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커스티 미첼은 비옥한 토지 덕분에 ‘영국의 정원’으로 알려져 있는 켄트(Kent)지방 출신의 사진작가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독특한 경력이 있다. 사진이 아니라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10년 동안 패션계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했다는 점이다. 전도유망한 의상디자이너였던 그녀가 사진가로 인생의 항로를 변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배경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있다. 2008년 말기 뇌종양 선고를 받고 돌아가신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미첼은 심각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는데 당시 그녀를 병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출구이며 안전한 도피처가 되어준 것이바로 카메라(Camera)였다.
대표작인 ‘원더랜드(Wonderland)’ 시리즈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한 기억으로부터 탄생되었고 2011년 어머니를 추모하며 발표한 전시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자 작가는 패션계를 완전히 떠나 사진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영어교사였으며 무엇보다도 문학을 열렬히 사랑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성장하는 동안 매일 아름답고 환상적인 전래동화를 들려주었는데,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끊임없이 읽어주었던 이야기의 조각을 반영하여 사진을 통해 글이 없는 동화책을 만들고자 하는 콘셉트(Concept)를 발전시켰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가의 작품 ‘원더랜드(Wonderland)’는 어릴 적 기억과 자유로운 발상에 의해 가공의 신화적 세계를 구성하고 일상과 비일상을 병치시켜 리얼리즘(Realism)과 판타지(Fantasy)가 완벽하게 결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판타지(Fantasy)는 ‘환상’을 의미하며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판타지를 실재계의 진리가 드러나는 동시에 거부되는 장소이고 상징화될 수 없는 진실의 파편들이 상징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욕망의 근원에 이르는 길인 동시에 그것에의 접근을 방어하는 상징적 베일로 설명한다.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문학에서 판타지는 마술이나 요정 등의 초자연적 요소가 실제로 기능하는 세계를 다룬다)로 대체하고 수집한 기억의 편린들을 이미지 기호를 사용하여 하나의 시나리오로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창조의 샘을 만들었다.
다양한 능력을 갖춘 예술가로서 그녀의 기획력과 예술적인 꿈과 재능은 관객들을 작가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흥미로운 작품들의 창작을 가능하게 하였다. 미첼은 작품 속 주인공들의 의상과 야생화들의 꽃 피는 모습, 여명, 눈 폭풍, 집 근처의 우뚝 솟은 고목 등을 몇 달씩 장시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실제와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 냄으로써 현실과 일치하는 판타지를 연출한다. 관람객들이 작품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투영하며 시각적으로 우화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원더랜드 시리즈는 후에 독립영화 제작에 비견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성장하였으며 하퍼 바자(Harper’s Bazaar), 보그(Vogue Italia), 가디언(The Guardian), BBC뉴스, 슈피겔 온라인(Spiegel Online) 등 세계 각국의 매체에 소개되었다. 2012년 겨울, 런던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 Quaglino’s(1929~)에서 전시 중인 미첼과 건축가인 그녀의 남편을 만났을 때, 어머니를 회상하던 그녀의 상기된 목소리가 이따금씩 나의 귓전을 맴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머니가 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상력과 아름다움에 대한 확고한 견해입니다. 그것은 나의 작업에 뿌리가 되었고 끊임없이 나를 꿈꾸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