 성공하자 두 번째는 한결 쉬워진 듯했다. 일단 까다로운 지침서도 없었으며 촬영에 관련된 주의사항도 통보하지 않는다. 두 번째 밀라노에 입성하여 호텔방에 들어서자 톰 포드의 자필(물론 인쇄되어진) 서명된 웰컴 카드와 꽃다발이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여기까지 먼 걸음 하시느라 힘드셨죠, 촬영 전까지 편히 머무세요”라는 말이리라. 침대 위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놓여 있다. 어깨끈이 늘어지는 구찌의 지퍼백이다. 오는 정 가는 정은 사양하지 않고 감사하기로.

보그코리아 2005년
보그코리아 2005년

드디어 톰 포드의 두 번째 패션쇼 취재. 좁디 좁은 백스테이지 들어서자 유난히 동양계 모델들이 여럿 눈에 뜨인다.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광경이었다. 홍보우먼 미스 오가 내게 두 명의 동양인을 가리킨다.

“저기 큰 키에 마른 멋진 모델이 한국계라고 하네요, 그 옆은 티벳계 모델이구요.”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시면 좋을 듯하네요.” 하면서 이제 걸음마를 땠으니 전 사라집니다 하는 식으로 나를 두고 백스테이지를 벗어나 사라진다. 쇼 시작 전에는 모든 홍보우먼들이 백스테이지가 아닌 쇼장 밖에서 각국의 게스트들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쇼장 밖에서 ‘여기요, 하이 미쉘, 하이 리사~ 혹은 편집장님~ 대표님~’ 하는 식으로 각자의 손님들을 보살피고 쇼장의 자리에 무리 없이 배치하여 쇼를 보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다니엘 헤니와 백스테이지에서의 톰 포드. 밀라노 2003, 무대로 나가기 직전의 컷
다니엘 헤니와 백스테이지에서의 톰 포드. 밀라노 2003, 무대로 나가기 직전의 컷

다시 나의 이야기로…… 다니엘 헤니라는 이름이 익숙해진 건 이 사진을 찍고 약 6개월 정도 지나서였다. 당시는 드문 한국계 모델이라 그와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담배를 서로 피워 물기도 하는 장면들도 몇컷 찍어두었다. 헌데 이게 또 패션의 역사에 남는다면 남는 장면이 될 줄이야. 당시에는 마치 오래전 비행기 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듯,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이 자유로이 흡연을 즐기곤 했다. 지금이야 꿈도 못 꾸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런대로 스모킹 백스테이지였던 셈. 하지만 국민 건강 차원에서 폼나게 담배를 피우는 컷은 본 지면에는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흑백컷은 아츠앤컬쳐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컷이다.

다니엘 헤니와 톰 포드. 구찌남성복, 밀라노 2003
다니엘 헤니와 톰 포드. 구찌남성복, 밀라노 2003

촬영 당시 조금 마른 모습의 다니엘 헤니는 해맑은 소년과도 같이 외국 모델들과 함께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 정지시키며 즐거운 장면을 나에게 선사했다. 이후 출장에서 돌아와서는 주지사로 거듭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표지를 장식한 에스콰이어 코리아 2003년 8월호의 민희식 편집장과 사진을 엄선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 2003년호
에스콰이어 코리아 2003년호

당시에는 톰 포드와 다니엘 헤니가 무대로 나가기 직전의 컷은 에스콰이어 매거진의 지면에 선택되지 않았다. 처음에 선보인 컷은 이후 약 일 년 정도 흐른 후 그가 한국에서 구찌의 패션쇼에 출연하게 될 즈음(그때도 내가 모든 촬영을 맡았다) 구찌의 PR우먼 미스 오와 함께 그에게 깜짝 선물할 수 있었다. 이후 드라마와 예능에서도 맹활약을 하던 그의 행보는 아래의 사진에 잘 나타나있지 않을까 싶다. 그의 행보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글 | 케이티 김
사진작가, 패션계의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Fashion 4 Development의 아트 디렉터로 뉴욕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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