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portrait, 1910
Self portrait, 1910

[아츠앤컬쳐]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22살이던 1912년에 이미 빈, 뮌헨, 쾰른, 부다페스트 등에서 전시회에 참여하여 명성이 자자하였다. 대부분의 요절한 출신 화가들은 사망한 이후에나 그들의 작품이 빛을 보는 것과 달리 에곤 실레는 스페인 독감으로 갑작스레 사망하기 전부터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라는 거장의 뒤를 잇는 천재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클림트는 1918.2월에, 에곤 실레는 1918.10월에 각 사망하였다).

에곤 실레는 21살이던 1911년, 17살인 발부르가 노이첼(Walburga Neuzil, ‘발리’라고 알려짐)을 만나 빈에서 같이 살다가, 남부 소도시 크루마우(Krumau)로 간다. 에곤 실레의 어머니의 출생지이며, 현재 실레 기념박물관이 있기도 한 곳이다. 실레는 크루마우에 연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레의 생활양식, 특히 마을의 십대 소녀들을 억지로 모델로 고용한 것을 몹시 좋지 않게 생각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쫓겨나게 된다. 이후 실레는 빈에서 35km 정도 떨어진 노이렌바흐(Neulengbach)라는 소도시로 다시 이주를 한다.

photograph of Egon Schiele, 1914
photograph of Egon Schiele, 1914

이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유럽의 큰 도시에서 수 차례 전시회를 한 유명한 화가의 등장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아이들도 젊고 세련된 작가의 아틀리에를 신기한 듯 자주 방문했고, 특히 어린 소녀들의 방문에 작가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을 어른들은 어린 소녀들이 들락거리는 것이 탐탁지는 않았지만 나서서 막지는 않았다. 그런데 실레가 어린 소녀의 벗은 몸을 모델로 삼아 누드 드로잉을 그렸고, 그림들의 대부분은 어린 소녀가 미처 성숙하지도 않은 자신의 유두나 음부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거나 들춰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였고, 그는 미성년자를 유괴했다는 죄목으로 노이렌바흐 감옥에 20여 일 수감되게 된다. 아틀리에에 걸려 있던 소녀의 누드 드로잉 한 점이 ‘청소년을 유혹한 포르노 물’이라는 이유로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물론 어린 소녀를 유괴하여 누드화를 그렸다는 죄목은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져 실레는 풀려났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미성년자를 유인하여 발생하는 범죄들이 자주 불거지고 있다.

Girl with black hair, 1910
Girl with black hair, 1910

3년 전, 인터넷 카페에 인터넷 쇼핑몰 모델 선발 공고를 하여 지원서를 제출한 학생들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16살인 청소년을 유인하여 빌라 옆 창고로 데리고 가 포즈 연습을 시키고 연인포즈를 하자고 청소년을 속여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슴에 손을 대고 허리를 감싸는 등 강제로 추행하였다. 계속하여 조용한 곳으로 가서 연습하자며 모텔로 이동하여 청소년을 침대에 눕히고 포즈연습을 시킨다며 청소년을 속이고 자신은 하의를 모두 벗은 상태에서 옷을 입고 있는 청소년을 추행하였다.

14살인 중학생에게 “모델을 하려면 허리 사이즈부터 재야 한다”고 말하며 속이고 중학생의 허리를 손으로 만졌으며, 연인포즈를 연습한다고 속이고 몸을 만져 추행한 남자는 추행을 목적으로 미성년자를 유인하고 위계로써 추행하였음이 입증되어 징역 8년에 개인 신상 정보 온라인 10년 고지, 위치추적전자장치 10년 부착의 판결을 받았다.

Pair embracing, 1917
Pair embracing, 1917

물론 강제 추행 등을 목적으로 청소년에게 접근하는 자들이 많다는 점에도 유념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미성년자를 모델로 삼는 행위 자체를 미성년자를 유인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형법 제287조의 미성년자유인죄는 기망 또는 유혹을 수단으로 하여 미성년자를 꾀어 그 하자 있는 의사에 따라 미성년자를 자유로운 생활관계 또는 보호관계로부터 이탈하게 하여 자기 또는 제삼자의 사실적 지배 하에 옮기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사실적 지배라고 함은 미성년자에 대한 물리적·실력적인 지배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5조의2 제2항 제3호 후단은 위 미성년자유인죄를 범한 자에 대한 가중처벌을 규정한 것이므로, 위의 어느 죄든 그것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피고인이 미성년자를 자기 또는 제삼자의 물리적·실력적인 지배 하로 옮길 범의를 가지고 미성년자를 기망 또는 유혹하여 미성년자를 위와 같은 지배하에 두었음이 증거에 의하여 입증되어야 한다(대법원 1998. 5. 15. 선고 98도690 판결).

photograph of Egon Schiele, 1914
photograph of Egon Schiele, 1914

실제 국내에서 시집 출간, 극단 운영을 한 경력을 가진 29살의 남자가 잡지사의 실장으로 근무하면서 한 고등학생 사진모델을 알게 되었다. 이 남자는 학생이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델이나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여관방에서 여고생의 사진을 찍고 귀가시켰다가, 다시 다음날 같은 여관으로 오게 한 다음 위계 및 위력을 행사하여 유인한 미성년자에게 가혹한 행위를 가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등학생이 가출 등에 대한 상황을 가족에게 심하게 추궁당하자 그 책임을 돌리기 위하여 허위의 진술을 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의심스러운 점은 있으나 고등학생의 진술이 자꾸 바뀌는 여러 정황에 비추어 남자가 유죄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이 무죄 판결은 자신의 딸을 유인했다는 이유로 그 고등학생의 가족 및 친지들에게집단 폭행을 당하여 남자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장이 파열된 후에 나온 것이었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변호사/변리사
instagram.com/jaehoon.david.lee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