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하늘, 캔버스에 아크릴, 31cm x 42cm, 2014
당신이 남긴 하늘, 캔버스에 아크릴, 31cm x 42cm, 2014

 

[아츠앤컬쳐] 스페인의 론다(Ronda)는 릴케와 헤밍웨이의 숨결이 살아있는 도시로 엘타호 협곡에 위치해 ‘절벽 위의 도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을 만큼 숨 막히는 경치를 자랑합니다. 특히 마을을 가로지른 협곡 위에 놓인 ‘누에보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협곡의 풍경은 아찔함과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말라가(Malaqa)를 떠나 론다(Ronda)로 내비게이션을 맞추고 시동을 걸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점점 거세져 차창과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도로를 달리며 빗소리와 함께 듣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책과 사진으로만 보던 론다를 아주 오래전 다녀온 그리운 도시로 만들었다.

구불거리는 산길은 미끄러워 느리게 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여행의 길은 모든 순간이 여행이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한 시간가량을 더 달리니 멀리 마을의 가로등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색 돌로 만들어진 도시를 따뜻하게 만드는 주황빛 가로등은 언제 봐도 멋진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과 안개에 싸인 론다의 누에보 다리는 신비롭고, 무섭고, 아름다웠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협곡은 아찔해서 자신도 모르게 난간을 찾아 붙잡게 만들었다. 다리 위에서 자살이 간간이 일어난다는데 이 다리 위에 서면 그 묘한 기분에 취해 그런 마음이 일순간 들 것 같기도 했다. 마을이 워낙 작아 예약한 숙소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좁은 침대에 누워 파란 하늘이 펼쳐질 내일 아침을 상상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골목에서 들리는 사람들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바람대로 코발트 빛 푸른 하늘이다. 구름 하나 없는 그런 하늘.

도시는 어젯밤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추운 겨울날이지만 강렬한 햇빛과 파란 하늘은 마을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호텔 로비에 앉아 크루아상과 커피로 아침을 하고 연필과 스케치북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지도도 이정표도 보지 않고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고, 걷고 싶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작은 소도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그리고 진짜 여행은 길을 잃고 새로운 길을 만나는 순간 시작된다는 나만의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바로 그 순간이다.

마을을 몇 바퀴나 돌며 누에보 다리가 잘 보이는 자리를 찾다가 발견한 골목의 작은 성당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성당 맞은편 작은 돌의자에 앉아 스케치북을 폈다. 파란 하늘 아래 황색 성당과 흰 집들은 이미 그림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을 떠올렸다. 파란 하늘을 좋아하는 당신은 다른 하늘 아래서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당신이 내게 남긴 푸른 하늘이 오늘은 더 눈을 시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까?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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